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변화를 택했는가?

‘오렌지’는 사라졌다우크라니아의 역사적, 지정학적 요인을 검토하지 않고선 현재 우크라이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렵다.우크라이나는 나라를 가로지르는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동부 지역은 러시아어를, 서부 지역은 우크라이나어를 각각 사용할 정도로 동서 지역간의 이질감이 강했다.동부 지역은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여전히 친러시아적인 노선을 선호했고, 서부 지역은 서유럽과의 밀접한 관계를 추구하는 등 친서방적인 노선을 추구하고자 했다.

‘오렌지’는 사라졌다

우크라니아의 역사적, 지정학적 요인을 검토하지 않고선 현재 우크라이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는 나라를 가로지르는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동부 지역은 러시아어를, 서부 지역은 우크라이나어를 각각 사용할 정도로 동서 지역간의 이질감이 강했다. 동부 지역은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여전히 친러시아적인 노선을 선호했고, 서부 지역은 서유럽과의 밀접한 관계를 추구하는 등 친서방적인 노선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는 곧 정치적인 지형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서 지역 간의 갈등, 친서방 대 친러 간의 대립 구도가 깊게 자리잡게 된 셈이다. 2004년 대통령 선거 당시 총리이자 집권 여당의 후보자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는 동부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고, 야당의 빅토르 유셴코 후보는 서부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야누코비치 후보는 동부 지역에 대한 선심성 정책과 친러시아적 성향을 내세운 반면 유셴코 후보는 당시 정부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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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오렌지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이들은 분열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출구 조사 결과 우세한 것으로 예상된 유셴코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패배했고, 대대적인 선거부정이 포착됐다. 이에 20여만 명의 유셴코 후보 지지자들은 키예프 독립 광장으로 몰려들어 야당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으로 광장을 물들였다. 미국 등 서방 세력은 오렌지 혁명을 민주화를 위한 투쟁으로 환영하며 지지하고 나섰다. 결국 헌법까지 개정하는 초유의 사태 끝에 재선거가 합의됐고 유셴코 후보가 재투표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오렌지 혁명’을 성취했다. 그로부터 6년 뒤, 올 2월 열린 대선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오렌지 혁명의 ‘잔 다르크’라 불린 율리아 티모셴코 후보 총리 대신 오렌지 혁명으로 물러나야 했던 야누코비치 전 총리를 선택했다. 오렌지 혁명의 중심 인물이었던 유셴코 후보는 1차 투표에서 겨우 5.5%의 지지율을 얻은 채 초라하게 퇴장해야 했다. 오렌지 혁명 세력이 무너지고 친러 성향 야당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오렌지 혁명 세력이 이번 대선에 참패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크게 2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정치적 혼란이다. 한국외대 홍석우 교수(우크라이나어과)는 “오렌지 혁명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구세력이 헌법을 바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총리제로 시스템을 바꿨다. 이 때문에 유셴코는 매번 정책의 결정 순간마다 야누코비치가 이끄는 지역당의 반대에 부딪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집권한 혁명 세력 내부에서도 대립이 일어났다. 오렌지 혁명의 ‘잔 다르크’로 인기를 끈 티모셴코 총리가 실세로 등장하자 대립은 더욱 심해졌고, 2005년 9월 유셴코가 티모셴코 총리를 해임하면서 혁명의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2005년 이래로 총선만 세 차례를 치르며 선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두 번째는 극심한 경제난이다. 유셴코 대통령이 취임부터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과 나토(NATO) 가입을 공언하는 등 러시아와 마찰을 빚었다. 우크라이나는 전체 가스 수입량은 80%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등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에 큰 의존을 하고 있었다. 그 결과 해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가격 상승 압박은 우크라이나의 경제에 큰 타격을 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더욱 극심해진 경제난 속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로써는 어려운 이념과 정치보다도 현실적인 경제 문제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퇴보의 책임은 분명 4년간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오렌지 혁명 세력이 지게 된 셈이다. 홍 교수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유셴코는 자종족 중심의 민족주의에 연연하여 반러시아적 감정만 부추겼다. 결국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효과적인 외교정책에도 실패해 경제적 파국을 맞게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오렌지’는 남았다앞선 일련의 이유를 짚어볼 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선택은 정치적 해석이 따르는 사안이 아니라 전 정권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응징이자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의사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1차 선거에서 모든 후보가 국민의 1/3 이상의 지지율을 얻지 못했으며 2차 투표에서 티모셴코 후보는 채 5%도 되지 않은 적은 표 차이로 패배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야누코비치도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닌 셈이다. 즉, 이번 대선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바뀌었다는 해석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으로 오렌지 혁명이 지닌 의미가 퇴색되진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홍 교수는 “오렌지 혁명은 대중 혁명이었다. 유셴코와 티모셴코 또한 구공산 세력과 신흥독점재벌과 연계된 인물로 국민들의 민주주의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고 결국 대중의 민주주의 요구를 수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혁명을 이끈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선 국민들이 다시 평가하리란 것이다. 또 이미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상당히 발전했다는 점도 민주화가 역행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뒷받침한다. 심각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선거제도와 의회제도가 서구화됐고, 정당정치나 후보자들의 정치적 견해 또한 러시아와 차별화되는 유럽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오렌지 혁명의 한계를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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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코비치 당선자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는 외교정책을 추구하며 유셴코가 남긴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떠맡았다.

야누코비치 당선자의 앞에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미 티모셴코 총리가 이번 총선에서도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복에 나서고 정치적으로 방해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정책적 동력을 갖기 위해 티모셴코 총리를 해임하고 조기 총선을 열기 위해서는 의회를 장악해야 하나, 의원수가 부족한 상황이기에 정치적 수완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티모셴코 총리의 정치적 방해 앞에 지난 유셴코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무력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대립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정치적인 혼란이 지난 정부보다 더욱 가중될 수도 있다. 극에 달한 경제 위기 극복도 큰 과제다. 정치적 불안을 이유로 IMF에서 지원을 거부했고,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다. 유럽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도와줄 여력이 없을 것이며,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개입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정치나 경제 문제 모두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난국이다. 야누코비치 정부가 지난 정부가 남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이 집중된다.칠레, ‘민주 대 독재’ 구도가 무너져한편 올 1월 17일 실시된 칠레 대선 2차 결선투표에서 우파연합 ‘변화를 위한 연합’ 소속의 세바스띠앙 피녜라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기독교민주당(PDC), 사회당(PS), 민주당(PPD), 급진사회민주당(PRSD) 등 4개 정당으로 이뤄진 좌파연합인 ‘콘세르타시온’이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지고 20년간 연속 집권 이래 처음 정권교체가 일어난 것이다. 올해 61세의 피녜라 당선자는 중남미 최대 항공사인 ‘LAN’의 대주주이자 민영 공중파 TV채널인 칠레비시온(Chile Vision)과 프로축구단 ‘Colo Colo’를 소유한 최대 재벌 중 한 사람이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 지 추산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12억 달러에 이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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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녜라 당선자는 카드 사업으로 부를 거머쥔 성공한 사업가 출신으로 칠레 국민은 그가 칠레의 성장동력을 찾아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칠레 대선의 결과에서 주목할 것은 20년 간 집권해오던 좌파연합의 패배다. 전문가들은 피노체트 독재정권 이후 유지된 우파와 좌파 간의 대립 구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우선 피노체트 대통령이 2006년 사망하면서 좌파연합이 가지고 있던 도덕적 정당성과 우위가 힘을 잃게 됐다. 좌파연합은 과거 17년 간의 독재 기간 중 3,200여 명을 희생시킨 군부독재 정권의 인권유린을 거론하면서 선거를 민주 대 독재 구도로 이끄는 전략에 주력해왔고 많은 이득을 얻었다. 그런데 피노체트가 사망함으로써 과거 독재자와 협력했고 인권탄압 문제에 침묵해 왔다는 우파 정치세력이 가지고 있던 굴레에서 해방돼 온건한 정치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칠레 정치 전문가들은 1973년 군부쿠데타 이후 36년이 지나고 민주화를 성취하게 되자 칠레 국민들이 군부독재에 품었던 두려움이 해소됐고, 이 결과 더 이상 좌파연합이 사용해온 선거구도가 유효하지 않게 됐다고 분석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1차 투표 하루 전 좌파연합 후보인 프레이의 부친인 에두아르도 프레이 몽딸바 전 대통령이 피노체트 장군의 명령으로 살해됐다는 사실을 발표해 ‘민주 대 독재’라는 선거 프레임을 강화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좌파 연합의 내분 또한 새로운 대립각을 만들어냈다. ‘30대 기수론’을 들고 나선 엔리께 오미나미 후보는 좌파연합에서 후보를 예비선거가 아닌 소속정당들의 수뇌부 간 담합으로 결정한 것에 반대하며 독자출마를 강행했다. 즉, 전통적인 좌우 대립의 선거전을 거부한 좌파 이탈 후보가 등장한 것이다. 오미나미 후보는 1차 선거에서 20.13%를 득표하여 좌파연합 후보 에두아르도 프레이의 득표일인 29,6%에 근접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는 결국 좌파 연합의 표를 갈랐고 피녜라 후보의 당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좌파정권 20년, 변화를 요구받다이런 변화의 원인에 대해 국민들이 20년 간 중도좌파 정권에 염증을 느끼고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피녜라 당선자는 좌파연합이 칠레 정치, 경제적 발전을 이끈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좌파 이탈 후보인 오미나미 후보 또한 집권 좌파연합의 무반응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셈이다. 좌파연합은 우파에 대한 반대라는 네거티브 캠페인에만 의존한 결과, 유권자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결국 좌파연합 후보는 비정규직, 저임금, 사회적 불평등, 공교육의 질 저하와 같이 칠레 국민들이 당면한 문제에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내지 못했고 패배하고 말았다. 피녜라 후보가 칠레에서 성공의 상징이라는 점도 대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좌파연합 후보인 프레이가 “칠레는 대통령이 필요하지 CEO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하며 대통령이 될 경우 기업인으로서 사익과 공익 사이의 불가피한 충돌이 벌어질 것이라 말했으나, 칠레에서 부는 피녜라 후보의 성공 열풍을 가라앉힐 순 없었다. 칠레 국민들은 성공한 기업가 출신인 피녜라 후보가 경제를 살릴 적임자라 기대하고 있다. 즉, 더 이상 과거처럼 좌우 대결보다도 누가 국가 발전에 적임자인지가 중요한 투표 기준이 된 셈이다. 피녜라 후보는 칠레 경제의 문제는 성장동력의 상실이라 진단하고 그 원인인 생산성 하락을 해결하는데 주력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 정부는 피노체트 정권 이래로 좌파 정권에서도 채택된 시장개방에 기초한 시장친화적 경제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경제 노동분야에서 노동 유연성의 인정, 국영 구리회사의 50% 민영화, 부가세 및 유류세 감면, 민간회사가 관리하는 연금제도 도입 등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분명한 정책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다른 후보와 차별화된다. 피녜라 후보는 지난 1월 26일 대국민 연설에서 국정의 주요과제로 60만 명에 이르는 청년 실업자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 정부에서 100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성장률을 연 6%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범죄 예방 대책을 세우는데 주력하고 약 60만 명의 청소년이 마약에 노출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또 100만 명에 이르는 의료혜택 미수혜자들과 60여만 미주택 가구 문제, 공교육의 질 강화 등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좌파연합이 여전히 상원에서 다수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원에서 미세하나마 우파연합이 수에서 우세하나 여전히 과반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새 정부로서는 정치적 동력 확보를 위해선 좌파연합과의 협력이 최우선 과제다. 또 현 대통령의 정책 지지율이 80%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것도 큰 부담이 된다. 현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경제 위기 속에서도 빈민 구제와 중소기업 지원에 큰 재원을 투자하는 등 복지망 구축에 힘썼고 큰 지지를 받았으나 연임을 금지한 칠레 헌법에 따라 이번 3월에 물러난다. 그 외에 좌파 정권의 기반이 튼튼한 것으로 알려진 남미에서 이러한 칠레의 정권 교체는 남미의 앞으로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주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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