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억지 ‘다이어트’의 속사정

국가인권위원회 직제개정령이 발효된 다음날인 지난 4월 7일, 인권위는 급히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지난 3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조직 개편과 인력 감축을 골자로 하는 직제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이에 따라 4월 6일부터 인권위는 5본부 22팀이던 조직을 1관 2국 11과로 개편하고 인원도 208명에서 164명으로 21% 줄여 운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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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직제개정령이 발효된 다음날인 지난 4월 7일, 인권위는 급히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3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조직 개편과 인력 감축을 골자로 하는 직제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4월 6일부터 인권위는 5본부 22팀이던 조직을 1관 2국 11과로 개편하고 인원도 208명에서 164명으로 21% 줄여 운영해왔다. 특히 이번 직제개정안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행정안전부(행안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인권위와 인권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재 인권위는 헌법재판소에 직제개정령 효력정지가처분 및 권한쟁의 심판을 신청한 상태다. 개정령 발효 직후, 인권위는 일시적 업무 마비를 겪었다. 전 직원을 사무처로 임시발령 내고 인력 조직을 재구성, 재배치하는데 일주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감축 정원 44명은 당장 해고되지는 않았고, 내부적 결원을 보충하기 위한 초과현원자(정부 조직 개편 후 정규 보직을 받지 못해 후속인사조치를 대기하고 있는 공무원)로 분류됐다. 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은 “일반직과 계약직의 차별없이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초과현원자를 선정했으며, 조직개편의 고통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자원한 분들도 있다”며 초과현원자 선정과정을 밝혔다. 현재 초과현원자들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으며 차후 점진적으로 해고될 예정이다. 따라서 인권위의 업무가중과 기능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거리의 인권에서, 인권의 정치로 인권위 축소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지만 정작 인권위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민주화 이후, 국민들의 인권의식이 향상됐고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를 수용하여 97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국민인권위원회 설립’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고, 99년 정부와 민간단체가 연합한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발족했다. 그러나 인권위를 법무부 산하에 두려던 정부와 독립기관으로 하려던 인권단체가 3년간의 갈등을 겪었다. 결국은 무소속 독립기구로 2001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됐고 그 해 11월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여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현재 인권위의 기능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인권관련 정책, 제도를 조사하고 권고 및 의견을 표명하는 정책적 기능이 있다. 다음으로는 조사·구제 기능이 있다. 국가기관, 지자체를 비롯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시정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또한 인권위는 국민의 인권의식 향상을 위해 영화, 만화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권 홍보 및 교육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국내외 모든 단체들과 긴밀한 인권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실질적 인권향상을 도모하는 것도 인권위의 몫이다. 인권위의 독립성, 뜨거운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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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은 “행안부의 일방적 조직축소가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처럼 할 일 많은 인권위가 21%나 축소돼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행안부는 유능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기조에 따라 모든 정부 조직의 정비를 추진해왔고 인권위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측은 인권위는 무소속 헌법적 독립기관이므로 행안부에 의한 일방적 직제개정령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행안부 측은 인권위의 독립성은 ‘업무’에 한정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국가인권위원회법 (인권위법) 3조에서 인권위업무 수행의 독립성을 규정하고 있으나 18조에서 조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어 행정부의 인사개입은 불가피하다는 것. 이에 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은 “인권위법 3조 1항에 따르면, 인권위는 소속이 없고, 소속이 없는 독립기구는 곧 행정부가 관할하는 정부조직법 대상이 아니다”며 반박했다.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 또한 “공무원 조직은 통상 대통령령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인권위법도 형식적으로 그렇게 서술됐을 뿐, 조직에 관한 대통령령을 제·개정할 때 다른 기관과 달리 인권위의 주도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지켜졌다. 수차례에 걸친 직제령 개정이 있었지만 한 번도 다른 기관(행안부)이 주도한 적이 없었다. 박 교수는 이번 사태가 헌법 제 75조의 위임입법 규정에도 반한다고 본다. 인권위법이 조직에 관한 내용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더라도, 하위법인 대통령령은 상위법인 인권위법의 취지에 맞게 운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제령을 개정해 인권위 독립성을 해친 것은 위헌적 조치라는 지적이다. 방만한 인권위에는 다이어트가 해법? 행안부 측에서는 인권위 축소의 근거 중 하나로 국가권익위원회(권익위)와의 업무 중복을 들고 있다. 행안부 조직정책관 송귀근 씨에 따르면, 권익위의 고충민원처리는 인권위와 마찬가지로 정부 공권력에 의한 권리침해(인권침해 포함)를 조사하고 구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인권위가 다루고 있는 군·경찰 부문 인권침해 조사·구제 기능은 권익위에 설치된 ‘군·경 옴부즈만’을 통해서도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 김칠준 사무총장은 “인권위에서 조사·구제하는 인권침해 영역은 권익위보다 훨씬 넓고 그 중 극히 일부분인 군·경찰 부문만 겹칠 뿐”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조사·구제 기능의 실질적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 검찰 인권침해는 인권위만 처리하고 있으며,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도 담당 분야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에 따르면, 인권위는 가혹수사 등 수사 ‘절차’ 상의 인권침해를 다루고, 권익위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매도되는 등의 수사 ‘결과’에 따른 인권침해를 다룬다고 한다. 결국 실질적으로 조사업무가 중첩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그 밖에 행안부 측은 인권위가 방만하게 운영되는 사례로 권익위보다 1인당 업무처리율이 저조한 점, 잦은 해외출장을 꼽았다. 김 사무총장은 “구체적인 업무내용과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수치 비교는 지나치게 성의없는 조사”라며 반박했다. 같은 사건을 다룬다고 해도 권익위와 인권위의 해결방식, 들어가는 업무량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권익위는 행정적 차원에서 국민의 개개 민원을 처리하는 반면, 인권위는 인권적 관점에서 인권침해사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구제, 예방조치까지 하기 때문에 들어가는 업무량이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인권위는 국내기구인 동시에 준국제기구로서 해외와의 교류가 필수적이다. 인권위 측에서는 국제인권규범을 국내에서 제대로 적용하고 그 결과를 국제사회에 보고하는 것이 핵심 기능이기에 다른 부처에 비해 해외 출장을 많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조직조사 부실 … 정치적 보복이라는 의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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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씨는 “행안부의 이번 조직축소가 인권위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며 정치적 보복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사무총장은 이번 조직개편의 절차가 지극히 자의적이고 편의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무조건적으로 조직개편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인권위 또한 국가기관으로서 세금 절약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직개편의 취지에는 공감을 했고, 스스로 1개국 3개과를 축소하는 나름대로의 조직개편안을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행안부는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정원을 줄이는 조직개편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구체적으로 왜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근거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행안부 조직정책관 송귀근씨는 ‘사실 무근’이며 조직개편을 위한 근거자료를 인권위측에 여러 차례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근거자료가 조직개편을 정당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실하다는 것이 인권위 측의 설명이다. 김 사무총장은 “근거자료가 있긴 했지만, 제대로 조사를 했나 의문이 들었다”며 “실질적으로 조사했다면 인권위보다 권익위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나올 수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인권운동가 명숙 씨는 행안부의 이런 일방적 처사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7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과 관련해 국회에서 인권위 인력을 20명 증원하기로 가결됐는데 행안부 측에서 돌연 철회하고 오히려 인권위 축소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행안부는 어려운 경제상황을 반영하여 증원계획이 무산된 곳이 많으며, 비단 인권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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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 헌법재판소에 직제개정령 효력정지가처분과 권한쟁의심판을 신청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권위 축소를 현 정부와의 견해 충돌로 인한 ‘정치적 보복’이라고 본다. 실제로 인권위는 지난 4월 28일 행정인턴 학력·나이 제한은 차별이라는 내용의 권고를 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 대응에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은 말을 아끼면서도, “행안부가 내놓은 조직 축소의 근거 중에는 인권위의 정책기능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그 결과로 법무부의 인권정책기능과 충돌하고, 다른 국가기관과 불필요한 갈등을 낳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며 그 속에 답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명숙 씨는 “인권위가 정부정책이나 법에 대해서 비판하는 게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것이 인권침해라면 겸허히 받아들여 시정하는 것이 옳다”며 행안부의 이번 조직축소를 인권퇴행적인 처사로 진단했다. 인권위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후의 보루 이유야 어쨌든 인권위는 정부와의 ‘줄다리기’에서 졌고, 이미 조직 축소가 이뤄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인권단체에서 시위를 하면서까지 인권위의 ‘기사회생’을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숙씨는 국가인권보장체계인 인권위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며 인권위의 존재의의를 설명했다. 인권단체들이 수십개 있어도 정부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인권위는 그러한 인권에 대한 고민의 목소리를 모아 정책에 인권 담론을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권을 한 사회의 기본방향으로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데도 보탬이 된다고 한다. 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은 “법은 절대 다수 지배계층의 의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 법제는 항상 미비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법률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과 운명적으로 같이 가는 것”이 인권위의 존재 의의라고 말했다. 명숙 씨는 위기에 빠진 인권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권위의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명숙 씨는 “촛불집회에 대한 인권위 결정이 정부에게 눈엣가시였다지만, 인권단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국제단체인 엠네스티보다도 결정이 늦었기 때문”이라며 인권위의 한계를 지적했다. 결국 인권위가 보다 적극적인 인권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위의 독립적 인사시스템도 절실하다. 명숙 씨는 “인권위 상임위원 김양원씨의 횡령이 발각됐는데도, 청와대가 추천한 외부 인사라는 이유로 사퇴가 늦어졌다”며 “실제로 반인권적 인권위원이 선임됐을 경우 대처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숙 씨는 인권위의 독립적인 인사절차와 제대로 된 공직추천과 공직검증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인권위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언론과 대학생의 역할도 필수적이다. 명숙 씨는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의 ‘인권위 때리기’가 ‘인권=좌파’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 인권담론의 발전을 막고있다”며 “대학생들이 보수언론에 순응하지 말고, 활발하게 문제제기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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