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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16번 버스에 붙어 있는 여행프로젝트의 광고. 서울시의 대대적인 홍보로 주변에서 이런 광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여자를 울려라.’ 도발적인 문구가 인상적인 이 광고는 어느 기업의 티저광고가 아니다. 바로 서울시에서 지난 2007년부터 야심차게 추진 중인 ‘여자가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여행프로젝트)의 광고다. 서울시에서 운행 중인 시내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이 광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광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로등을 설치해서 밤길을 밝게 해준다거나, 하이힐의 뒷굽이 빠지지 않게 보도블럭을 교체해주는 사업 내용이 소개돼 있다.그러나 광고에 소개돼 있는 몇 가지 사업들이 전부는 아니다. 여행프로젝트는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여성친화적인 도시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5천억 원 이상의 사업비를 들여 시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돌보는 서울, ‘일있는 서울’, ‘넉넉한 서울’, ‘안전한 서울’, ‘편리한 서울’의 5개 사업 영역에서 90개 사업을 실시한다. 이 사업을 통해 정책 개발 단계에서부터 여성들의 관점이 반영되고, 여성들이 도시 공간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여성 친화적인 서울을 만들겠다는 것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꿈이다. 女幸, “여성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여행프로젝트의 정신은 ‘여자가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라는 표어에 잘 나타나 있다. 배은경(여성학 협동과정) 교수는 “여성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남성의 눈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생활의 불편함과 위험이 보인다. 그리고 그 혜택은 여성만 누리는 게 아니라 공동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말의 의미”라고 말한다. 그동안의 여성정책이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었다면, 여행프로젝트에서는 여성의 적극적인 정책 참여 확대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지금까지 여행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는 일단 합격점이다. 우선 서울시 민원행정 서비스의 여성 분야 만족도가 14.5%에서 28.4%로 크게 높아졌다. 서울시에서 2007년부터 여행프로젝트를 강력한 의지로 추진한 결과로 해석된다. 외국의 반응도 좋다. 올 3월 제 53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서는 여성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이라며 호평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08년 7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 포럼에서 여행프로젝트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서울시에서 서울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책인 ‘젠더 거버넌스’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국내외에서 기대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여행프로젝트가 애초 그 설립 취지나 목적과 달리 운영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여성의 행복? 이런 것이라면 반댈세”우선 이 프로젝트가 반여성적인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아직도 여성의 역할을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기반해서 소극적으로 바라본다거나, 여전히 여성을 정책의 주체가 아닌 정책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지적이다. 여성주의 문화웹진 ‘언니네트워크’는 지난 2월 특집에서 ‘여자를 울려라? 눈물 난다!’라는 여행프로젝트 비판 글을 게재했다. 언니네트워크의 사무국장인 난새 씨는 “여행프로젝트는 완전히 쇼”라고 비판했다. 특히 여행프로젝트가 육아나 보육에서 여성이 돌봄 노동을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녀는 “여행프로젝트에서 말하는 여성이란 기혼 여성을 뜻하는 것이고,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 여성’도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3.8 여성의 날을 맞아 인문대 학생회와 학술 동아리인 이퀄리버티가 꾸린 단체 연두빛(연대의 두근거림으로 빛나는)도 자보를 붙여 이런 점을 비판했다. 연두빛의 단장 이단(독어교육 07) 씨 역시 “여행프로젝트는 가정에서 ‘돌보는 역할’을 끊임없이 여성이 해야 하는 것으로 요구 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노동이 마치 ‘돌봄 노동’에만 한정되는 것 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행프로젝트에 포함돼 있는 아이돌보미 사업지원 강화, 초등학교 급식도우미 지원은 이런 일은 원래 여성이 해야 하는 일로 미리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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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여성의 날을 맞아 연두빛에서는 여행프로젝트를 비판하는 자보를 붙였다. |
서울시가 시내버스와 지하철에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여행프로젝트 광고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자를 울려라’라는 광고 카피는 여성에게 시혜를 베푸는 남성을 연상시킴으로써 여행프로젝트가 애초에 중요시 했던 여성의 주체적인 역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배은경 교수는 “광고 카피인 ‘여자를 울려라’와 ‘눈물’ 모양의 광고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정책을 해주는데 왜 너희들은 감동하지 않느냐고 하는 느낌을 주는 광고”라고 말했다. 언니네트워크도 “서울시 정책의 광고가 사업 소개보다는 여성을 대상으로 감성 마케팅만 하려 하는 것 같다”며 반감을 나타내었다. 서울시는 ‘여자를 울려라’라는 카피는 섬세한 여성정책으로 여성을 감동으로 울리라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여성 전용 주차장과 같은 여성 분리적인 사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여성을 너무 배려한 나머지 본질을 놓쳤다는 것이다. 배은경 교수는 “이 사업은 여자들이 운전을 못하니깐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인 사고에서 시혜적인 혜택을 주겠다는 발상”이라며 “어디든 주차공간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전용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않은 일이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정신은 아니”다며 잘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여성 수다방이나, 신설 주차장에 여성전용 주차공간을 의무화하는 여성 전용 정책은, ‘분리’가 ‘보호’라는 잘못된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아야지 남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만 붙이면 다 여성정책. 식지 않는 사업 적합성 논란여행프로젝트에는 왜 이런 것까지 여성 정책이라고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하는 정책들이 상당수 있다. 여행프로젝트에서 ‘편리한 서울’영역 중 하나인 ‘저상버스 도입 확대’ 사업이 대표적이다. 여행프로젝트의 90개 사업 중에서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왜 여성 정책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법학부 08학번 김 모 씨는 “저상버스는 여성 정책이라기 보다는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여행프로젝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정책이 여행프로젝트에 왜 포함돼 있는지 놀라울따름”이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그런데도 서울시에서는 ‘저상버스 도입은 여성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여성정책’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편리한 서울’ 영역에서만 해도 여행프로젝트에 적합하지 않은 사업으로 지적되는 사업이 몇 가지 더 있다. 버스 고급화,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의 사업은 여성 정책에서 추진해야 하는 사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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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을 위한 콜택시 사업으로, 서울시는 브랜드 콜택시를 운영한다. |
‘안전한 서울’의 한 사업인 ‘여성을 위한 콜택시 사업’은 심야에 여성들의 안전과 배려를 위한 택시서비스 제공 사업이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4개의 콜센터를 하나로 묶어서 ‘브랜드 콜택시’를 운영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여성 택시 운전자가 충분히 확충돼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택시 정보가 가족에게 전송되는 콜택시가 여성을 위한 콜택시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반응이 많다. ‘넉넉한 서울’ 사업의 한 프로그램인 ‘외국인 투자가의 배우자와 가족 지원 프로그램의 실시 사업’ 역시 여성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별다른 고민을 찾기 힘들다. 그저 대상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행프로젝트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언니네트워크에서는 ‘외국인 투자가의 배우자, 가족 지원 프로그램은’ 애초에 여행프로젝트가 추구했던 여성의 행복과 뚜렷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비판한다. 이 외에도 ‘돌보는 서울’의 경로당 프로그램 개선, 안전한 서울의 여성을 위한 금연 환경조성, 지하보차도 관리, 음식폐기물 배출처리방법 개선, 쇼핑센터에 재활용품 분리수거함 확대 설치, 버스 고급화 추진, 엘리베이터 증설 및 대기용 의자설치, 가족과 함께하는 탐방코스 확충 및 홍보 등은 여성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책임에도 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여행프로젝트에 포함돼 있다. 이처럼 여행프로젝트 안에는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사업 중에도 여성 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책들이 몇 가지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총 5천127억 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를 영역별로 살펴보면, ‘돌보는 서울’이 790여 억 원으로 15.4%, ‘일있는 서울’이 290여 억 원으로 5.7%, ‘넉넉한 서울’이 280여 억 원으로 5.6%, ‘안전한 서울’이 320여 억 원으로 6.3%, 마지막으로 ‘편리한 서울’이 3천433여 억 원으로 가장 큰 70%를 차지하고 있다. 편리한 서울 영역은 가장 예산이 적은 넉넉한 서울에 비해 무려 12배 가까이 큰 규모로, 영역 간의 불균형이 심하다. 게다가 ‘편리한 서울’ 사업에 속해있는 ‘저상버스 도입 확대’ 사업은 4년간 총 1천567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으로, 여행프로젝트 전체 예산의 무려 30% 이상을 차지한다. 이처럼 일부 사업에 예산이 편중돼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런가하면 정작 필요한 사업에 예산이 적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여성 폭력 피해자 무료진료 지원’ 사업의 경우 검진자에게 최대한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당초 의도가 무색하게 예산이 적게 책정돼 있다. 2009년의 사업 계획을 보면 600만원의 예산으로 250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데, 이 계획대로라면 결국 한 명당 고작 2만 4천 원 정도 지원되는 꼴이다. 여성폭력피해자가 과연 무료진료 지원 사업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의심해볼만한 대목이다. 언니네트워크의 난새 씨는 “가정 폭력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병원비와 진료비를 지원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사업이다. 여행프로젝트에서 가장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늘리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정책에는 예산이 적어질 수밖에 없어서, 현재 사업 계획대로라면 이 사업은 생색내기나 다름없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대해 서울시는 “여행프로젝트가 여성정책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국비와 시비로 약 26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행프로젝트 사업의 ‘여성 폭력 피해자 무료진료 지원’은 서울의료원 내의 예산에 편성돼 있는 개별사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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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광고 속 여성은 환하게 웃고 있다. 과연 여행프로젝트로 모든 여성이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