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쭙잖은 지식만큼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때때로 솟구치는 치기에는 자제력을 잃곤 한다. 법대생이라는 이유로 많은 질문들을 받고 그 질문에 답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가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수줍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당당하다 못해 확신에 찰 정도로 바뀐다. 하지만 상대방의 신뢰만으로 나의 식견이 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신뢰에 상처를 줄 뿐이다.취재를 하다보면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게 된다. 또는 사회가 전문가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들이 사회로부터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놀라운 지식의 양에 탄복을 금치 못하면서도 때로는 그들이 달려온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잘못 놓여진 사다리는 올바른 길로 그 자신을 인도하지 못한다.복잡한 학설과 정교한 이론을 꾀고 있는 한 대법관이 ‘법’이라는 미명하에 국민들을 재단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국민들은 그 ‘법’이 더 이상 ‘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철저한 논리력과 완벽한 뻔뻔함으로 무장한 한 국회의원은 준법의식을 외치면서 자신이 만든 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 이제 국민들은 법을 지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에 의문을 던진다.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법’을 이용하는 전문가들 덕분에 막 ‘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법대생은 부끄럽기만 하다.그저 ‘잘 모르는’ 국민의 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치부해버린다면 더 이상 할말은 없다. 하지만 애송이에 불과할지라도 이번에는 ‘아는 척’을 좀 해야겠다. 적어도 내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배운 ‘법’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지는 못할지라도 강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 특정한 사람들만 이해하고, 특정한 사람들만 향유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의 상식으로 타당하다고 믿는 것이 법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틀렸다고 비난하기 전에 왜 그런 괴리가 생겼는지 살펴봐야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것은 법대생이라고 또는 법대생이 아니라고 모르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오로지 그들만 모르고 있다. 이제 ‘아는 척’을 하자. 그래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초짜’ 법대생이 아니라 그들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