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수강생을 움직이게 하는가

대학에 오면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신입생 A 씨.입학 전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선배들이 수강신청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줬다.선배들은 첫 학기는 동기들과 같이 들어야한다, 이 강의는 과제가 너무 많으니 듣지 말라 하고 저 강의는 학점을 잘 준다며 추천한다.‘배우고 싶은 것보다 대세를 따를 것인가’는 누구나 수강신청 직전까지 고민하는 문제다.
대학에 오면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신입생 A 씨. 입학 전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선배들이 수강신청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선배들은 첫 학기는 동기들과 같이 들어야한다, 이 강의는 과제가 너무 많으니 듣지 말라 하고 저 강의는 학점을 잘 준다며 추천한다. ‘배우고 싶은 것보다 대세를 따를 것인가’는 누구나 수강신청 직전까지 고민하는 문제다. 결국 동기들이 많이 듣는 과목을 따라 수강 신청한 A 씨는 관심도 재미도 없는 수업시간에 오늘도 잠을 청한다.
졸업을 앞둔 재학생 B 씨는 재수강을 해야 하는 과목이 있지만 수강신청을 할 수 없었다. 지난 학기에 정원이 20명이 안 되는 교양 강의를 들었는데, 이번 학기는 개설 되지 않은 것이다. 선생님께 문의를 해 봤지만 이번 학기에는 개설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졸업학점이 10학점도 채 남지 않은 B씨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안 좋은 학점을 안고 그대로 졸업하기에는 뭔가 아쉽고, 그렇다고 강의가 개설될 때 까지 기다리기 위해 졸업을 한 학기 미루는 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라지고, 살아남은 강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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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대별 100명 이상의 대형 전공 강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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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평가시스템 사이트에서 인기강의 랭크를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1학기에 개설된 강의 수는 학부 전공과목(전공)이 1천918개, 교양과목(교양)이 1천130개로 총 3천48개다. 이 중 실수강인원이 100명 이상인 대형 강의수는 전공이 111개, 교양이 77개다. 각 단대별로 살펴보면 전공대형강의는 의대가 32개로 가장 많고 사회대 21개, 법대가 18개로 그 뒤를 잇는다. 반면 인문대와 간호대는 100명을 넘는 전공이 하나도 없다. 교양의 경우 대형 강의는 자연대에서 개설된 강좌가 32개로 1위를 차지하고 인문대가 14개, 사회대가 9개로 뒤를 잇는다. 이처럼 수강생이 많은 과목이 있는 반면 시작도 못한 채 폐강된 강의도 있다. 이번 학기에 폐강된 강의 수는 학부를 기준으로 전공이 35개, 교양이 33개로 총 68개다. 폐강된 전공 수는 공대가 10개로 가장 많고 사범대 8개, 농생대 5개, 인문대 3개, 사회대와 생활대 2개, 음대와 미대가 각각 1개다. 교양은 기초교육원에서 개설된 16강좌가 폐강됐고, 단대별 교양 폐강 강좌 수는 인문대가 13개, 공대 11개, 자연대 3개, 사범대에서 1개가 폐강됐다. 강의가 폐강되는 기준은 수강생 수다. 교양은 수강생이 20명 미만일 경우, 학부 전공은 교수자가 전임 및 초빙일 경우 5명, 비전임일 경우 8명 미만일 때 강의를 개설할 수 없다. 수강생 수가 부족해도 학부장의 승인을 받아 강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수업을 계속강의라고 부른다. 이번 학기 계속강의 승인을 받은 강의 수는 학부전공이 45개, 교양이 24개로 총 69개다. 교양의 경우 인문대가 17개 강의로 가장 많고 자연대 2개, 공대, 기초교육원, 사범대, 사회대, 행정대학원에서 각 1개 강의가 승인을 받았다. 전공은 미대에서 9개 강좌가 계속강의 승인을 받았고, 자연대 7개 강좌, 음대 6개, 인문대와 사범대에서 각 5개 강의가 승인을 받아 그 뒤를 이었다. 경제학과 전공이 가장 인기, 교양 인기강의는 초안지 홍수관악캠퍼스에서 수강 신청 인원이 가장 많은 전공과목은 이승훈 교수가 강의하는 경제학부의 ‘미시경제이론’으로 260명의 학생이 수강한다. 실제로 의대를 제외하면 100명 이상의 대형 전공 강의는 사회대가 21개로 가장 많고 경제학부 강의가 17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경제원론 1’의 경우 5개 강좌 중 4개 강의가 150명 이상의 대형 강의다. ‘경제원론 1’을 수강하는 유지수(사회과학 09) 씨는 “왠지 사람이 많은 강의를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대형 강의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사회대 다음으로 대형 전공 강의가 많은 단과대는 법대다. 법대 전공은 대부분이 수강정원보다 실수강인원이 더 많다. 김민경(법학 08) 씨는 “사법시험을 보려면 법과 관련된 교양 또는 전공과목을 35학점 이상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사법시험에 응시하려는 학생들이 많이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양과목 중 실수강인원이 가장 많은 과목은 582명이 듣는 ‘화학실험 1’이다. 그러나 화학실험 수업은 반이 나뉘기 때문에 동시에 가장 많은 수강생들이 듣는 교양 강의는 고은태(시인 고은) 초빙교수의 ‘관악모둠강좌(주제)’다. 이 강의의 정원은 80명이지만 실제 수강인원은 320명이다. 수강정원의 3배인 240명이 초안지를 들고 온 셈이다. 처음에는 인문대 7동에서 수업을 했지만 학생이 너무 많아 좌석이 부족해서 계단에 앉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생기자 자연대 대형 강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수강생 노홍래(경영 08) 씨는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다른 수업과 달리 학업을 떠나 인생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어 이 수업을 선택했다. 교실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선생님과 함께 관악산 등반도 하고 버들골에서 꽃구경도 하는 등 활동적인 점도 마음에 든다. 선생님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며 강의를 듣는 이유를 밝혔다. 강의평가시스템 사이트(www.snu-ev.com)에서 한 학생은 “우리나라 대문호이신 고은 선생님을 직접 만나 그분의 인생관을 나눌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한 학기 동안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쉼터 같은 수업이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에 한 명씩 악수를 해 주셨는데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며 학생들에게 수업을 들어보라고 추천했다. 수업 담당조교는 “수강을 원하는 학생은 가능한 다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규정 인원 이상 초안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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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교수의 미시경제이론 수업. 학생들이 자리가 없어 계단에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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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유가철학 수업. 넓은 강의실에 학생은 몇 명 없다.

수강생 부족해 간신히 유지되는 계속강의

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인기 강의가 있는 반면 정원을 채우지 못해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강의도 있다. 계속강의 승인은 수강생을 채우지 못한 강의를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번 학기 교양의 계속강의 승인 내역을 보면 이태리어, 산스크리트어, 터키어, 몽골어 등 희소 언어 교과목이라는 이유로 승인을 받은 강좌수가 8개고, 이 외에 노인 관련 교과목이라는 이유로 ‘사회봉사 2’가, 영어강의인 관계로 ‘한국현대사의 이해’가 계속강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강의가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정한 패널티를 받고서 계속강의를 승인받는 경우가 있다. 교양의 경우 수강인원이 20명 미만이면 한 학기동안, 10명 미만이면 1년 동안 동일한 강의명의 수업을 개설할 수 없다. 김한상 강사(철학과)는 이번 학기에 ‘현대사회와 유가철학’을 개설했다. 15명의 인원이 수강 신청을 해서 격학기 개설을 조건으로 계속강의 승인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 강사는 수강생이 적은 이유에 대해 “‘유가철학’이라는 단어가 고리타분하게 들린다는 수강생의 평가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편견 때문에 학생들이 강의를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강사는 “교양강의는 아무리 수가 적어도 상대평가를 하도록 되어있다. 이는 인문학적 가치에 굉장히 위배되는 상황이다. 2002년부터 5년간 강의를 해 왔는데, C학점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C학점을 주는 상황도 있었다. 학교 측에 성적평가에 대해서 강사 재량을 요구했지만 개별 강사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수강생이 적은 수업에서 상대평가라는 잣대로 경쟁을 해야 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학점 인플레(한 강의에서 A학점을 받은 학생이 반을 넘는 등 고학점을 남발하는 현상)를 걱정하는 학교 측도 이해는 되지만 인간의 개입 여지가 전혀 없는 천편일률적인 시스템은 소수 강의를 사장시키는 큰 원인이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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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상 강사는 상대평가만 가능하게 한 학교 시스템때문에 학생들이 열린 마음으로 공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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