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연구자의 양심, 제도는 나 몰라라 연구 윤리 부정 행위의 재발을 막으려면김나연 기자(nyhope@snu.ac.kr) 정치학과 김용찬 교수는 표절임이 명백히 밝혀져 사임의 원인이 된 논문 1건 이외에도 현재 약 16개의 논문이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같은 시기 수의대 강수경 교수는 논문 17편 연구 조작으로 인해 해임됐다. 에서는 이처럼 연구 윤리 부정 행위가 반복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 윤리 부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또한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위해 현재 어떠한 조치가 필요할지 짚어봤다. 사건이 왜 이렇게까지 커졌나, 연구 윤리 검증의 부재 정치학과 김용찬 전 교수 논문 표절 1건, 의혹 15건과 수의대 강수경 교수 논문 조작 17건. 양 측 모두 한 건이 아닌, 상당한 수의 연구 부정행위로 세간을 들썩였다. 이렇게 연구 부정행위가 축적될 정도로 문제가 방치돼 있었던 이유는 현재 논문을 검증하는 시스템 내에 연구 내용의 윤리적 측면을 확인하는 별도의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발표한 연구 내용은 보통 학술지에 게재된다. 게재 전 학회에서 선정한 동일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심사자와 연구자 서로가 익명으로 처리되는 ‘더블 블라인드’ 심사가 이뤄진다. 이 때 논문 심사는 ‘연구 내용의 타당성, 논리성’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지며, 표절이나 논문 조작 등에 관한 연구윤리의 측면에서 논문을 평가하는 별도의 절차는 없다. 논문 심사자의 검토 중 발견한 오류나, 타 논문의 표절로 모방이 의심되는 경우‘유사성 검사(Similarity research)’가 이뤄지고 이 때 논문 조작이나 표절이 밝혀지면 논문의 출간이 거절(Reject)된다. 즉, 현재 학계 구조상 연구 윤리와 관련된 책임은 사실상 동일 분야의 연구자인 동료 평가자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동료 평가자에 의한 연구 평가가 표절, 논문 조작 등을 완벽히 걸러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김용찬 전 교수 표절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김 전 교수의 표절 논문이 논문 평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논문 표절 내용을 잡아내는‘유사성 검색’등의 절차의 부재다. 김용찬 전 교수의 표절 논문 중 영어를 한글로 번역만 한 것이라든가, 책의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해 옮기기만 한 논문은 간단한 구글링을 통해서도 표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김 전 교수가 과거에 논문을 발표할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검색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문 평가자가 표절된 원문의 내용을 접한 적이 없다면 사실상 표절을 잡아내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심사자의 전문성이다. 김 전 교수의 연구 분야인‘정치사상’은 국내에 연구자가 적으며, 그의 주요 분야였던 헤겔을 연구하는 전문가의 수는 더더욱 적다. 이처럼 연구자가 적은 분야의 경우 전문가들이 심사 논문 연구방법 및 관점 등에 기반한 선행 연구를 숙지하고 있는지를 담보할 수 없다. 그러나 생명과학부 이현숙 교수는 이번 정치학과의 표절 사태에 대해 “논문 평가 위원들은 전문가이고 평가 당시 의문이 들면 관련된 연구를 찾아보면서 오류를 잡아낼 책임이 있는데, 이들이 허술했던 것”이라며 당시 논문 심사위원들을 비판했다.동료 평가자에 의한 논문 심사만으로는 연구 윤리 관련된 문제를 잡아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기에 지금까지의 연구 윤리와 관련된 적발은 주로 제보를 통해 이뤄져 왔다. 최근의 김용찬, 강경선 전 교수의 사건 모두 제보에 의해 밝혀졌다. 이현숙 교수는 “제보는 학계의 연구 윤리 자정 작용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연구 부정행위를 알고도 제보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인문대의 헤겔 연구자 A 씨는 2년 전 헤겔 논리학, 이론 철학을 연구하던 도중 헤겔의 정치 철학 쪽을 살피다 우연히 김용찬 전 교수의 논문을 봤고 표절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표절을 신고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명백한 표절은 곧 사회대 정치학과 쪽에서 표절이 발견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내가 사회대 쪽에서 연구했다면 직접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현숙 교수는 연구 윤리 확립에 제보가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일단 제보자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문화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며 “제보 시스템의 투명성을 확보해, 제보를 음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연구 부정행위를 알게 될 경우 ‘제보가 당연한’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교수는 “제보는 당사자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당사자가 더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복되는 연구 윤리 위반 유인, 양적 성과를 중시하는 교수 평가 최근의 연구 윤리 위반 사건들은 ‘교수 업적 평가’가 강화된 이후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대가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승진과 정년의 보장 기준을 강화한 이후 잇달아 논문 조작 및 표절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미국의 사례와 유사하다. 미국에서 연구 윤리가 문제가 된 것은 80년대 MIT를 비롯한 미국 유수의 대학들이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해 교수 업적 평가의 내용을 강화한 이후였다. 강사에서 조교수, 정교수로 승진하기 위해 쌓아야 하는 연구 실적 기준에 스트레스를 받은 이들이 연구 윤리를 위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생명과학부 이현숙 교수는 “서울대학교가 연구 중심 대학으로 전환되면서 교수 임용, 교수 승진 등의 절차에서 연구의 양을 늘리고, 연구비를 더 따내려는 의도와 결부돼 연구 윤리 위반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현숙 교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수 업적 평가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은 옳지만 현재의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의 교수 업적 평가는 24개의 학문단위가 상이한 단과대학의 연구 내용에 논문 몇 개 이상, 특정 영향력 이상을 갖춘 학술지에 실어야 한다는 통일된 기준을 적용해 점수로 환산하고 있다. 이 교수는 “계량화된 동일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연구자에게 연구 윤리 위반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교수 임용 역시 교수 업적 평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단과대학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 교수는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을 뽑아 교수로 임용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하는 기준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의대를 비롯해 의대, 간호대의 경우 임상 경험인 중요한데, 교수 임용 과정에서는 임상 경험은 제외되고 논문만을 기준으로 평가해 적임자를 선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인문대의 경우 저서 출판, 수의대·의대··간호대의 경우 임상경험과 같이 학문 단위 별 특성을 바탕으로 중요성과 질적인 내용을 고려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수 업적 평가가 연구 내용의 질적 평가를 반영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인문대 연구자 B씨는 “연구란 좋은 연구를 해야 가치가 있는 것인데 현재의 시스템은 아무래도 평가를 위해 실적을 수치화해서 계량하다 보니 양적인 평가의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질적 평가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계속 있어왔지만, 특히 주관성이 많이 반영되는 인문학과 같은 분야에서 평가를 내리기는 무척 어렵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생명과학부 이현숙 교수는 “질적 평가를 강화하면 연구자 입장에서는 더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비록 기준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도 본부에서 연구를 통해 어떠한 기준이 학문 단위 별 연구 성과를 잘 반영해 평가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 교수 연구 평가 제도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표절 검증은 저희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연구 윤리는 누구의 책임입니까?서울대학교 석사, 박사 논문을 비롯해 서울대학교 교수 혹은 연구자의 이름으로 출판되는 논문에 관해 절차상에는 연구 윤리와 관련된 검증이 없다. 본부 연구처 연구 윤리팀은 “아무 연구 결과에 대해 표절, 논문 조작 검사를 하는 것은 연구자 본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논문 심사 때마다 표절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학교에 있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또한 윤리팀은 “윤리는 연구자의 양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C 씨는 “교수 임용 과정에서는 사실상 그간의 논문 출판으로 인해 계량화된 점수만을 본다”고 설명했다. 방대한 연구 내용을 교수 임용 심사자가 다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학회에서 심사를 통과한 논문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C 씨는 “학술지의 논문 게재 심사 때 동료 평가자들이 제대로 평가했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학회의 느슨한 논문 심사를 비판했다. 논문 단계에서 표절을 막기 위해 ‘유사도 검사(similarity research)’를 하는 학회도 있지만, 모든 학회에 이와 같은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김용찬 전 교수의 표절 논문이 게시되었던 ‘한국정치학회’와 ‘국제정치학회’측에서는 “논문 심사 과정에서 표절 검증 절차는 없다”고 밝혔다. 현재 시스템 내에서는 연구자의 소속기관, 논문이 편찬되는 학술지가 모두 논문 심사 과정에서의 ‘동료 평가’에 연구 윤리를 맡겨놓은 셈이다. 생명과학부 이현숙 교수는 “연구 윤리 행위를 걸러내는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아 동료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구윤리는 사실상 연구자 개인의 윤리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윤리 부정 행위 방지, ‘제도적 보완’,‘연구자 개인의 윤리의식 강화’병행돼야연구 윤리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제도적인 보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논의에만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학교 연구처는 “표절을 걸러내는 시스템 ‘Turn it in’의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Turn it in’은 논문 및 과제에 대한 표절 여부를 검사해주는 표절 전문 검색 데이터베이스로 1억 2천 만 건의 기존 논문, 1억 개 이상의 출판물 및 웹사이트 등의 자료와의 유사성 검색 결과를 제공하며 한국어로 작성된 논문도 번역을 통해 검색이 가능하다. 의 보도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하버드대학을 포함해 미국 100위권 대학 중 70%와 영국 대학 98%가, 국내에서는 KAIST와 포항공대를 포함해 12개의 국내 대학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 연구처에서는 “‘Turn it in’데이터베이스에 한국어 논문이 없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카이스트나 포항공대는 이공계 대학이고 논문을 영어로 써 프로그램 사용이 용이하지만, 서울대는 문과가 반이 넘어서 힘들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학생들의 표절을 막기 위해 도입된 ETL 표절 방지 프로그램은 인터넷이나 출판물에 대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표절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들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이와의 유사성을 검색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표절 방지에는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활용률도 2012년 1학기 37%, 2학기 39%에 그치고 있다. 2008년, 교육기술과학부(교과부)는 논문 유사도 검색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발표했지만 2010년 이를 취소했다. 교과부 류재승 서기관은 “정부 차원에서 논문 유사도 검색 시스템을 갖출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예산 때문에 사업을 중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선진국에서는 민간 기업이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보급하지 국가가 보급한 사례는 없다”며 “민간이 개발, 보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도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학회, 학교, 교과부가 서로 연구 윤리에 대한 책임과 제도 도입을 미루는 사이 연구 윤리는 결국 연구자 개인의 양심에 놓이게 됐다. 생명과학부 이현숙 교수는 연구 윤리의 확립을 위해 “학문 초입 단계인 학부 때부터 관련 교육을 통해 개별 연구자의 연구 윤리를 확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교수는 “학생들에게 신념을 가지고 계속 가르치면 장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며“전 대학에 연구 윤리에 관한 엄격한 태도와 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현재 서울대학교 학부생이 의무적으로 수강하는 연구 윤리 관련 수업 내용은 ‘대학국어’ 과목에서 다루는 일부 내용이 전부다. 대학국어 양소영 강사는 “대학국어에서 표절을 관련 내용을 더 다루면 좋겠지만 시간적 제약 때문에 어렵다”며 “표절 교육 관련 타 과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국어 이외에 관련 수업은 ‘진리탐구와 학문윤리’가 2006년부터 학부 교양 수업으로 1년에 한 번 개설되고 있다. 핵심 교양이나 의무 수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00명이나 되는 강좌가 10분 만에 채워지지만 서울대학교 신입생이 3000명임을 감안한다면 100명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학원에서는 ‘연구윤리’수업이 개설되고 있지만 농생명과학대학과 의과대만이 의무적으로 수강하고 있고, 수업 내용이 주로 ‘실험 윤리’에 관한 내용이라 문과 대학원 학생들의 수강 비율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생명과학부 이현숙 교수는 “연구 윤리 부정 행위를 막기 위해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구 윤리 부정 행위가 적발되면 승진이나 정년 보장, 징계 등에서 반드시 불이익을 줘 확실히 패널티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수경 사건의 경우 이전에도 한 학술지 편집장으로부터 논문 조작 관련 제보가 있었는데, 당시에 구두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넘어간 이후 지금은 17건의 논문 조작으로 결국 해임까지 이르렀다. 이 교수는 “징계가 확실하다면 이렇게까지 사건이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진실은 밝혀진다는 믿음과 연구 윤리를 지키는 훈련이 없으면 유혹에 흔들리기 십상”이라며 “연구 부정행위는 반드시 걸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윤리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연구자 개인의 의식적 측면뿐만 아니라 제도적 측면 양쪽 모두의 보완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