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직 노동자? 생소한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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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동 재능 본사 앞에 놓인 피켓. 재능 본사 앞의 농성은 5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
고(故) 박종태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광주지부장의 죽음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캠퍼스 곳곳에 설치되고, 연일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기사가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집회도 열리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라고 불리는 직군은 일면 공통점이 없는 다양한 직종들의 집합이다. 대표적으로는 건설운송노동자,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 A/S 기사, 애니메이터, 방송작가, 간병노동자(호스피스), 학원차량기사, 대리운전기사 등이 특수고용직군에 속한다. 민주노총 추산 180만 명, 노동부 추산 9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小)사장’으로, 법률상 영세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건설운송노동자의 경우에는 건설업체와, 학습지교사의 경우에는 대교나 구몬 같은 학습지회사와 개별적인 계약을 맺고 있는 독립사업자인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직위가 생겨난 배경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부소장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원래 정규직인 사람들을 사용주들이 강제로 특수고용직으로 돌린 것”이라며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사측이 고용에 관한 책임과 노동자성을 피하기 위해 편의로 만들어 낸 비정상적인 고용 형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업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위장 자영업자인 특수고용직으로 전환시킬 경우 보험료를 절감하고 실적에 비례해 임금을 지불하여 인력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고객 관리를 위한 기업운영비용을 노동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레미콘과 화물트럭 같이 비싼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며, 서비스업 등 새로운 업종의 발생 및 취업자 층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출연한 계층이므로 노동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부와 사측의 입장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통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고용실태보다도 열악하며, 사용자의 책임성만 제외된 고용형태로서 자영업자로 위장돼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법적 분류기준으로 노동자가 아니고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실태, 4대 보험 적용과 노동 3권 보장 등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조 조직화도 어려울뿐더러 정당성도 인정받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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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신 부소장은 “노동조합을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용자측의 자세가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생존권 요구에서 시작됐다. 특수고용직 화물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그 예다. 독립사업자인 화물노동자들의 수입은 그대로이거나 줄어드는데, 지출요인은 꾸준히 증가했다. 화물운송료는 10년 동안 동결되거나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유류비는 4배 이상 올랐고, 과적 단속에 따른 벌금과 운반비, 차량 운영에 따른 각종 세금과 공과금, 알선 수수료는 모두 화물노동자들의 몫이다. 택배기사들은 업무 필수 품목인 PDA 구입비와 통신비, 오토바이 구입비와 고장 시 수리비용도 부담한다. 이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90년대 노조 대신 연대를 결성해 파업을 통해 열악한 근로환경의 개선을 시도했고,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 이남신 부소장은 “그동안 ‘신고필증 발부’등으로 암묵적으로 인정돼오던 노동조합형태의 연대가 이제 와서 불법 노조로 분류돼 해산을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측과 정부 측에서 특수고용자들이 속해있는 건설노조, 화물노조 등은 노동자들이 설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 노조이며, 따라서 교섭에 더이상 임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례도 나오면서 이미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한 노동자들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에 노동계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점차 확대되자 사측이 제제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노동자성 인정문제로 노조설립 자체가 제한돼 설립 이전에 합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또한 특수고용직의 업종이 다양하고 업종별로 요구사항이 달라 직종 간 통합도 어려운 실정이다. 화물노조 같이 요구사항이 비교적 일관된 직군의 경우에나 조직화하기 쉽고, 그것도 고 박종태 씨의 사망과 같은 상징적인 사건이 있어야 일시적이고 폭발적으로 결합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설명이다. 따라서 법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다른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민법과 국회 입법 행위들로 권리를 수호할 수밖에 없는데, 로비력이 강한 사용자 측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남신 부소장은 “건설협회와 같이 로비력이 강한 사용자들이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들을 자본력으로 압박하여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없애도록 하고, 특수고용직 노동자 관련 법안의 법제화를 막고 있다”며 “경제력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이에 저항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남신 씨는 “처음에는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생존권 투쟁으로 시작됐으나, 그 통로마저 막혀버리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정치투쟁을 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투쟁이 장기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권두섭 변호사는 “노동부는 형식적인 지표에 따라 판단하고 또 자본의 압력 등의 요인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취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노동자들은 차라리 노동부를 없애라는 주장을 할 정도이다. 이에 부경대 윤영삼 교수(경영학과)는 논문을 통해 ‘일시적인 성공으로 인해 제한적 성과를 획득하더라도 결국 법적 지위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으면 성과의 유실을 지켜내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성 인정않는, 실효성없는 법제 개선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적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그들을 법적 노동자로 인정해야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법 등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두섭 변호사는 “산재보험이나 근로기준법적 보호들은 노동3권이 인정되지 않는 한 적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근로 조건의 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4대보험 적용을 규정한 사회보장법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 노동자에 한해서 적용된다. 당장 급한 산재보험법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 사람만을 수혜 대상자로 삼고 있다. 그동안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근로자인지 사업자인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돼왔다. 정부는 현행 산재보험법의 가입대상 규정으로 인해, 특수고용직에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관련 법안은 2000년부터 5차례 이상 발의되었으나 거대 사업주들의 압력으로 한차례도 법제화되지 못했다. 권두섭 변호사는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이미 오래 전에 입법적 조치를 통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의 행태에 대해 “거의 직무유기수준”이라고 평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2007년 산재보험법 전면 개정을 이끌어내기는 했으나, 그 내용은 오히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다. 일반 근로자의 경우 산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되며 산재보험료를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지만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임의조항을 통해 보험 적용제외 신청이 가능하며 산재보험료를 사업주와 노동자가 각각 반씩을 나누어 부담하도록 산재보험법이 제정된 것이다. 그마저도 보험설계사·레미콘 운전자·학습지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의 4개 직종만 산재보험을 적용받도록 지정되어 특수고용직 직종 종사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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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8일 산재노동차 추모의 날을 맞아 화물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을 촉구하고 있는 운수노조원들. |
산재보험법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조항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지만 업무상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개정 이후에도 역시나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닌 셈이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 국민대 이광택 교수(법학부)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가 드러난 결과”라고 평했다. 이러한 ‘소극적’인 산재보험을 시범적으로 적용받게 된 4개 직종 노동자들 가운데 80% 이상이 적용제외를 신청했는데, 이러한 사정에는 사업자 측과 특수고용직 노동자 측의 상황 판단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사용주 측에서는 산재보험에의 가입이 고용보험 적용으로 이어지는 등의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강제로 산재보험 대신 단체상해보험을 가입시키거나 절반의 산재보험료를 근로자에 전가시켜 산재보험 가입을 방해하고 있다. 한편 사업주의 압력이 개입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적용제외 신청에 대해 권두섭 변호사는 “산재보험법에서 일반적인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별도로 다루고 있는 것은 ‘노동자가 아닌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의 사정을 고려한 제도’로 판단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기에 산재보험 적용을 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입 모아 “종속성에 따라 자영자-근로자 판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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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택 교수가 노사관계에서 나타나는 종속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근무시간, 노동형태 등 포괄적인 내용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결정이 사업자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지가 종속성 판단의 근거가 된다.’ |
정부의 실효성 없는 대책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특수고용직 보호 방안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광택 교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인지 자영자인지를 판단하는 실질적인 근거는 노동자와 사업주 간의 관계에 있다고 강변했다. 생산수단의 이전과 같은 단순한 요인이 아니라 근로함에 있어 사업주에 종속되어 있다면 노동자이고, 독자성이 더 강하다면 자영자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어 “종속성의 정도에 따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사회보험법을 세분화하여 적용하되 종속성이 강한 경우에는 이 모두를 적용하고 약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의 일부와 노동조합법과 사회보험법을 적용하여야 할 것이며, 종속성의 정도에 따라 보호 수단의 차이도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권두섭 변호사 역시 문제의 핵심을 “노동자성을 노사관계의 종속성에 근거하지 않고, 협소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또한 “정부의 정책은 위장 자영인을 가려내어 노동법을 전적으로 적용시키도록 조치하고, 특수고용의 영역이 있다면 최소한 노동3권은 외국 입법례처럼 자유롭게 인정을 하고 근로기준 측면에서 몇 가지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해, 위장된 자영업자와 특수고용직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발언은 노동자의 외연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최근 발의한 법안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정부가 보여준 소극적 자세와 대기업의 로비로 인해 실제로 이 법안이 입법될 지는 미지수다. 대한통운 사측의 구두계약 파기와 무단 해고에 대항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 화물연대의 박상현 법규부장은 “이번에 발의된 법안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우리 화물노동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태껏 여러 차례 법안이 상정됐지만 실제로 입안된 적이 없어 이번에 발의된 법안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