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도 선생님으로 보이나요”

매일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는 피켓팅이 진행된다.사진은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 지부장 유명자 씨.2004년, 한 학습지 교사가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당시 전국학습지산업노조는 “고 이정연 씨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다.유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용을 신청했지만, “이 씨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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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는 피켓팅이 진행된다. 사진은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 지부장 유명자 씨.

2004년, 한 학습지 교사가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전국학습지산업노조는 “고 이정연 씨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다. 유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용을 신청했지만, “이 씨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고 이정연 씨는 학습지업계의 부당영업 관행인 ‘가짜입회’ 때문에 힘들어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짜입회는 실적이 많아 보이도록 가짜회원을 교사 스스로 등록하는 일을 말한다. 이 씨는 204과목 가운데 134과목을 가짜 회원으로 채워 넣었다. 134과목의 회비는 고스란히 자신의 돈으로 충당했다. 이 씨는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1500여만 원의 빚까지 진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학습지 교사, 고용안정 멀기만 해학습지 교사들의 불안정한 지위는 여전하다.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는 교사들이 500일 넘게 농성을 진행 중이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장 유명자 씨는 “99년 12월부터 수차례 파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유 씨는 98년 재능교육에 입사해 10년 넘게 근무했으나 지금은 해고된 상태다.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체협약(단협)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단협을 파기한 재능교육은 새로운 단협안을 제시했다. 사측이 제시한 새로운 단협안에는 ‘노조전임자’규정이 없었다. 당시 사측은 “노조전임자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전임자는 현장으로 복귀해 학생들을 지도하라”고 말했다. 사측은 전임자에게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유 씨는 “단협을 파기한 사실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에 새로운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측은 곧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김진찬 씨도 2년 째 외롭게 사측과 싸우고 있다. 한솔교육은 2007년 3월, 김 씨를 해고했다. 가짜입회를 통한 부정영업을 했다는 이유였다. 김 씨는 부정영업을 한 사실이 없음을 밝히기 위해 학부모에게 일일이 확인서를 받아야만 했다. 가짜입회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밝혀졌지만 김 씨의 해고는 철회되지 않았다. 사측은 “실적이 저조하다. 고객 불만이 접수됐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김 씨를 해고했다. 김 씨가 생각하는 해고의 이유는 다르다. “회사가 실적우수자에게 금강산연수를 보내주기로 약속했는데, 설명 한마디 없이 ‘스테인리스 수저세트’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회사에 강하게 항의했고 이 때문에 회사에 ‘찍힌 것’같다. 결정적으로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한 것이 회사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1년여의 항의 끝에 한솔교육에 복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사직이 아니라 사무직이었다. 사측은 “교사를 할 자질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6개월간 별도의 업무를 부여하겠다. 그 업무를 통해 자질이 확인되면 재계약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된 6개월이 지난 후 사측은 “업무 수행이 뛰어난 것을 알았다. 교사가 아니라 계속 사무직으로 근무하라”며 사실상 원직 복직을 거절했다. 이에 김진찬 씨는 매일 한솔교육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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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찬 씨는 회사를 상대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해고 기준도 모호해

학습지 교사의 고용이 불안정한 것도 그들이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1997년 재능교육의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합법적인 학습지 노조의 시작이다. 이후 학습지 교사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지만, 노동조합법상의 보호를 받아왔다. 그러나 2003년 이후 법원에서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이 늘어났다. 이내 학습지 교사의 노동조합법상 지위가 흔들렸고, 고용불안은 심화됐다. 유명자 씨는 “2005년 하반기부터 학습지 노조 탄압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노사합의 없이 임금제도가 결정되는 일도 발생했다. 유 씨는 “회사가 교사를 해고할 수 있는 이유로 ‘금고이상의 형을 받았을 경우’와 ‘현격히 실적이 저하됐을 경우’가 있다. 현격히 실적이 저하됐다는 말의 기준이 없다. 학습지 교사의 고용이 불안한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유 씨는 “실적이 저하됐다고 해고되면 학습지 교사 중 대부분은 해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습지를 하는 학생 자체가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강종숙 씨는 “몇 년 전만해도 학습지를 하려면 한 과목에 2만 2천원에서 2만 5천원만 내면 됐다. 지금은 한자를 제외하면 모두 3만 원대다. 원래 학습지는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선호하는 편이다. 가계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학습지 회원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유 씨는 “해고 기준이 모호한 건 자명하다. 결국 관리자의 말을 안 듣는 교사들이 해고된다”고 덧붙였다. “회사 측이 사용하는 폭력 심해”학습지 교사의 고용안정을 위해 재능교육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지만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위원장 강종숙 씨는 “회사 측의 폭력이 심하다”고 말한다. 강 씨는 “2005년 대교사태 때는 사측이 용역업체를 고용했다. 많게는 100명 적게는 20명의 용역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 재능교육은 현장관리자나 노무팀에 있는 회사직원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농성을 시작하기 전에는 같은 회사에서 마주보며 일하던 사이가 졸지에 거친 몸싸움을 하게 된 꼴이다. 강 씨는 “회장이 출퇴근 할 때 폭행이 발생한다. 특히 여성 조합원이 있을 때 폭행이 심하고, 물건을 훔쳐가기도 한다”고 밝혔다. 유명자 씨는 “10년 넘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김진찬 씨의 경우, 회사의 무관심이 야속하기만 하다. 김 씨는 “회사가 법적인 대응만 하고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고사시키겠다는 뜻이다. 나처럼 힘없는 사람은 오래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학습지 교사의 경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므로 월급도 전액 가압류 된다. 김 씨는 지금 수입이 없는 상태며, 매달 나오는 조합비 5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나오는 조합비도 언제 끊길지 모른다”며 김 씨는 초조함을 감추지 않았다. 학습지 교사의 경우 고객의 수가 자신의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불매운동을 꺼리는 편이다. 강종숙 씨는 “웬만하면 참아야 한다. 회사가 손해를 보면, 나도 덩달아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8년 중반에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을 중심으로 재능교육 불매운동이 진행됐다. 강 씨는 “이 사실만 봐도 재능교육의 교사 탄압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 재능 교육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회사’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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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찾아와 피켓팅을하고 있다.

학생들의 참여도 이어져

재능교육 농성장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처 성균관대 학생들이 찾아와 피켓팅을 돕기도 한다. 성균관대 이미지(철학 08) 씨는 “학습지 교사 문제가 대학과 관련 없는 것이 아니다. 대학기업화나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다 연관된 문제”라는 생각을 밝혔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학생행진’을 중심으로 작년 말 ‘교사거부선언’이 진행되기도 했다. 재능교육의 교사가 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금요일 오전에 진행되는 집회에서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모습도 찾을 수 있었다. 황덕일(사회복지 04) 씨는 “2005년부터 학습지 교사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노동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에 반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학습지 교사, 격무에 시달려
강종숙 씨는 “외환위기 전에는 학습지 교사는 ‘부업’으로 여겨졌다. 외환위기 이후 실직률이 늘어나며 ‘전업’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습지 교사 수가 늘어난 걸 생각하면, 그만큼 생계에 대한 위험도 커진 것”이라고 역설했다. 학습지 교사로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김진찬 씨는 “수업을 촘촘하게 짜지 않으면 밤 11시까지 일하는 건 기본이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10시간가량 수업을 하면 한 달에 150만원정도를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 정도지만, 실제 교사가 느끼는 부담은 더 크다.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종숙 씨는 “교사들은 하루에 두 끼밖에 못 먹는다. 낮 12시쯤 점심을 먹고, 밤 12시쯤 저녁을 먹는다. 위장병이 없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강 씨는 “교사들 대부분이 방광염을 앓고 있다. 특히 남성 교사의 경우 학생 집에서 화장실을 갈 수 없다. 학부모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몇 시간씩 화장실을 못 가는 건 기본”이라고 말했다. 유명자 씨는 ‘무거운 가방’이 고생이라고 말한다. “교재 부교재를 다 넣어 다니는데, 가방무게가 10kg정도 될 때도 있다. 산동네라도 가게 되면 땀이 비 오듯 흐른다”며 고생을 토로했다. 학습지 교사들은 그 외에도 ‘정해진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일’ ‘학생들 선물 등의 물품을 교사들이 자기 돈으로 사야하는 일’등을 어려운 일로 꼽았다. 학습지 교사들이 노출되기 쉬운 성폭력도 문제다. 유명자 씨는 “교사는 80% 이상이 여성인데, 관리자는 80% 이상이 남성이다. 반말하고 무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회식자리에서 지부장에게 대접해야만 하는 이상한 정서가 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성적 비하 발언이 난무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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