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나이 먹은 기자들의 ‘관악구 상륙작전 Reloaded’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는 이 많은 방 중에, 당신을 만족시킬 곳은 과연 어디일까?기자가 대학에 들어와 처음 살 방을 찾는 일은 고역이었다.녹두거리라는 곳도 너무 낯설었고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되지 않았지만 개강을 목전에 두고 서둘러 집을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아무런 정보도 없이 방을 구했던 방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따뜻하게 난방해주고 관리비도 싸다더니, 겨울에는 덜덜 떨어야했고 관리비는 슬금슬금 비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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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선택을 기다리는 이 많은 방 중에, 당신을 만족시킬 곳은 과연 어디일까?

기자가 대학에 들어와 처음 살 방을 찾는 일은 고역이었다. 녹두거리라는 곳도 너무 낯설었고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되지 않았지만 개강을 목전에 두고 서둘러 집을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방을 구했던 방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따뜻하게 난방해주고 관리비도 싸다더니, 겨울에는 덜덜 떨어야했고 관리비는 슬금슬금 비싸졌다. 방을 구할 때는 개별난방을 할 수 있고 관리비가 월세에 포함된 방을 고르는 게 속이 편하다는 사실을 알 만큼 자취에 익숙해진 현재, 기자는 다시 녹두거리로 나서 신입생의 입장에서 또 다시 집을 찾는 삼만 리 여행에 나섰다. 이른바 ‘나잇살 좀 먹은 기자들의 관악구 상륙작전 Reloaded’다.부동산의 과장광고에 상경 직후부터 실망새내기 시절, 무작정 서울에 가서 방을 구하는 것이 걱정이 됐던 기자는 인터넷을 둘러본 적이 있다. 서울이라 비싸리라 생각했던 바와 달리 인터넷의 방값은 지방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사진으로 보는 방은 자취 생활의 환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예뻤다. 하지만 직접 올라와서 방을 둘러보면서 기자의 꿈은 짓밟혔다. 인터넷에서 본 가격의 방은 흔치도 않았고, 실제로 가보니 시설도 실망스러웠다. 인터넷의 사진들은 결국 부동산 업체들의 호객활동을 위한 ‘낚시’인 셈이었다. 부동산중개업자 A씨는 “지방에서 찾아온 신입생들이 인터넷을 보고 전세기준(월세 1만원당 임대차 보증금을 100만원으로 환산) 3천~4천 대의 방을 찾지만 직접 돌아보고 나서는 그 가격대 원룸의 시설에 실망해서 전세기준 5천 대의 방을 계약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지방의 3천~4천 대의 방에 비해 훨씬 낙후된 시설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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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동산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매물 정보. 서울대입구역에서 4분 거리에 위치한다는 이 원룸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 샤워부스까지 갖추고 있으면서도 월세 500만원에 35만원이라고 기재돼 있다.

실제로 지난해 YMCA 대학생신용지기 활동보고서에 따르면(서울지역 응답자 315명, 그 외 지역 응답자 163명, 총 478명) 서울지역에서 자취에 들어가는 전세기준금은 3~6천만원대가 대부분을 차지(응답자의 76%, 239명)했고, 최빈치는 4~5천만원대(응답자의 29%, 92명)였다. 그 외 지역은 2~4천만원대가 주를 차지(65%, 107명)했고 최빈치는 3~4천만원대(응답자의 41%, 67명)였다. 이번에 녹두로 나섰을 땐 그 점을 기억하면서 인터넷 가격대를 믿지 않고 직접 가서 확인해보기로 했다.판단을 흐리게 하는 각종 ‘조건’들부동산중개소에 가보니 2월이라 그런지 매물이 많았다. 부동산중개업자 B씨는 “기숙사가 공사에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체감이 될 정도로 수요가 많이 늘어난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때문에 여러 방을 돌아다니면서 살펴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중요한 건 가격대와 시설 수준이었다. 녹두의 원룸 가격에 소위 프리미엄이 붙는 건 크게 3가지 정도가 있다고 한다. 학교로 가는 셔틀버스 탑승 장소에 얼마나 가까운지, 녹두거리의 큰 대로에 얼마나 가까운지, 그리고 각종 생활 집기가 모두 갖추어진 ‘풀옵션’인지 아닌지. 처음 신입생들이 들어왔을 때 의외로 난감해하는 것이 ‘셔틀 프리미엄’과 ‘풀옵션 프리미엄’이다. ‘셔틀 프리미엄’은 보통 방 월세에서 5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면서도 애매한 거리의 장소까지도 모두 붙는 바람에 방값 상승의 주범이 되곤 한다. 방을 보러 돌아다니다 만난 김양희 씨는 “10학번 새내기인 아들 대신 방을 구하러 왔지만 지리를 모르겠다. 셔틀버스에 가까우면 좋다고 하니 일단 가깝다고 한다면 돈을 조금 더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녹두의 지리를 모르는 신입생이나 부모들은 이와 같은 심리로 셔틀버스 탑승 장소에 가까운 방을 구하지만 실상 알아보면 덤터기를 쓴 꼴이 많다. ‘풀옵션 프리미엄’ 역시 애매하기는 똑같다. 돌아다니면서 본 대부분의 원룸이 ‘풀옵션’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개별 세탁기가 아니라 공용 세탁기를 쓰는 곳도 있었고, 방 크기에 따라서 침대가 없는 곳도 있었다. 풀옵션의 정의가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 직접 둘러보면서 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백문이 불여일견? 눈으로 볼 수 없는 조건들은 어쩌나?이렇게 애매하게 생활비를 늘리는 조건들은 그 외에도 많다. 각종 공과금과 관리비가 대표적이다. 특히 공과금이 월세에 포함되지 않아 개별 납부해야 하는 방은 자기가 사용한 것에 비해 더 많은 요금을 내는 경우가 잦다. 건물 전체 수도계량기의 사용량을 단순히 세입자 수로 나누어 부담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난방비도 미리 사전에 계약 조건에 정해두고도 가스비용 인상 등을 이유로 계약 조건에 반하여 집주인이 마음대로 올리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나중에 방을 나갈 때 보증금에서 그 돈을 제외하는 경우도 많다. 학생들이 집주인과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집주인과 학생들이 돈을 두고 감정이 상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로, 주인에 대한 평판 역시 고려해야 할 주요 변수다. 집을 구하러 찾아갈 당시에는 친절한 태도를 보였던 주인이 생각지도 못한 추가 금액을 요구하거나, 공과금을 부당하게 부과하는 경우에는 당황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실제 학내 포털사이트 ‘스누라이프’에 제기된 집에 대한 불만 중 대다수는 ‘주인의 처우’에 관련한 것이다. ‘악덕원룸순위’라는 사이트 내 인기 게시물에는 주인들에 대한 불평과 함께 피하는 편이 좋은 원룸의 리스트가 게재되어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주인들의 태도로는 계약 당시에는 언급하지 않은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것과 학생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스누라이프’에 제기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실제 거주자 C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봤다. ‘악덕원룸순위’ 리스트에 이름을 맨션의 실제 거주경험자는 “방을 청소해준다는 이유로 내가 없을 때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기에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지키신 것 같지는 않다”며 주인의 사생활 침해에 대해 동의했다. 짧게 살다 나가는 바람에 스누라이프에서 고발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는 C씨는 “방이 너무 추워 이불을 3개씩 덮고 자도 추웠다. 그런데도 전열기구를 사용하면 전기세를 더 내야한다면서 사용을 못하게 했던 기억은 아직도 난다”고 회상했다. 무엇보다도 C씨를 괴롭혔던 것은 주인이 주는 돈에 대한 압박이었다. “내가 너를 친딸로 생각해서 이 정도 금액으로 살게 해주는 것이라는 말을 밥을 먹을 때마다 계속 하시는 게 너무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러면서 세제비 등을 추가로 달라고 하거나, 오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방 값도 올려서 받거나 하시더라”며 “결국 그 방에서 몇 개월 살지 못하고 다른 방을 구했다”고 말했다.내가 한 말을 옆 방 사람이 모르게 하라, 어떻게?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방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녹두에서 월세 45만원에 방을 구한 D씨는 “옆방에서 전화하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며 방음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다. 입구역에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 고급 주택에서 거주했던 E씨도 “옆방에서 싸우는 소리, 윗집에서 개가 걸어다니는 소리에 시끄러워 살 수 없었다”며 “부동산 중개인에게 가서 항의했지만 집을 팔고나더니 어쩔 수 없다며 신경도 써주지 않았다”고 불쾌해 했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타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소음을 원치않게 들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사생활과 관련된 소음을 남이 듣고 있다는 것까지 포함하는 문제다. 즉 이웃들이 원치않는 사생활침해를 서로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한 부동산 중계소에 찾아가 방음문제가 없는 집은 없는지 문의해봤다. 그러자 녹두에서 오랜 기간 부동산 중계업을 했다고 밝힌 중계업자 F씨는 “대부분의 원룸 건물들이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되기 때문에, 옹벽으로 벽을 만들 수 없다. 없는 벽을 벽돌로 대강 만들어 놓기 때문에 춥기도 춥고, 방음이 당연이 안 될 수밖에 없다”라며 방음문제가 없는 집이 드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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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13만원의 잠만 자는 방. 5515번의 종점에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방은 책상을 놓으면 한 면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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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5만원인 6층에 위치한 옥탑방. 옥탑방까지 가는 계단에는 소화기도, 창문도 제대로 없었다.

풀 옵션? 방음? 됐고, 녹두에서 잠만 자도 좋거든?

그렇다면 소히 말하는 ‘풀옵션’을 갖췄으면서 방음과 채광도 상대적으로 잘 되는 시설을 갖춘 원룸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은 얼마일까? 기자의 질문에 중계업자 F씨는 “학생들이 대략적으로 만족하는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보증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50~55만 원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옵션이나 방음에 대해서 따지며 집을 살 수 있는 것은 대략 50~55만원 사이의 월세를 감당할 수 있을 때에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실제 서울대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생들의 주거생활에서도 양극화 현상은 뚜렷하다. 고시원과 원룸들이 신축·개축을 거쳐서 환경이 좋아져도, 순전히 남의 이야기인 사람들은 저렴한 금액으로도 계약할 수 있는 ‘잠만 자는 방’을 찾아 녹두 곳곳을 헤맨다. 실제 전화를 걸어 찾아가 본 잠만 자는 방들은 다양한 가격대의 매물이 있었지만 대게 개인적인 취사나 욕실 사용이 되지 않는 곳들이었다. 직접 찾아간 20만 원대 초반의 잠만 자는 방은 창문 하나 없이 막혀있었고, 방의 가구는 책상뿐이었다. 기자들이 찾을 수 있었던 가장 저렴한 잠만 자는 방의 가격은 보증금 50만원에 한 달 13만원. 주인을 따라 5515의 종점인 현대아파트를 지나서 한참 오르막을 올라 건물에 도착했다. 신발 수십 개가 엉켜있는 현관을 지나, 소화기 하나 제대로 없는 계단과 두 명 이상은 나란히 걷기 어려워 보이는 좁은 복도를 거쳐야 그나마 창문은 가지고 있는 작은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넓은 방을 소개받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는 구조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낡은 옥탑방을 보여줬다. 기울어진 천장을 가진 이 방을 보고, 기자가 서울대 학생들도 이 건물에 많이 거주하는지 묻자 주인은 “많이 살고 있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주인에게 방음이 잘 되는지, 햇빛이 잘 드는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옥탑방엔 옆방도 창문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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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거래하는 ‘잠만 자는 방’의 광고가 녹두 곳곳의 벽과 전봇대에 붙어있다.

방을 소개받고 나서자, 오르막 아래에 펼쳐진 수 없이 많은 집들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깨끗하지만 방음과 채광이 좋지 않은 집, 주인과의 마찰이 갈등의 주요한 원인인 집을 거쳐 고시원과 잠만 자는 방을 돌아보고 집으로 가는 길. 문득 우리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간 곳이 진짜 ‘집’이었는지 자문했다.봉천동과 신림동에서 내가 편안히 돌아갈 진짜 ‘집’을 찾기 위한 나잇살 먹은 기자들의 상륙작전, 시작은 경험과 연륜을 믿고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경험도 연륜도 소용없는 현실에 미약한 대학생들을 발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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