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삶의 터전을 부정당하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몇 채의 집들이 지붕을 나란히 하고 이어져있다.화곡본동 산 42번지에는 화곡동 주민들도 모르는 판자촌이 있다.돌로 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치 모자이크 같은 벽들이 다닥다닥 모습을 드러낸다.어지러이 벽을 이루고 있는 판자들이 각각의 집을 구별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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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몇 채의 집들이 지붕을 나란히 하고 이어져있다.

화곡본동 산 42번지에는 화곡동 주민들도 모르는 판자촌이 있다. 돌로 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치 모자이크 같은 벽들이 다닥다닥 모습을 드러낸다. 어지러이 벽을 이루고 있는 판자들이 각각의 집을 구별할 수 없게 한다. 난쏘공의 삽화가 아닌 상가 거리 뒤편에 펼쳐진 2009년의 모습이다.거주민만 빠진 거주 지역 재개발 2004년, 화곡동 판자촌에는 철거의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현 화곡동 철거민대책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는 주민 윤삼랑 씨는 “지역의 철거 및 재개발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민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당황하고 분노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2004년에 재개발 공사를 한다는 시보가 떴어. 그런데 그걸 우리 동네에 공고를 한 게 아니라 인터넷에 쪽지 하나 띄우고 말을 안 해 준거야. 알고 보니까 시보를 그렇게 띄워놓고 이의 신청 기간을 20일 줬더라고. 이의 신청 기간을 3일 놔두고 시보 쪽지를 발견했어. 우리한테 온 것도 아니고 부동산 업자가 보여주더라고. 그래서 부랴부랴 시청이고 어디고 이의신청을 넣은 거지. 아니었으면 그냥 다 넘어가버릴 뻔 했어.” 생태공원 조성을 위해 구청이 다시 철거 및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한 현재도 이러한 행태는 변한 것이 없다. 내년 3월까지 판자촌 철거를 완료하고 공원 조성 공사에 착수한다는 지자체의 계획 역시 판자촌 주민들은 지역 신문을 통해 알게 됐다. 정작 협상의 당사자인 자신들은 내년 3월이라는 기한에 대해 어떠한 공지도 받지 못했으며 합의한 적도 없다고 한다. 스스로 일궜지만 ‘무허가’인 삶의 터전 판자촌 주민들이 철거 및 이전에 합의할 수 없는 이유는 주민들의 실제 거주 사실과 서류상의 소유, 점유 관계에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화곡동 판자촌은 실제 소유자가 따로 있는 땅이 그린벨트로 인해 개발이 제한되면서 공지로 남아있었던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법률상으로만 보면 무허가 점유의 판자촌인 것이다. 판자촌이 형성되던 당시 주민들은 아무것도 없었던 습지에 길을 닦고 집을 짓고 우물을 파 삶의 터전을 스스로 마련했다. 좁은 공간에서 필요에 따라 가옥들을 계속 확장 변경했고, 그 결과 지금처럼 어깨를 다닥다닥 붙인 동네 모양을 가지게 됐다. 마을에 수도와 전기가 다 들어오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들은 판자촌에 대해 관리나 보호는커녕 법률적인 제재조차 하지 않은 채 버려두었으면서 이제 와서 법률상의 권리 관계를 운운한다는 것이 마을 거주민들의 주장이다. 또한 윤상람씨는 “과거 자신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제대로 된 행정절차를 취하지 않은 것은 과거 공무원들의 잘못이며, 현재까지 수십 년간 사람들이 마을에서 살아 온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 것은 현재 공무원들의 직무 태만”이라고 주장했다. 과거부터 잘못 돼 온 서류 관계가 현재까지의 실제 거주 사실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주민 역시 “우리의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호하려 하지 않고 도리어 ‘지금까지 그렇게 무허가로 살게 해 준 걸 감사히 여기라’는 식의 구청 직원의 언행은 있을 수 없는 처사”라고 토로했다. 주민들은 이 판자촌에서 낳아 기른 자식들이 바로 판자촌이 삶의 터전이었다는 증거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거권을 보호 받을 권리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다. 포기할 수 없는 주거권, 그들의 생존권 판자촌 주민들은 현재 빈민해방철거민연합과의 연대를 통해 구청에 대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연대와 투쟁은 현재 가지고 있는 주거권을 잃는 것이 곧 생존권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절박감에 기인했다.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수준의 주거권만 보장된다면 다른 욕심은 내지 않는다. 우린 땅 투기고 아파트고 욕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는 수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판자촌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철거민대책위원회 고문도 장애 판정을 받았다. 우리 집이나 총무 집도 기초 수급자고 우리 남편은 월남전 고엽제 장애인이다. 온 동네가 이런 식으로 약하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서 살아가고 있는 곳”이라고 상황을 설명하며 지자체 측의 밀어붙이기식 철거 정책의 부당함과 무자비함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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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본동 철거민대책위원회 고문 윤상람 씨는 판자촌의 형성부터 현재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에 대한 산 증인이다.

2007년도에 구청에서 제안한 철거민 대책은 두 가지라고 한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가옥의 평수에 따라 차등을 두어 가옥 당 대략 천만 원 내외의 보상금을 받거나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에게는 둘 중 어떤 것도 선택하기 힘든 대책으로 보였다. 주민들은 천만 원 내외의 돈으로는 현재 서울 어디를 찾아가도 주거권을 보장 받으며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우며 임대아파트에 입주한다고 해도 제공되는 평수가 9평, 11평 등으로 터무니없이 작고 입주에 따르는 보증금, 월세 계약 등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구청이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미관상’의 철거라는 명목을 내세워 자신들의 생존권과 주거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억울함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거운 이야기가 계속 되던 가운데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다른 여성 주민이 외쳤다. “우리는 뭐 들어가서 살 동굴 찾아야 될 건데!” 방 안에 새는 소리의 쓴 웃음이 가득 찼다. 그것은 차라리 한스런 외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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