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면 을이다

어느 저녁, 집에서 혼자 한적하게 마루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을 때였습니다.갑자기 뒤편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벌레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긴장했고 무서운 느낌까지 들어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검정비닐봉지가 바람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순식간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안도했지만, 어떻게 비닐봉지를 벌레로 착각할 수 있냐는 생각에 헛웃음도 나왔습니다.정말 긴장했는데 말입니다.

어느 저녁, 집에서 혼자 한적하게 마루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뒤편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벌레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장했고 무서운 느낌까지 들어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검정비닐봉지가 바람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안도했지만, 어떻게 비닐봉지를 벌레로 착각할 수 있냐는 생각에 헛웃음도 나왔습니다. 정말 긴장했는데 말입니다. 소리에 생각이 씌워져있었던 겝니다. ‘갑이면 을이다’라는 수식이 머릿속에 박혀있던 것이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대하듯, 사람들은 ‘이건 중절모잖아’라는 단정적인 생각을 하곤 다시 자기 일에 몰두합니다. 어찌보면 경제적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 몇 줄을 읽고 마녀사냥에 합류한다던가, 혹은 선(先)사고보다는 선입견에 편승해 말부터 꺼내는 일이 그렇습니다. 적어도 ‘대세’ 안에 있으니 합리화도 가능하게 되고, 쓸데없는 논쟁을 피해가니 편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건 중절모잖아’라고 말하기 전에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중절모이기엔 너무 표면이 매끈매끈하지는 않는지, 꿈틀대지는 않는지요. 잠깐 시간을 두고 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의 기사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명제들로 가득합니다. 판단은 미루되 한 번은 고민해 볼만한 얘기들입니다. 문제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사들에서 출제합니다.다음 중 참인 명제를 모두 고르면? ㄱ. 가출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와 있는 것은 일탈과 비행이다. ㄴ. 고시생은 안정함만을 쫒는 사람들이다. ㄷ. 요즘 학회는 예전 같지 않다. 미리 정답을 알려드리자면 ㄱ,ㄴ,ㄷ 모두 참도 거짓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명제가 성립되지 않느냐는 난관에 봉착합니다. 네. 뭣도 아닙니다. 명제 자체가 틀린 게지요. 지금부터 책장을 넘기면서 새로운 고민거리들을 정의내리기를 바랍니다. 조각조각 사실들을 알아갔을 때, 비로소 자신이 알던 것이 을인지, 병인지, 정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제가 들은 것이 비닐봉지 소리가 아닌, 정말 벌레 소리였을지도… 누가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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