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미디어와 정치

정권 위기를 부르는 미디어 장악 말레이시아 독립 후 50 여 년 동안 집권하고 있는 여당연합(BN)은 자금, 미디어, 조직, 이른바 ‘3M’(money, media, machinery)을 장악해 왔다.특히 미디어 통제와 장악은 제도적 민주화를 넘어 민주주의 성숙으로 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권 위기를 부르는 미디어 장악

말레이시아 독립 후 50 여 년 동안 집권하고 있는 여당연합(BN)은 자금, 미디어, 조직, 이른바 ‘3M’(money, media, machinery)을 장악해 왔다. 특히 미디어 통제와 장악은 제도적 민주화를 넘어 민주주의 성숙으로 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내 언론 자유를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는 주요 일간지와 공중파 방송들을 여당이 직접 소유하고 언론매체 사업허가를 매년 심사하는, 언론법을 통한 절대적 언론장악에서 비롯된다. 제 1여당인 암노(UMNO)는 말레이계 최대 언론그룹 ‘우뚜싼(Utusan) 그룹’과 ‘뉴스트레이트 타임즈’(영어 일간지 발행)를 2002년에 통합했다. 암노는 1961년 ‘우뚜산 신문’ 기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물리치고 지분 50% 이상을 획득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한편 영어 일간지 ‘뉴스트레이트 타임즈’를 발행하는 NSTP는 정부투자 미디어 기업인 ‘미디어 프리마’(Media Prima)를 통해 지분 43%를 확보하고 있었다. ‘미디어 프리마’의 최대 주주는 암노가 설립한 ‘가붕안 꺼스뚜리’(Gabungan Kesturi)다. 이들 기업의 합병으로 주요 영어 및 말레이어 일간지가 집권 여당의 소유·통제 하에 놓이게 됐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계 최대 여당인 MCA가 최대 영어 일간지 ‘더스타’(The Star)와 유력 중국어 신문들을 소유하고 있다.텔레비전 공중파 채널도 암노가 최대주주로 직접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영 방송인 TV1, TV2와 더불어 민영 방송인 TV3, TV7, TV8, TV9 등 전 채널을 ‘미디어 프리마’가 최대 주주로 실질 지배하고 있다. 라디오는 말레이어 채널인 ‘Hot FM’을 소유하고 있다. 거의 모든 주요 신문과 방송이 여당의 직접통제 하에 있는 셈이다. 말레이시아 제 1여당 암노(UMNO)의 미디어 통제집권당의 언론사 직접 소유와 더불어 출판물관리법(PPPA)과 정보관리법(FIA)은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 악법으로 꼽히고 있다. 타 신문·잡지의 경우에도 매해 발행 허가를 갱신해야 하는 심사제를 시행하고 있어 보도 내용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다. 마하티르가 정치적 난관을 맞았던 99년을 전후로 5개의 언론매체에 대한 허가가 취소되기도 했다. ‘국가질서 유지’와 ‘윤리’를 이유로 지금도 언론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다. 2004년에는 각 언론사에 윤리강령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내정치에 비판적인 해외 언론의 일시적 판매 금지 사례도 있고, 국내 언론인이 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해 국내외 언론·인권단체는 꾸준한 비판을 제기해왔다. 2008년 국제 언론자유도 평가에서 말레이시아는 132위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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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말레이시아키니. 집권 여당은 말레이시아키니 기자를 출입금지 하는 등의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여당의 직접 소유와 강력한 통제로 제한된 언론자유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분출됐다. 인터넷 신문인 ‘말레이시아키니’(www.malaysiakini.net)는 대표적 언론으로 성장했으며 그 밖에 다수의 인터넷 언론과 블로거들이 제한적이나마 정부 비판적 언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들 매체의 영향력이 커지자 주요 인터넷 언론에 대한 경찰의 압수 수색과 블로거에 대한 구속이 있었으며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인터넷 공간에 대한 통제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하티르 집권 당시 IT 산업의 육성을 위해 인터넷 공간의 자유 보장을 공언했던 정치적 부담과 더불어 인터넷 언론의 영향력이 이미 커졌고, 유튜브 등 국외 사이트 활용이 높아지는 등 인터넷 공간을 통제하는 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 신문·방송의 적절한 활용은 집권 여당의 정치적 이익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나 역설적으로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다. 2008년 3월 총선에서 야당은 유례없는 값진 성과(여당의 2/3 의석 확보 저지, 5개 주에서 집권)를 거두며 ‘변화의 바람’을 넘어 ‘정치적 쓰나미’로 말레이시아를 강타했다. 당시 결과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이후 말레이시아 정치 상황은 격변의 나날 속에 최초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2008년 총선 결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나 그 중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하고자 한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이전 총선과 같이 여당의 선거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다. 여당의 공약과 동향으로 가득 메운 신문과 방송에는 민심의 변화를 담을 공간이 없었다. 실제 선거 현장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인종적 장벽을 넘어 연대하고, 정부의 부정부패와 경제 불안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야당의 홍보물이 유튜브에서 수십만 건의 조회를 기록하고, 인터넷 언론과 블로거가 담아내는 ‘진실’은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언론매체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신문·방송의 눈은 애초에 민심을 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 사실의 누락을 넘어 집권 여당이 상황을 오판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었다는 평가다. 아직 인터넷 보급률을 고려할 때 인터넷 언론을 절대적 요인으로 평가할 수 없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아직까지 90%에 가까운 국민들이 정치관련 정보를 전통적 언론매체를 통해 얻는다고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당에 절대적으로 편향된 언론에 정보를 의존하는 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야당에 표를 던졌다는 것이며, 많은 이들이 기존 언론보도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언론의 편향된 시각은 분명한 사실을 외면한 채 장밋빛 전망을 재생산했고, 집권 여당은 이에 안주했다. 때문에 기존 신문·방송에 눈과 귀를 의존했던 이들에게 선거 결과는 충격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 여당을 지원한 언론이 결과적으로 여당의 패배를 부른 역설적인 상황인 것이다. 언론 자유는 소통의 기본 조건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01년 중국계 여당 MCA가 중국계 신문을 인수한 직후 민심의 변화가 그것이다. 당시 최대 영어 일간지 ‘The Star’를 보유한 MCA는 중국어 신문사인 ‘난양프레스’를 인수했다. 78년과 55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어 주요 일간지 ‘난양’과 ‘중국보’를 발행하고 있었으며 마하티르의 정적인 안와르와의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정치적으로는 1998년 안와르 축출 이후에 말레이계 내의 여당 지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중국계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마하티르는 중국계 특별 보좌관을 임명하여 중국계와의 의사소통 및 언론 정책의 강화를 꾀하던 시점이었다. MCA의 움직임은 여당의 언론장악 음모로 언론, 야당,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중국어 신문 인수를 계기로 당 내분이 불거져 당시 MCA 총재가 사임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신문배달업협회에 따르면 ‘난양신문’과 ‘중국보’에 대한 판매가 급격히 감소하기도 했다. 중국계의 여당 지지는 이를 계기로 크게 감소하게 된다. 중국어 언론들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여야를 떠나 중국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요한 통로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계 시민의 반응은 언론장악에 대한 분명한 경고였다. 불행히도 말레이시아 정부와 여당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언론장악을 확대했다. 암노의 미디어 소유권은 지속적으로 확대됐으며 인터넷 언론매체에 대해서는 보안법 등을 적용한 통제와 검열을 확대했다. 지난 총선 이후 “국민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신문과 방송의 일방적 보도가 더 이상 절대적 지위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온·오프라인의 유기적 연결을 통한 대안적 정치공간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전통 언론매체를 통해 여론을 장악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치지형의 변화와 더불어 민주주의를 위한 언론독립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아직 일부지만 언론인단체와 일부 주에서는 언론자유를 위한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취임 100일을 넘은 나집정권은 ‘1 Malaysia’라는 이름하에 국가통합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각종 언론을 통해 당위성을 홍보하고 있다. 언론 자유가 억압된 상화에서 소통부재가 지속된다면 진정한 국가통합은 요원할 것이다. 통제된 언론은 결국 정권의 눈과 귀를 막아 정권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난 총선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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