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안산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에 대한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안산이주민센터 관계자들은 안산 지역에서 발생했던 한 폭행 사건에 관한 자체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사건은 조사가 이뤄지기 두 달여 전인 4월 3일, 이주민 노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안산이주민센터 관계자들이 두 달이나 지난 사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이게 된 것은 이 사건을 다룬 6월 1일 MBC 9시 뉴스데스크의 보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도를 통해 이 사건을 접하고 난 후 조사에 착수했던 안산이주민센터 관계자들은 자체 조사 과정에서 뉴스에 보도된 내용과는 다른 몇 가지의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사건은 민족 감정으로 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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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 속 피의자의 진술은 “옛날에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지배를 받아 평소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라는 자막으로 처리됐다. |
사건에 대한 뉴스 보도는 당시 현장을 보여주는 CCTV 화면으로 시작됐다. 10여명의 외국인 남성들이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도중, 달아나는 한 남성을 발견하고는 그를 뒤쫓아 가 단체로 폭행했다는 것이 이 화면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어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은 동티모르 출신의 노동자들이며 맞은 사람은 인도네시아 출신의 노동자들이라는 내용이 제시됐다. 기자의 설명은 이들이 술집에서 시비를 벌였으며 감정이 상한 동티모르 노동자들이 길에서 만난 다른 인도네시아인 2명을 집단 폭행했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어 보도는 과거에 동티모르를 지배했던 인도네시아에 대한 반감 때문에 폭력을 휘둘렀다는 동티모르 피의자의 진술이 있었다는 내용으로 넘어갔다. 피의자의 진술 화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된 채로 사용됐으며 진술에 대한 자막은 “옛날에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지배를 받아 평소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표기됐다. 기자는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인들은 3만 명에 가까운 반면 동티모르인들은 4백여 명에 불과하다는 것도 배경이 됐다”고 멘트를 덧붙였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등장한 한 경찰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많은데 자기들은 적으니까 피해를 본다고 생각한 거죠”라고 말하며 앞의 내용을 뒷받침했다. 보도는 폭행을 당한 인도네시아인 2명이 두개골이 함몰되는 등의 큰 부상을 입었음을 전하며 그렇게 끝이 났다. 잘못된 보도 내용들, 하지만 사실은…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하게 된 안산이주민센터 관계자들은 이후 자체적으로 사건의 재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접했다. 자신들이 직접 조사한 사실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들을 보도의 여러 부분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를 담당했던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뉴스가 너무나 많은 사실들을 왜곡시켰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사무국장은 “이 사건은 보도된 것처럼 민족 감정으로 인한 조직적인 폭력이 아니었으며, 동티모르 피의자들 역시 그러한 내용의 진술을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뉴스 보도는 이 사건이 술집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으나 이는 잘못된 내용이었다. 사건은 공원에서 동티모르 노동자들과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함께 어울려 맥주를 마시던 도중 생긴 마찰이 다툼으로 커지게 되면서 발생했다. 한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실수로 그의 담뱃불이 한 동티모르인의 얼굴에 스칠 뻔 했고 이것이 발단이 돼 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며, 과거 식민 지배 관계에서 비롯된 민족 감정이 오로지 사건의 원인이 된 것처럼 보도됐다. 또한 “옛날에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지배를 받아 평소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라는 자막으로 표기된 동티모르 피의자의 진술 내용 역시 실제 발언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음이 밝혀졌다. 방영된 피의자의 진술을 다시 들어보고 해석해 본 결과 그 진술은 “옛날에는 같은 나라였는데 지금은 따로 떨어져있다”라는 의미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 발언 내용과 표기된 자막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산이주민센터 관계자들은 피의자들이 경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 내용 일체를 다시 확인했다.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동티모르 피의자들은 인도네시아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담배를 든 손으로 기분을 나쁘게 했기 때문에 그를 때렸다고 경찰에게 분명히 진술했다”면서 “경찰 조사 과정 내내 민족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동티모르 피의자들이 다툼으로 감정이 상해 길에서 만난 인도네시아인을 폭행했다고 보도된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사무국장은 “뉴스에서는 폭행을 당한 인도네시아인들이 이 사건과 관련돼있다는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피의자들이 전혀 무관한 사람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며 “실제로 폭행을 당한 이들은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루된 당사자들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동티모르 피의자들이 오로지 민족과 연관된 감정적인 이유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을 폭행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계속된 왜곡 보도와 제기되는 의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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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가 한산한 이유를 폭행 사건때문이라고 설명한 보도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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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네는 무법천지다. 경찰서 하나 더 생겨야 한다”고 말하는 한 동네 주민의 인터뷰를 인용한 보도 화면. |
6월 1일 이 사건을 전한 MBC 9시 뉴스데스크는 다음 날인 6월 2일 또 다시 외국인 노동자 범죄와 관련된 내용을 보도했다. 앵커는 최근 국내에서 외국인들의 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이러한 상황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또 이 때문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경우 밤이 되면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울 정도라는 멘트를 덧붙였다. 앵커의 설명에 대한 자막으로는 ‘무법지대 국경없는 거리’라는 문구가 사용됐다. 이어 기자는 전날 보도했던 안산의 폭행 사건을 다시 한 번 언급했고 기자가 직접 안산을 방문, 취재하여 밤거리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으로 내용이 이어졌다. 기자는 “최근 외국인 범죄가 잇따라 발생해서인지 행인이 뜸하고 밤거리는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라는 멘트를 전하며 “밤늦게까지 장사하는 사람들도 불안한 표정”이라고 안산의 거리를 보도했다. 이어진 화면에서는 “이 동네는 무법천지다. 경찰서 하나 더 생겨야 한다”고 말하는 한 동네 주민의 인터뷰가 비춰졌다. 그러나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사건에 관계없이 이곳은 공장지대이기 때문에 평일 밤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원래부터 적다”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왜곡하려는 뉴스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실제로 앞서 언급된 안산 외국인 폭행 사건의 경우 MBC 뉴스데스크의 외국인 노동자 범죄 관련 연속 보도가 이뤄지기 두 달 전인 4월 3일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6월에 이뤄진 보도를 보면 CCTV 화면이 제시되는 과정에서 이것이 4월 3일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 자막으로 표기되고 있을 뿐 기자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설명되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김 사무국장은 “두 달이나 지난 사건을 다시 들춰내 그것을 과장, 왜곡해 보도한 것은 외국인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경찰의 의도를 드러내는 일”이라며 보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중순 경, 경기지방경찰청은 안산의 다문화 특구마을에 대규모의 외국인 범죄 수사 본부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MBC 뉴스데스크가 지난 4월 안산에서 일어난 이 범죄 사건을 보도한 시점은 이 발표가 이뤄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초였다. 결국 주민들과 관련 단체들의 반대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됐으나 보도와 관련된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왜곡된 보도는 왜곡된 인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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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 없이 경찰청의 발표 자료만을 통해 사건을 보도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언론의 이러한 보도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김 사무국장은 “철저한 조사 없이 이뤄지는 언론의 과장되고 왜곡된 보도들로 인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기존의 편견들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러한 보도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보도를 통해 이들이 완전히 무서운 존재들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정말로 안타깝다”는 심경을 털어놨다. 이어 그는 “6월 1일 보도된 사건과 관련하여 MBC는 직접 이 동네를 방문하여 취재를 하지도 않았다”고 폭로하며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 없이 경찰청의 발표 자료만을 통해 사건을 보도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폭행 사건을 민족 감정이라는 민감한 내용으로 호도한 경찰청은 물론이고 그러한 경찰청의 보도 자료를 그대로 이용, 왜곡해서 보도한 언론의 태도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틀간 이어진 연속 보도에 의해 중요하게 다뤄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뉴스 보도나 신문 기사의 경우 정부 기관 또는 기업의 보도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보도 자료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나 확인 절차 없이 그것이 모두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안산이주민센터는 자체 조사 이후 여러 관련 단체들과의 공동 성명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경찰청의 조사와 언론 보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경기도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피의자들이 진술에서 ‘식민지배로 인한 민족감정’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는 것을 시인했을 뿐,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몇몇 인터넷 신문 기사들을 통해 이 사안이 잠시 재조명되기도 했으나 이후 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