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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산양
새까맣고 동그란 눈, 단단한 두 뿔을 지닌 순수하고 다부진 모습의 산양. 가파른 절벽을 힘차게 뛰어오르는 산양의 늠름한 모습을 직접 본 행운아는 몇이나 될까. 산양은 원래 고라니, 너구리처럼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돼 보호대상으로 관리되고 있다. 러시아 동부, 중국 북동부에도 한반도에 서식하는 산양과 같은 종이 살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감소하는 추세다. 이에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서는 2008년에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고(적색리스트)’에 산양의 이름을 올렸다. 이제 산양은 생존과 멸종의 갈림길에 서 있는 동물이 된 것이다. 편해진 등산로, 불편해진 산양 산양이 귀해진 가장 큰 이유는 임도나 등산로가 개발되면서 ‘사람이 다닐 길’은 늘어나고 ‘산양이 살 곳’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산양은 한번 살기로 마음먹은 곳을 쉽게 떠나지 않는 국지성 동물이기 때문에 안정된 서식환경이 갖춰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엔 산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산양이 마음 편히 쉴 곳이 없다. 설악산은 등산객들이 좋아하는 산 중 하나다. 1년에 340만, 하루에 약 9천명의 사람들이 대청봉을 밟는다. 대청봉까지 올라가는 길은 과거에 비해 많이 편해졌다. 조금 가파른 길은 사람이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면 되고, 급한 계곡 물살은 철다리를 건너면 된다. 하지만 사람에게 편한 이 길들은 산양에겐 불편하다. 가장 무서운 천적인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꼭꼭 숨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의 산양전문가인 설악녹색연합 대표 박그림 씨는 15년간 설악산에 서식하는 산양의 뒤를 좇았다. 박 씨는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인 태도로 산에 오른다. 자신의 건강만 고려하고 산에 사는 동식물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심지어 불판까지 지고 산에 올라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먹는 등산객도 정말 많다. 중청대피소가 삼겹살집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이어서 박 씨는 “요즘 사람들은 정상만 바라보고 열심히 산을 오른다. 동물의 발자국이나 작은 풀꽃에 감탄하는 등산객은 없다. 9천명의 사람들 중 산양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상에 오르려는 등산객들로 인해 대청봉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이 엉망이다. 가서는 안 되는 곳을 사람들이 수없이 밟았기 때문에 이미 산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지름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처럼 산을 보호하기 위해 입산객 수를 제한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 환경부 자연정책과 박웅 서기관은 “국립공원에서는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해 등산객의 수를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산이라는 게 워낙 넓어서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자연보호’가 아니라 ‘고객만족’을 위해 일한다. 그들에게 산양을, 자연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는 뒷전”이라며 입산객을 제한한다는 것은 말 뿐이고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제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말하는 자신들의 비전은 ‘자연보전과 고객만족을 실현하는 세계일류의 공원관리 전문기관’이다. 인간을 만족시키면서 자연을 보존한다는 것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일까. 산 깊숙이 자리 잡은 주차장, 산 중턱에 진동하는 감자떡 냄새는 이미 설악산국립공원의 익숙한 풍경이다. 설악산은 사람냄새가 진동해서 산양냄새는 희미해져 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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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산길은 가도 좋은 길 주황색 길은 가서는 안 되는 길이다. 하지만 전혀 통제되지 않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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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연휴의 대청봉. 하루에 약 1만 명의 등산객이 설악산을 오른다. |
정부의 산양보호, 아랫돌 빼 윗돌 괴기
생태경관보존지역은 해당 생태계 내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들을 위한 곳이다. 환경부에서는 원시 자연을 유지하는 곳이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을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도 산양이 서식할만한 최적의 장소는 아니다. 생태경관보존지역 안에서도 계속 산양이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생태경관보존지역은 왕피천이다. 왕피천은 경북 울진군과 영양군에 걸친 102㎢의 넓은 지역으로 비교적 많은 수의 산양이 분포하고 있다. 야생동식물 최대 서식지인 왕피천을 더욱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 환경부에서는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는 유일하게 왕피천에 출장소를 마련했다. 또 90명의 지역주민을 감시위원으로 고용해서 관리의 효율성을 높였다. 하지만 왕피천에서 지난 5월 또 산양 사체가 발견됐다. 2구가 발견됐는데 한 사체는 자연사한 새끼 산양이고, 다른 한 사체는 올무에 걸려 죽은 것이었다. 이번 발견은 어린 산양이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한 채 죽을 만큼 왕피천의 서식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게다가 국가에서 지정한 보호지역에서 멸종위기 1급인 산양이 올무에 걸려 죽은 건 매우 충격적이다. 박 서기관은 “수시로 올무가 발견되면 제거를 하긴 하지만 매년 생태경관보존지역이 새로 지정되기 때문에 이전에 지정된 지역에 몰래 올무를 설치할 경우엔 일일이 발각해내고 제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존에 지정된 보호지역을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는 현 상황에서 환경부는 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멸종위기종복원센터를 중심으로 월악산국립공원에 산양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산양복원팀의 손장익 팀장은 “1980년대 이후 월악산의 산양은 멸종했다. 이에 산림청과 에버랜드는 1994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월악산에 산양 6마리를 방사했고, 10년 후에 10마리로 증식했다. 하지만 모두 한 어미에게서 태어난 것이어서 근친교배에 따른 문제가 생길 거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손 팀장은 “단기적으로는 산양이 근친교배를 할 경우 발생하는 유전적 결함을 해소하고 최소 존속 개체군을 형성하는 것, 장기적으로는 단절된 백두대간의 산양 생태 축을 복원하는 것이 월악산 산양복원사업의 최종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는 지난 2007년 4월 강원도 양구-화천 지역에서 산양 10마리를 데려와 월악산에 방사했다. 박 씨는 “개체군의 안정성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포획해온 것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었지만 소용없었다”고 지적했다. 손 팀장은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산양은 690~784마리 정도다. 양구-화천지역은 이 중 80마리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10마리를 데려오더라도 개체군 유지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손 팀장이 제시한 자료는 2002년에 환경부에서 실시한 조사 자료다. 박그림 씨는 “그 이후에 산양 분포를 다시 조사한 적이 없다. 따라서 7년이 지난 지금 서식지와 개체군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포획이 초래할 결과를 단언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월악산 뿐 아니라 강원도 양구에서도 산양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양구군은 2006년 7월, 산양을 증식해 복원, 양구 주변의 산에서도 쉽게 산양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산양복원센터를 설립했다. 하지만 산양복원센터는 양구군에서 발행하는 양구여행의 자연생태체험 코스 중 하나가 돼버렸다. 야생에서 잘 살고 있던 산양이 도심 속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과 다를 바 없는 구경거리가 된 것이다. 안재용 씨(산양증식센터 동물관리)는 “산양은 매우 예민한 동물이다. 센터 초창기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다녀간 날이면 산양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먹이를 먹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에게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말했다. 언젠가 야생으로 복원돼야 할 산양들이 자연이 아니라 사람에게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센터의 주요 업무는 먹이, 서식지 관리를 통해 산양을 키우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있고 복원을 위한 계획은 전무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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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심 많은 산양이지만 매일 산양에게 먹이를 주는 안 씨에게는 조금씩 거리를 좁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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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타리 안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산양. 넓은 산에서 뛰놀던 이 산양에게 방사장은 너무 좁다. |
“연구는 무슨,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산에서 산양을 흔히 볼 수 있도록 산양을 증식, 복원하고자 한다면 산양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필수다. 하지만 국내에는 산양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박 씨는 “내가 처음 산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94년 당시에는 국내 전문가들이 산양의 암수구별도 어려워했다. 산양으로 학위를 취득한 사람도 석,박사 각각 1명씩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2001년, IUCN에 산양 전문가를 소개해 줄 것을 요청했고 IUCN에서는 러시아에서 한국에 서식하는 종과 같은 종의 산양을 연구하고 있는 알렉산더와 린나 부부를 연결해줬다. 박 씨는 “그 부부는 20대 젊은 나이에 산양 연구를 시작해서 이미 70년대부터 산양과 관련된 전문서적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암수는 어떻게 구별하는지, 산양은 어떤 생태양상을 지니고 있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기초지식조차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산양 연구는 고사하고 산양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박 씨는 96년부터 99년까지 이뤄진 전국 산양분포조사를 수행했다. 박 씨는 “그때 한 조사 이후 제대로 산양분포를 다시 조사한 적이 없다. 아직도 신문이나 뉴스에서 산양 개체수를 언급할 때는 내가 조사했던 10년 전 자료를 인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뭐든 한번 조사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씨가 조사에 참가했던 자료에 의하면 남한에 서식하는 산양은 약 700마리다. 그러나 안 씨는 “비무장지대에 조사를 가보면 산양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 2000마리 이상의 산양이 야생에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연구 활동은 우리나라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러시아에서도 우리와 똑같이 야생동물이 주로 서식하는 지역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보호구로 지정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보호구 관리 수준은 두 나라가 매우 다르다. 러시아는 보호구에 출입할 수 있는 인원이 1년에 100명 내외로 제한되고 반드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반인 출입을 법률상으로만 제한할 뿐 제대로 단속하지 않아 서식지 보존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은 산양의 형제가 돼야 할 때 “가장 시급한 일은 산양의 분포조사다. 그 후에 산양 보호구를 새로 지정하고 산양 연구사업도 진행해야 한다”고 박 씨는 지적한다. 산양 똥 냄새를 맞지 않으면 허전하다는 박 씨는 지금 산양연구소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씨는 “한 달에 만원씩 내는 후원자 천명을 모아 연구소를 운영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상근연구자 2명 정도의 월급과 연구비, 야생동물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이 마련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옛 백담대피소였던 자리를 연구소 부지로 확보해뒀다”고 말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인기스타지만 산양은 무명연예인보다 더한 설움을 받는다. 사람들은 산양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산양의 집마저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 15년간 산양의 유일한 골수팬이었다. 박 씨는 “언젠가는 산양과 함께 눈을 마주치며 산을 오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멸종의 갈림길에 선 산양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보호대책 만큼이나 막막한 미지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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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의 갈림길에 선 산양을 외로이 좇고있는 박 그림씨. 그의 꿈은 산양과 눈을 맞추며 산을 오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