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기다리는 정책, 변화가 필요
현재 가출청소년의 보호와 지원에 관한 행정 업무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아동청소년복지정책관 아동청소년상담자활과에서 일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가출청소년의 보호와 지원, 청소년쉼터의 운영과 지원 등 가출청소년과 관련한 업무뿐만 아니라 ▲청소년 전화 1388 운영 ▲학업중단청소년 지원 ▲아동 학대 예방 및 보호 등과 같은 아동 청소년 업무 전반을 다룬다. 직·간접적으로 가출청소년과 관련 있는 사업은 청소년 가출예방·쉼터 운영 및 지원, 청소년전화 1388, 지역사회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 청소년 특별지원, 청소년동반자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보건복지가족부는 지역사회의 자원 활용과 다른 기관과의 협력을 위한 CYS-NET을 활성화하고자 적극 지원하고 있다.
| ###IMG_0### |
| CYS-Net을 기반으로 하는 위기청소년 지원과정. |
CYS-NET은 지역사회내의 활용 가능한 자원을 모두 연계해서 청소년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청소년지원 네트워크로, 청소년지원센터의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동반자프로그램, 청소년위기개입 프로그램을 통해 구축되는 체계다. 청소년전화인 1388로 전화를 걸면 청소년의 상황에 따라 일반상담·위기상담·신고로 분류돼 정보를 제공해주거나 보호시설 등에 연계해준다. 서울특별시청소년종합상담실 위기개입팀 김경희 씨는 “가출청소년들의 경우 당장 숙식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를 확인하고 해당 청소년을 (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하거나 다른 곳으로 연결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이봉주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들이 직접 아이들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서비스가 변화, 확장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 교수의 지적대로 CYS-NET과 청소년동반자프로그램 역시 학생을 찾아간다고는 하지만 청소년이 1388이나 청소년지원센터로 먼저 연락해야 하는 구조다. 응급한 상황에서 거리의 가출청소년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동청소년쉼터는 한국에 서울과 대전, 단 두 곳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서울시이동청소년쉼터의 김기남 팀장은 “홍콩의 경우 (이동쉼터가) 30만 명에 한 명 꼴로 있다면 우리는 4천만 명에 두 개 있다고 보면 된다”며 이동쉼터가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시설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생의 공간인 학교에서 복합적 서비스 제공돼야 한편 이 교수는 “청소년들이 제일 먼저 접하는 사회인 학교가 청소년의 전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는 입시를 위한 학습 능력을 키워주는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며 “북유럽의 경우에는 청소년 문제의 해결에 있어 학교가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학교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8년까지 일부 지역에 시범적으로 학교에 사회복지사를 파견해 학생들의 생활을 돌보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는 이를 위한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일부 교육청이나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이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청소년 가출이나 비행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서비스를 학교에서 제공할 전문 인력을 제공할 방법이 아직 체계화돼 있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전문계 고등학교 현직 교사는 “교육계 쪽에서는 가출이 대체로 학업의 중단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출을 ‘중도탈락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며 학교 측의 움직임이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중도탈락률이란 전체 입학생 가운데 자의 혹은 타의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학생의 비율을 말한다. 이어 그는 “당장 눈에 보이는 중도탈락률을 감소시키기 위한 주먹구구식 교육 행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가출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을 위해서도 “현실적으로 상담교사를 파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가정’인 청소년 쉼터가 겪는 어려움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는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곳 가운데 청소년 쉼터가 가장 대표적이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7년에는 21만여명의 청소년이 쉼터를 이용했으며,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의 1년 후 퇴소 형태를 보면 쉼터에서 계속 보호중인 경우가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쉼터에는 24시간 운영되는 일시쉼터, 최대 3개월까지 머무를 수 있는 단기쉼터, 3개월에서 2년까지 생활이 가능한 중장기쉼터가 있다. 이곳에서 가출청소년들은 기초적인 숙식 제공부터 심리상담, 교육까지 다양한 지원을 받게 된다. 학교와 가정이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곳은 쉼터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가출청소년이 범죄 피해자 혹은 피의자가 될 위험에서 비켜서있을 수 있는 곳인 쉼터 역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쉼터의 재정적 어려움에서 기인한다. 특히 민간 법인이 운영하는 쉼터의 재정문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쉼터보다도 더 심각하다. 청소년쉼터는 전국에 93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77개소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민간 법인이 운영하고 있다.
| ###IMG_1### |
| 한국 최초의 청소년쉼터인 서울YMCA청소년센터. |
재정문제는 명맥있는 쉼터의 존립도 위협한다. 지난해 서울기독교청년회유지재단이 운영하는 서울YMCA 청소년쉼터(YMCA쉼터)의 이윤정 실장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2008년 6월에 예산 담당자로부터 YMCA쉼터에 대한 2009년 예산편성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정부 측은 시나 구와 같은 지자체 위탁을 받으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지자체는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 쉽게 위탁을 주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탁을 받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YMCA쉼터는 지난 1월에 쉼터 폐쇄라는 결정을 내렸다가, 이를 번복해 재단 지원금과 후원을 기반으로하는 단기 쉼터를 지속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쉼터가 존립하게 됐지만, 쉼터 폐쇄 결정으로 인해 타 쉼터 관계자들이 받는 충격도 컸다. 이 실장은 “아이들과의 활동만으로도 바쁜데 앞으로는 쉼터를 홍보하고 스폰서를 찾는 일까지 맡아야 해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일할 맛 안나는 직장, 청소년쉼터 한편 이러한 쉼터 자체의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쉼터 상담가, 생활지도사 등의 근무환경과 급여는 열악하기만 하다. YMCA쉼터 야간생활지도사 채용공고에는 주말을 포함한 주 6일 근무에 야간숙직을 포함함에도 급여는 월 76만원에 불과하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청소년시립이동쉼터(이동쉼터)의 김기남 팀장은 “이동쉼터는 ‘쉼터계의 삼성’이라고 불릴만큼 다른 곳보다는 근무 여건이 좋은 편이지만 대부분의 쉼터는 월급이 적어 2~3년 이상 일하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쉼터에서 독립해서 나간 아이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이 상담사들 월급보다 많은 경우도 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 ###IMG_2### |
| 청소년을 대하는 일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편이지만, 근로 조건이나 업무의 보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 |
이렇게 경제적 지원이 부족하다보니 인력 수급도 원활하지 않아 생활지도사나 상담사가 청소년 지도를 하는 동시에 행정 업무도 부담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직원의 근로조건과 복지후생·업무 수행에 대한 인정과 보상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청소년쉼터 직원 1인당 보호 청소년의 수가 많은 데다 행정 업무까지 가중돼 쉼터 근무자의 이직에 대한 욕구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잦은 이직은 쉼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의 근속년수를 짧게 만들어 청소년에 대한 전문성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성심디딤돌청소년센터의 김정미 수녀는 “호주 쉼터의 경우 아이들 2명에 직원 4명이 함께 살고 있었고, 대부분이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전문가다”고 전하며 “한국의 쉼터는 사회복지 시설 중에서도 3D에 속해 아이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와도 중간에 그만두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국내 쉼터의 현실을 전했다.멀리 내다보는 정책과 이에 대한 사회의 지지가 열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사회복지 접근법에서 비롯된다. 투입하면 산출물이 명확하게 나오는 경영 분야와는 달리 사회복지는 성과가 비가시적인 경우가 많다. YMCA 이윤정 실장은 이를 “투입-산출식 접근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지만, 행정부는 예산을 활용한 뒤 어떤 결과물이 나왔는지 국회에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가시적인 것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봉주 교수는 “청소년 정책 개발과 실행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 예산 배분에서는 청소년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사회복지 계획에서 함께 다루는 노인이나 육아 관련 정책과는 달리 청소년은 유권자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 ###IMG_3### |
| 거의 모든 부문에서 예산이 삭감된 아동·청소년 복지 정책. |
실제로 2009년의 아동·청소년 정책예산은 59억 원으로 이전년도(67억 원)에 비해 12.4% 감소했으며, 청소년활동 및 복지증진예산은 372억 원으로 이전년도(494억 원)에 비해 24.7% 감소했다. 후자에 포함되는 청소년 가출 예방에 쓰이는 예산은 2억1천만 원에서 1억8천만 원으로 15% 감소했다. 아동·청소년 사업 항목 예산의 대부분이 5%에서 20% 이상까지 삭감됐으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청소년 가출 예방과 관련한 예산 역시 더 줄어들었다. 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시민사회이다. YMCA 이윤정 실장은 “어떤 국회의원은 심지어 ‘쉼터가 있으니 가출한다. 그니까 쉼터를 잘 만들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이는 청소년 가출의 발생 원인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수준임을 비추는 동시에 가출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실장은 “청소년 가출 문제는 이제 청소년 개인이나 해당 가정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복합적인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이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가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묻자 전문가들은 “사회적 차원의 관심을 기울이고, 장기적 안목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봉주 교수는 1차 혹은 초기 가출청소년의 보호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맨 처음에는 가출을 충동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YMCA 쉼터 이윤정 실장과 진미정 교수(아동가족학과)는 가정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가출 행위를 “반항을 넘어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탈출구로써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한편 진 교수는 “가출이 발생하기 전에 가출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며, 그를 위해서는 건강한 가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출청소년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청소년 개인의 문제로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할 점은, 그 청소년 역시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제자로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진미정 교수는 “가출은 가출하는 개인과 그 주변의 상호관계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가출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개인, 가족, 학교, 사회 전체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