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후 그간 지지부진하게 진행돼 오던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현재 국회에서는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이와 관련된 법안도 6건이나 발의된 상태다.지난 25일에는 지방행정개편특별위원회 주관으로 행정구역개편 공청회도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후 그간 지지부진하게 진행돼 오던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이와 관련된 법안도 6건이나 발의된 상태다. 지난 25일에는 지방행정개편특별위원회 주관으로 행정구역개편 공청회도 열렸다. 이와 동시에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하는 자치단체 자율통합이 여러 시·군·구의 지지를 받으며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하반기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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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회의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에는 여러 의원의 행정체제개편안이 발의된 상태다.

특명, 한반도의 지도를 바꿔라

지방행정체제 개편이란 현재 2단으로 구성된 16개 시·도, 234개의 시·군·구 자치단체 계층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6건의 법안 가운데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허태열 의원(한나라당)의 발의안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현재의 시·군·구를 60에서 70여 개로 통합하고, 도를 폐지하는 대신 사회간접자본 설치 등 일반 시·군·구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처리하는 국가기관을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각계각층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중앙대학교 이규환 교수(행정학과)는 “어떠한 나라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단층으로 구성해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곳은 없다”며 “지방자치제는 물거품이 되고 중앙집권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지난 3월 말 또 다른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이명수 의원(자유선진당)은 “지방행정체제는 나라의 큰 골격이다. 백년이 넘은 나라의 골격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며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도를 폐지하고 지방분권화에 역행하는 법안에는 반대를 표하며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방행정체제를 바꿔야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여러가지의 방안이 있는 만큼 현명하게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에 신중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논의된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 16대 국회부터 논의가 시작된 이래 17대 국회에서는 행정안전부 장관, 지방분권위원장 등의 협의를 통해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가속화 됐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제도를 한 지역에서 한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현 소선거구제도에서 여러 지역을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 그 지역에서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자는 중선거구제도로 바꾸자는 정부 측과 우선 선거구제도를 바꾸기 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자는 야당 측 의견이 대립하면서 다시 한번 다음 국회로 미뤄졌다. 이명수 의원은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18대 국회에서는 특위를 구성하는 등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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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정부의 자율통합 지원계획에 들썩이는 전국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크게 ▲행정구역의 획정 ▲행정계층의 분할 ▲국가 자치단체 간 사무 재분배를 다루고 있는데 반해 자율통합은 통합을 원하는 일부 자치단체에 한정하여 추진하는 것으로 변화의 폭이 작다. 하지만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못지 않다.충청북도의 청주시는 청원군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청원군청사는 청주시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청주시청사와 거리는 걸어서 10분 남짓이다. 주민들의 생활권도 일치한다. 이 같은 자치단체간의 불합리한 구역 획정을 없애기 위해 도시간 통합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한 번의 주민투표결과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은 부결됐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자치제도과 박재연 사무관은 “예전의 경우 통합을 하고 싶어도 교부세를 적게 받는 등 불이익 때문에 통합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불이익을 없애고 통합이후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게 됐다”며 자율통합 추진의 순기능을 설명했다. 또 자율통합에는 인구 과소 지역이 자립기반 약화로 행정비효율이 발생하면서 세수감소와 산업기반 약화의 악순환이 발생함을 막고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이런 정부의 자율통합 지원계획 덕분에 언론에서 거론되는 통합논의 지역은 성남시·하남시·광주시를 비롯해 전국에 걸쳐 스무 곳에 이른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통합논의가 나올 정도로 정부에서 너무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규환 교수는 “통합을 통해 행정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면 교부세를 적게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한정된 교부세를 나눠주다 보면 통합하지 않은 지역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통합의 이유로 너무 많은 공무원 수를 지적하면서도 통합한 이후 공무원을 10년 동안 감축하지 않는다는 계획은 논리적인 모순”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자율통합은 오히려 큰 행정 비용만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한편에서는 이러한 자율통합이 실제적으로 도시간의 자율통합이 아닌 정부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도 일고 있다. 박 사무관은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치단체 자율통합은 전적으로 시·군·구 자율에 의해서 추진하고 있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실제로 자치단체의 자율통합의 추진절차는 주민, 의회 또는 단체장의 통합건의를 받은 후 여론조사와 지방의회의 의견을 수렴해야한다. 또 주민투표 요구가 있을 경우 주민투표를 거쳐야만 행정안전부의 통합여부 결정이 나오게 된다. 현재 행정안전부의 계획대로 자율통합이 진행될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의회는 현 상태로 유지되지만 자치단체장은 통합으로 한 명만 선출하게 된다. 이어 박 사무관은 “자율통합은 주민의 편리성을 위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는데, 현재 시민단체 등에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며 “가이드 라인을 만들 수 있지만 가이드 라인은 지역 특성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역주민간의 협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국회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자치단체간 통합을 촉진하고 있는 것은 선후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명수 의원은 “행정구역의 개편 방향성이 나온 후 자율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현재 추진되는 자율통합의 사례 중 행정구역의 개편안과 맞지 않을 경우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 했다. 따라서 이 의원은 “정부가 소극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자율통합보다는 더 큰 그림인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힘을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재연 사무관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개헌과 맞먹는 일이다. 많은 시간과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한 만큼 모범적인 자율통합을 통해 주민들의 편리성을 도모하고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 급선무다”며 이 의원의 의견을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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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효율성보다 지방자치의 민주성을 강조하는 이규환 교수.

학계의 반응은 ‘글쎄’

우리나라의 행정 구역 경계선을 바꾸는 일에 언론의 반응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의 바람과 달리 학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국지방자치학회는 이에 반대하여 성명까지 발표한 상태다. 이규환 교수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는 우리나라의 읍, 면정도의 규모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1년 이후 읍, 면은 법적으로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자치단체인 시와 군은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적게는 20배에서 많게는 100배까지 큰 수준”이라며 자치단체를 통합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이 교수는 “현재 유력시되는 법안에 따라 지방행정구역을 60에서 70여 개로 줄일 경우 필연적으로 중선거구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하다”며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현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또 이 교수는 “현재 행정안전부에서 주장하는 자율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지난 1995년에 시행한 도농통합시의 출범 역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많다는 것이 사실”이라며 행정의 효율성이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로 세금의 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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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의 지원계획 발표에 자율통합을 희망하는 자치단체의 수는 크게 증가했다.

진정한 국가경쟁력을 위한 방안은…

그렇다면 실제로 시·군·구가 자율통합되고, 지방행정체제가 개편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될까? 이에 대해 정치권과 정부, 학계 모두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사실 아무리 불합리하게 행정구역이 획정돼 있더라도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신중하다. 일례로 서울의 한 아파트는 관악구와 동작구의 경계에 위치해 4개 동이 1층에서 6층은 관악구, 나머지 층은 동작구에 속해있다. 구청장간 합의를 통해 행정구역을 개편하려하였으나 주민투표에 의해 무산됐다. 이에 대해 이규환 교수는 “98년 통합한 여수시·여천시·여천군 역시 아직도 3개 청사가 유지되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민감하기 때문”이라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때에 행정체제 개편과 자율통합을 통해 소지역주의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특히 자율통합이 이뤄지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그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지역들은 도시지역과 그 배후 지역인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도시지역의 시민들의 경우 재정이 튼튼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세금을 다른 지역에 투자한다는 생각에 반대를 하고 배후지역의 경우 도시지역이 포화됐기 때문에 이른바 혐오시설이 그 곳에 설립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규환 교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통해 시·군·구가 60에서 70여 개로 줄어들 경우 차라리 5,6개 주의 연방제로 가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즉, 중앙정부가 직접적으로 단층의 지방정부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는 외교, 안보, 국방 등의 기능만 가지고 지방정부에게 행정, 교육, 치안 등을 그 지방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많은 재량을 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북유럽 등 ‘강소국’으로 불리는 많은 나라들이 선택하고 있다. 결국 이 교수는 “지금의 행정구역 개편은 행정이념의 양대 산맥인 효율성과 민주성의 대결이다. 우선순위를 효율성에 둘 경우 민주성은 후퇴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박재연 사무관은 “자치구역이 작을수록 지역자치가 잘 된다는 것은 허구적 이론에 불구하다. 공무원의 월급조차 주지 못할 정도의 재정자립도를 가진 시·군·구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자율통합을 통해 지방도시의 경쟁력 또한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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