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범죄’인가 ‘권리’인가

지난 6월 30일 보건복지가족부는 모자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통과시켰다.이 시행령은 기존 낙태 허용기간을 임신일 28주에서 24주로 축소하고, 유전성 정신분열증, 간질, AIDS등의 질병을 낙태 허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법률상의 낙태 허용 범위 축소가 실제 낙태 건 수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지는 미지수다.

지난 6월 30일 보건복지가족부는 모자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통과시켰다. 이 시행령은 기존 낙태 허용기간을 임신일 28주에서 24주로 축소하고, 유전성 정신분열증, 간질, AIDS등의 질병을 낙태 허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상의 낙태 허용 범위 축소가 실제 낙태 건 수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지는 미지수다. 현행법 하에서도 법망을 피해 연간 35만 건 이상으로 추정되는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연하는 현실의 낙태를 반영하듯 인터넷에서는 낙태, 산부인과 등의 키워드로 수많은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산부인과의 추천 뿐만 아니라 “몇 개월째의 낙태는 몇 십 만원”하는 식의 가격 정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실제로 2005년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및 종합대책수립’에 따르면 전국에서 시술되는 낙태 건수 중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낙태는 채 5%가 되지 않는다. 95%이상의 낙태가 불법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셈이다. 낙태 근절을 촉구하는 목소리 “법 개정과 실질적인 사법처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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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반대운동연합ProLife 사무국장 최정윤 씨는 낙태를 근절하려는 정부와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낙태반대운동연합(낙반연)의 최정윤 사무국장은 낙태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의 원인이 낙태가 불법임에도 가볍게 여기는 현 세태에 있다고 진단한다. 최 사무국장은 “불법낙태가 만연하는 기본적인 원인은 법률상의 문제에 있다”며 형법과 모자보건법상의 괴리를 지적했다. 실제 형법 제 269조 및 270조에 따르면 낙태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에 의해 낙태의 예외적인 허용이 가능한데 이 허용 가능 항목들이 모호해 대부분의 낙태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 사무국장은 “낙태 시술이 의료기관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음에도 사법부의 근절 의지가 없다”며 아무리 모자보건법이 개정되더라도 검, 경찰이 단속에 나서지 않는 이상 낙태 근절을 위한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 사무국장은 입법, 사법적 대책 이외에도 낙태를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대책들을 제시한다. 첫째로는 산부인과 의료체계의 개혁 필요성이 제기됐다. “산부인과에서 많은 수의 낙태 시술이 이뤄지고 있는 데는 경제적인 문제가 한 몫하고 있다. 현재 산부인과의 의료수가는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 낮은 의료수가는 저출산과 맞물려 병·의원의 운영을 어렵게 하고, 이러한 사정이 산부인과의 불법낙태시술을 조장 한다”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로 언급된 것은 무책임한 성문화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최 사무국장은 “최근 성 담론에서 성별, 연령 등에 따른 평등이 계속 언급되면서 성의 평등, 개방 등은 끊임없이 주장되고 논해지는 반면 정작 책임지는 성에 대한 목소리는 거의 없다”라고 현 세태를 평가한다. 책임지는 성문화를 위해 최 사무국장은 성이라는 것은 곧 생명과 이어질 수 있는 개념임을 상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우선은 낙태를 막기 위해 올바른 피임법에 대한 교육이 확대돼야 하겠지만, 완전한 피임법은 없는 만큼 성관계에는 생명이라는 무거운 책임이 항상 뒤따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성을 즐길 권리는 성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회적, 신체적 준비가 된 사람들 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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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반연에서 제공하는 태아의 사진. 태아의 생명은 잉태된 순간부터 시작되며 6주가 지나면 이미 뇌 활동을 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낙반연의 설명이다.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해 현실에 적합한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하는 질문에 최 사무국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최 사무국장은 “낙태가 금지돼야 하는 이유는 불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나아가 상대 남성의 정신 건강에 까지 큰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낙태는 살인과도 같은 생명 경시의 행위다. 부모의 사정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 경우 무책임한 성문화를 부추기고 그 결과 낙태가 더욱 만연할 수 있다”라고 정리한 뒤 “낙태가 만연하는 현 상황은 피임 교육 및 혼전 순결 교육 등을 통해 개선해 나가는 것이 옳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최 사무국장은 “이 때의 혼전 순결이란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가부장적인 의무가 아니라 양성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로써 책임감 있는 성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반박도 만만치않아… “개인 선택의 영역에 국가 통제가 개입되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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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윤상 씨는 개인의 선택이어야 할 낙태 문제에 국가가 개입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은 불법적인 낙태가 계속되는 이유는 현 법 체계가 사회경제적 사유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임신을 한 여성은 출산을 결정하기까지 자신과 주변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게 된다”며 이러한 고민이 단순히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이기적 선택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아이를 낳는 것만이 출산의 전부가 아니므로 출산을 위해서는 감당해야할 너무나 많은 부담들이 존재한다. 맞벌이 부부나 미혼모 등이 아이를 키우기에는 사회적 인프라가 미비하고 많은 희생을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이 소장은 양육을 위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개인의 선택에 국가 권력이 개입해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생명 존중에 대한 철학이 없는 정책이라고 말한다. 이 소장은 낙태 반대가 곧 생명의 존엄성으로 연결되는 등식에도 많은 모순과 허울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는 환영받는 임신과 환영받지 못하는 임신이 존재한다. “다양한 상황들에 의해 환영받지 못하는 임신은 분명 발생하고 있다. 중·고등학생이 임신을 하면 학교를 다니기조차 힘들어지는데 정책적인 지원도 전혀 없고, 사회적인 시선도 곱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결단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모든 생명과 출산이 동등하게 존중받고 있지 못함을 지적했다. 결국 낙태 건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적인 낙태 금지가 아니라 누구나 아이를 낳고 싶을 때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소장은 임신을 바라보는 데 있어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삶의 소중함’이라는 관점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이소장은 “사람의 삶은 단순히 정자와 난자가 수정돼 태어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육아, 교육 등을 통해 자아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의 한 일원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며 이 긴 시간 전반에 대한 고민과 존중이 진정한 의미의 생명 존중”이라고 덧붙였다. ‘피임을 통해 낙태를 예방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는 피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발전된 의료 기술에 비해 피임 방법은 원시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임신과 출산이 남성의 몸에서 일어났다면 훨씬 더 많은 연구와 투자가 이뤄졌을 것이다. 의료적으로 어떤 방면에 연구와 투자가 활발해지는가는 사회적 함의와 상당부분 맞물려 있다. 불완전한 피임으로 여성이 임신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지 못한 채 출산만을 의무화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피임의 위험도와 출산에 따른 부담 등을 인정치 않고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여성에게 순결 교육을 주입하고 현 결혼 제도와 가족제도를 고착화 하려는 함의를 추정하게 한다. 이 소장은 “낙태를 금지하는 논리는 결국 순결을 지키다가 결혼관계 안에서만 성관계를 가지고 그 결과 임신하면 출산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낙태반대가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기 보다는 여성에게 순결교육을 주입시키고 현 결혼제도, 가족제도를 공고히 유지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비판한다.인구조절 일환으로 낙태를 대하는 정부 정책 낙태금지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정부가 인구조절의 입장에서만 낙태에 접근하는 편협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낙반연의 최정윤 사무국장은 정부가 모자보건법을 제정하고 낙태를 방조할 때는 산아제한정책에 기인했다가 모자보건법을 개정한 현재는 출산장려정책에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출산장려운동에 낙태반대정책을 포함시키는 정부와 지자체의 최근 행보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윤상 소장 역시 국가의 낙태 관련 정책이 단순히 인구조절을 위해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하거나 낳지 말아야 하는 의무를 지닌 몸으로 통제된다”며 “과거에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뒤떨어진 여성의 선택인 양 비난하더니 이제는 낙태를 한 여성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여성으로 비난의 화살을 맞는다. 국가가 권력과 여론을 통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원하는 방향대로 비난의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 것일 뿐이다”라고 정부의 의식을 비판했다. 낙태에 대한 정부의 의식은 피임에 대한 입장에서도 나타난다. 피임을 위한 정관수술은 낙태와 달리 불법이 아님에도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 출산장려정책으로 인해 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낙태시술의 약58%가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통계자료는 피임을 보호하지 않는 정책이 출산 증가로 이어질지 불법낙태 방조로 이어질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낙태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의 잣대, 순결과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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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이쌍쓰 2005년 새내기 특집호에 실린 글 ‘비밀도 아닌, 거짓도 아닌’. 친구의 낙태를 지켜본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학내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쓰가 출간한 2005년 새내기 특집호에는 친구의 낙태를 옆에서 지켜본 한 편집위원의 글이 실려 있다. 상대 남성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홀로 낙태의 두려움을 견뎌야 했던 여성을 지켜본 편집위원은 ‘섹스가 넘치고 판치는 시대에, 정작 여성들에게 섹스가 쥐어지지 않았으며 사랑 뒤에 폭력이 존재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이 낙태를 통해 받게 되는 무력감과 상처를 서술했다. 학내 여성주의모임을 주최하고 있는 시한(필명) 씨는 ‘합의된’ 성관계를 맺었던 여성들에게도 임신은 불안의 대상이며 임신과 출산, 낙태에 대한 불안이 남성에게는 얼마나 돌아가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시한 씨는 “여성이 감당해야할 불안은 몇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로 낙태를 안 한다면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있고 상대 남성과 결혼을 해야 하는 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미혼모로서 받게 될 사회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있다. 임신을 하거나 낙태를 했다는 사실이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 쏟아지는 ‘싼 여자’ ‘순결하지 않은 깨진 유리’ 라는 식의 시선들 역시 여성을 공포에 떨게 하고 비밀스럽게 수술실로 흘러가게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시한 씨는 “‘강제적으로 행해진 성관계에서 발생한 임신은 낙태를 허용한다’라는 법령과 사회적 담론은 데이트 성폭력, 남성들의 피임 거부등의 이유로 임신하게 된 여성의 입장을 결코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객관적인 자료로 인정하지 않는 지금의 법 제도 속에서 강제성은 남성의 언어와 사고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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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관련해 스누라이프에 게제되는 글 중 상당수는 낙태한 여성에 대한 비난에 치중돼 있다.

스누라이프에서 낙태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몇 개의 글이 검색된다. 그 중 상당수가 ‘낙태’ 라기 보다는 ‘낙태를 한 여성’에 대한 논의다. 낙태를 한 여성의 도덕성 결여, 잔인성, 순결하지 못함에 대한 입장들은 반론, 재반론을 이어가며 펼쳐져 있다. 정작 낙태와 낙태를 야기한 상황에 대한 논의는 생명의 존엄성과 성적 자유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시한 씨는 “이러한 글에서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이중규범이 드러난다. 성욕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지만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모순적 규범이 전제돼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여성을 상대화시킨 채 윤리 문제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낙태 논의에 대해 회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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