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의 따가운 시선
식상함이 당신에게 바란다
[독자퀴즈]

식상함이 당신에게 바란다

처음으로 광명 6동 철거민들이 노숙하는 곳에 찾아갔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철거민들은 재개발 현장 앞 길가에 나무판자 몇 개를 쌓아놓고 그것을 ‘집’이라고 불렀다.용역 깡패들이 철거민에게 행한 짓은 내가 지금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의 국민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인터뷰 내내 철거민들의 얼굴에서 그치지 않는 그 웃음들이었다.

처음으로 광명 6동 철거민들이 노숙하는 곳에 찾아갔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철거민들은 재개발 현장 앞 길가에 나무판자 몇 개를 쌓아놓고 그것을 ‘집’이라고 불렀다. 용역 깡패들이 철거민에게 행한 짓은 내가 지금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의 국민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인터뷰 내내 철거민들의 얼굴에서 그치지 않는 그 웃음들이었다. 먼저 일어나 병원에 간다던 아주머니는 웃으며 “무허가 세입자 한 명 있다”고 꼭 기사에 써달라고 했다. 그 말에 다른 철거민은 “무허가가 무슨 세입자야 그냥 무허가지”라고 재치있게 받아치기까지 했다. 이들의 웃음에 나는 인터뷰 도중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제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당장 내 집이 헐리는 것은 아니니까, 나와 관련있는 법인화 기획을 좀 읽다 말고 책을 덮었을 수도 있다. 나름대로 진보 성향이라는 을 선택한 독자도 98호를 읽기 전에는 긴긴 여름방학을 보내느라 용산 참사따위는 깜빡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철거민 문제뿐만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상관 있는 서울대 법인화도 식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총투표를 하느니 마느니, 단과대 학생회가 반대 성명을 내느니 마느니…. 이 기사들이 낯익다면, 낯익음을 넘어 식상하다면, 그것은 부장씩이나 돼서 소위 식상한 아이템을 기사로 또 실은 나의 잘못이자, 그 식상한 아이템들이 좀더 나은 상황이 되도록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는 당신의 잘못이다. 철거민들을 위해, 법인화 찬성 혹은 반대를 위해 당신은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는가? 당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데 왜 구정물에 발을 담가야 하냐고? …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하신 말씀을 당신에게 굳이 상기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맨이 돼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양심을 무관심이라는 장막으로 가려버리지는 말라는 것이다. 적어도 귀를 열고, 눈을 떠 시궁창같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입으로 바른 말을 하고, 부당한 것에 맞서 촛불을 들 힘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손이 오그라들 것 같이 한바탕 잘난 척을 했다. 나도 당신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일찍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으니 이제 펜으로만,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알량한 기자 나부랭이에서 벗어나야겠다. 언젠가는 우리를 떠나가신 ‘그 분들’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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