개인적인 경험 하나를 소개합니다. 학점이나 진로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던 어느 시험 기간 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공부를 하다가 밤에 배가 고파져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냐”며 투덜거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은 음식을 서둘러 정리하고 졸음을 씻기 위해 세수를 하러 갔습니다. 거기서, 파지 줍는 분이 우리가 남긴 군만두를 먹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눈이 마주쳤을 때, 그 분의 얼굴에 떠오른 부끄러운 표정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 건, 제가 더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나를 옥죄던 고민이 얼마나 ‘배부른 것’이었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고민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생긴 것도, 생존에 대한 불안에서 생긴 것도 아니라 아직 있지도 않은 미래의 막연한 불안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그 때부터 파지 줍는 분, 그리고 더욱 낮은 곳에서 삶을 고민하는 사람은 저의 ‘관심’이 됐습니다.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누구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없고, 누구도 다른 고민을 직접 겪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례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아직도 가난을 ‘타자화’하기만 하는 폭력적인 사람인지도 모를 일입니다.그럼에도 관심은 중요합니다. 내가 발 디딘 이 땅에서, 나 홀로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 아닌 것에 대한 관심은 필요합니다. 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법인화를 둘러싼 학교의 독주는 학생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됐습니다. 서울시 곳곳의 철거민들은 “무엇보다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일들이 잊혀지고 버려집니다.이번 호 은 미디어법에도, 낙태를 둘러싼 논란에도, 갈 곳을 잃은 철새에도 관심을 가져 봤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가장 관심 갖고 싶은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고민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고민을 품고 살아가나요.“저는 여러분에게 아주, 많이, 엄청 관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