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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반기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와 연이은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도 매우 어렵다. 실업자 100만 명을 목전에 두고 있고, 370만 백수 시대를 맞고 있다. 중산층은 급속히 줄어들고,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어 민생의 불안과 고통이 심각한 지경이다.지난 30여 년간 미국과 영국 주도로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이번 경제위기의 주범이라는 결론이 대세다. 신자유주의는 시장만능주의를 의미하는데, 감세, 민영화, 규제완화를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시장에 경제사회적 의사결정을 맡겨놓자는 경제 사조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중반 들어 개방, 민영화, 규제완화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적극 호응해 왔으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사회경제체제를 공고히 해왔다.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기조는 경제정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국가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의료정책에도 자본과 경쟁의 논리가 도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에서 의료의 공공성은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잘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의료제도가 철저하게 망가진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전체 병원의 15%가 영리병원이고,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보험회사가 국가의료체계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국가의료보장제도가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로 인해, 미국인들의 의료불안과 고통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식코’의 나라다.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명박 정부는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의료정책까지도 신자유주의 노선을 쫓는다. 각종 규제의 완화와 함께 부자감세를 추진했고, 국민건강보험료마저 동결하였다. 이는 정부의 재정 능력을 약화하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정책으로, 의료분야에서 정부 역할의 강화를 의미하는 ‘국민건강보험 재정과 의료 공공성’의 확충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또, 현 정부의 규제완화와 민영화의 교리는 우리나라가 지난 수십 년 간 굳게 지켜왔던 ‘의료 비영리의 원칙’을 깨고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본격 ‘영리 의료의 시대’를 여는 추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의료채권과 병원경영지원회사(MSO)의 허용’,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도입’, ‘실손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등 일련의 의료민영화 정책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사회정책이 ‘의료’라는 핵심적 사회정책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의료서비스는 모든 국민이 사회적 시민권으로 응당 누려야 할 규범적 공공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를 보편주의 원리에 따라 필요를 가진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형평성 있게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시장에서 개인의 구매력에 따라 구입하도록 하는 것보다 사회 전체적 편익이 훨씬 큰 경제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의료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가의료제도가 존재하는 바, 국가의료제도는 거시적 효율성, 의료이용의 형평성, 의료의 질이라는 세 가지 목적을 잘 달성해야 한다.이러한 국가의료제도의 목적을 가장 미진하게 달성한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은 의료비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인데, 국내총생산(GDP)의 16%를 국민의료비로 사용하면서도 의료체계의 성과지표는 선진국 중 꼴찌 수준이다. 즉, 미국 의료제도는 거시적 효율성(Macro-efficiency)이 매우 낮은 것이다. 미국에서 의료이용의 형평성은 더욱 형편없는데, 사회계층 간 의료이용은 양적, 질적 격차가 매우 커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5천만 명의 미국인은 의료보험이 아예 없어 의료이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비해 국가가 공적 의료보장제도를 통해 국민의료비의 대부분을 조달하는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국가의료제도의 세 가지 목적이 비교적 잘 달성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의료선진화란 이름으로 의료민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의 계획대로 실행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장차 시장만능주의 미국 의료제도의 잘못된 길로 가고 말 것이다.한편 그 동안 정부가 주장하고 발표한 의료민영화 추진의 논리들은 대부분이 거짓말이거나 잘못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환자를 줄이고, 외국 환자를 유치할 수 있으며, 의료분야에서 고용을 늘리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해외 의료서비스 적자는 2007년 기준으로 655억 원에 불과하며, 기실 해외 의료이용의 많은 부분이 원정출산이나 장기이식을 위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외국 환자 유치는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지금의 비영리 의료체계에서도 충분히 활성화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미국의 경험에서 볼 때, 영리법인 병원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의 질이 유의하게 낮았고, 고용의 양과 질 모두가 불리하였다는 것이 그 동안 이루어진 비교 연구들의 주된 결과다. 게다가 영리법인 병원의 의료비는 비영리병원에 비해 훨씬 높았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설립됐고,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주식회사 병원에서 의료비가 높은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도 잘 부합하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 영리법인 병원이 허용되면, 장차 대자본이 투자된 주식회사 병원들은 ‘실손’ 민간의료보험과 계약을 맺고 자유롭게 돈벌이에 나서고, 실손 민간의료보험은 호황을 누릴 것이다. 이에 따라 실손 민간의료보험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국민건강보험은 크게 위축되고, 보험재정의 어려움으로 신의료기술에 대한 보험급여를 제때 제공하지 못하는 구닥다리 공공보험으로 전락할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미국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양극화 의료체계, 즉 ‘중상층-고가의 민간의료보험-고급 영리법인 병원’의 축과 ‘중산층과 서민-국민건강보험-비영리병원’의 축으로 이원화될 것인 바, 우리는 장차 두 개의 의료체계와 두 개의 국민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역시 핵심은 ‘실손’ 민간의료보험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격적 신자유주의는 사회정책 영역인 의료마저도 금융자본에게 내주겠다는 것인데, 그 배후에는 의료민영화로 인해 막대한 이득을 보는 우리사회의 지배적 엘리트들이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철의 삼각을 이루며 엄청난 힘으로 밀고 있음을 명실할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 사회에서 핵심적 정책의제였던 ‘국가의료제도의 공공성’은 한 번도 진지하게 우리나라 주류사회의 중심 의제로 등장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치체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위기의 시기인 지금이야말로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공공재정의 획기적 확충을 통한 완전 의료보장의 실시 등 보편적 민생을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절실한 때다. 이제 국민이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