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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림동 고시촌 주변 서점에 붙어있는 학원 전단지들. |
지난 2월 말, 신림동 고시촌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를 방불케 했다. 사법시험(사시), 행정고등고시(행시), 외무고등고시(외시), 공인회계사시험(CPA)의 제1차 시험이 차례대로 시행됐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감소추세를 보이던 CPA의 응시자가 2년 연속 40% 이상 증가하며 그 관심이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사시의 경우도 법학전문대학원 개원으로 2016년 마지막 제1차 시험이 예정되어 있지만 그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다시 내려지는 ‘고시’의 정의 이와 같은 열기를 반영하듯 어느 순간부터 ‘고시’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낯설지 않게 됐다.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고시는 고등고시의 줄임말로, 처음에는 행정과, 사법과, 기술과로 나누어 실시하다가 1963년 사법과만 사법시험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로도 변천을 거쳐 현재 사전적 의미의 고시는 행시와 외시뿐이다. 고등고시는 일본의 제도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 (신문방송학과)는 그가 저술한‘입시전쟁 잔혹’에서 ‘1924년 문을 연 경성제국대학에 다니던 극소수의 조선인 학생들이 식민지 고등관료로 진출하기 위해 고시 열풍에 몸을 던졌다’며 최근의 고시 열풍이 현재적 상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지속됐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요즘은 행시, 외시, 사시뿐만 아니라 CPA, 변리사시험까지 소위 고시로 불리고 있다. 더불어 의치학교육입문검사인 MEET, DEET, 법학적성시험인 LEET 등 새로운 제도에 따른 신생시험들까지 고시의 범주로 여겨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고시보다 쉽게 생각되던 경찰공무원시험이나 7, 9급 공무원시험 등에도 응시자들이 몰림에 따라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고시처럼 합격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최근 경제 한파로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일찍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입시 이후에 곧 바로 고시 관련 학원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고시전문교육원 베리타스 정하영 부원장은 “경기불황만으로 선택하기에는 행시, 외시, 사시 등의 고시는 위험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취업난으로 인해 고등고시 응시자들은 다른 공무원 시험에 비해 크게 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학력자들의 고등고시 응시율은 다른 요인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아 비탄력적으로 꾸준한 것이 정 부원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A(경제 04) 씨는 “지금 CPA를 준비하고 있다. 동기들 중에서 절반 정도는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대다수가 한 번씩은 고시에 도전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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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무게만큼이나 고시생이 홀로 짊어진 짐의 무게도 무겁다. |
내 머릿속의 고시생 VS 현실 속의 고시생
얼마 전 KBS ‘개그콘서트’에서 종영된 ‘노량진 블루스’ 코너에서는 ‘전국민의 수험생화’, ‘고시 공화국’이라는 표어를 내걸며 고시생들을 풍자적인 모습으로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코너는 사회가 고시생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B(고고미술사 08) 씨는 “고시생하면 우선 피곤에 찌들어있다는 생각부터 든다. 트레이닝복에 잘 감지 않은 머리를 하고 있을 것 같다”고 고시생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했다.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인 C 씨도 “고시에 합격하면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되기 때문에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하는 선배나 동기들의 합격 소식을 듣기가 어려워 안타깝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고시생은 “고시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며 이 같은 시선들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정하영 부원장은 “요즘에는 일반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고시생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고시생의 겉모습에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는 것이 고시생들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며 최근 고시생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 그는 “예전에 비해 외시, 사시 등에서 합격자 수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에 고시생들의 재응시 횟수도 줄어 사람들의 생각처럼 오랫동안 고시를 하는 사람들도 드물다”고 덧붙였다.안전함을 쫓는 고시생들 일반인들이 고시생들에게 부여하는 가장 부정적인 시선은 ‘고시를 시작하는 것이 자신의 적성보다는 안정에 비중을 둔 이해 타산적인 선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관료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인 사람들도 있지만 흔히 고시생들은 공직에 대한 뜻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해 사시에 합격한 D(법학 04) 씨는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안정적인 길을 찾다보니 고시 열풍이 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시에 붙으면 인생이 해결되던 시대는 이미 끝났고, 합격 후에도 자기개발에 더 힘써야 하는 것이 요즘 세태”라며 더 이상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고시에 뛰어드는 것은 그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행정안전부 인력개발관리과 김희재 사무관은 “경제상황에 따라 직업적 안정성이 높은 공직으로 보다 많은 지원이 예상되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시를 준비하며 국가 경제적으로 낭비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사무관은 학교교육 성적 우수자나, 관련분야 민간업체에서 근무경력이 있는 자를 채용하는 다양한 경로를 활용하고 자 하는 뜻을 밝혔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관련 제도로는 ‘견습직원 선발시험’을 꼽았다. 또한 김 사무관은 “이공계 박사 특채, 자격증, 경력자 특채 등 다양한 민간 근무경력자를 채용하여 공직문호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공채시험에서는 연령 폐지에 따른 시험 준비생 증가로 발생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공직 지원 추세 등을 지속적으로 모티터링하여 필요시 시험방식 개선 등 적절한 제도적 개편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또다른 고시촌의 자화상 고시생 못지않게 고시생들이 모여 사는 고시촌 또한 일반인으로부터 여러 측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공부와 합격에 대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고시생들이 비행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추측이 일반인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또 고시촌 일대의 고시원에는 싼 숙식비 때문에 도피 생활자, 백수 등 신변이 불안한 ‘사이비 고시생’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작년 10월 서울 소방재난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관악구에 서울 전체 고시원의 20%가 몰려 있고, 이 중 고시원에는 57%가 비고시생으로 조사되고 있다. 결국 고시촌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비고시생들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림9치안센터의 안근현 경사는 “생각하는 것만큼 신림동고시촌 일대가 다른 지역에 비해 강력범죄율이 높은 편은 아니다. 고시생들의 대부분은 공무원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폭력 등의 사건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신경쓰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자주 지적되는 신림동고시촌의 퇴폐업소에 대해 “이곳에 다수의 유사성행위 업소가 있는 것으로 파악은 하고 있다.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앞으로 계획을 세워 단속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신림동고시촌 주변에는 고시촌의 특성을 반영하듯 고시서점, 고시식당 등 고시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상점과 함께 피시방, 술집 등 많은 유흥 시설들이 입점해있다. 그 중에서 새롭게 등장한 ‘토킹바’는 그 존재의 찬반에 대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공부로 인해 스트레스는 증가하지만 막상 이야기할 곳은 마땅치 않은 고시생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지만 이곳은 유사성행위 업소로도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한 사시합격생은 “(토킹바가) 원래의 목적대로만 실천된다면 말할 곳이 없는 고시생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 줄 것”이라며 토킹바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고 밝혔다. 고시촌 주변의 높은 범죄 발생률과 퇴폐업소의 난립뿐만 아니라 고시생들의 정신건강에서 비롯된 자살사건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작년 11월 사시에 합격 후 고시 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우은정 씨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시험에 통과한 편이지만 시험에 합격한 후 기쁜 마음보다 더 이상 이 공부를 안해도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만큼 힘든 수험기간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히며 고시를 준비하는 모든 학생들이 체력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는다고 이야기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안근현 경사는 “이번 3월 한 달 동안은 고시생과 관련하여 자살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조사가 됐지만, 보통 시험 전후와 발표일 전후로 여러 건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공부이외의 문제에 신경 쓸 수 없는 수험생활에서 이러한 정신문제에 대해 도움을 받고 싶어도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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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고시생의 모습이지만 실제와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 |
고시에 대한 사회 전반적 담론이 필요해
이처럼 고시생과 고시촌에 대한 편견과 현실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는 고시라는 사회적 현상이 객관적이인 기준보다는 선입견에 의해 진단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부족한 상황에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고시에 뛰어드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E(법학 07) 씨는 “대부분의 정보를 인터넷 카페나 친구들에게 얻는다. 시험을 준비해야하긴 해야겠는데 올바른 방법으로 하고 있는지,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여느 때와 비교해 이렇게 고시가 부흥하고 있고, 이른바 고시 낭인을 왜 양산하고 있는 지에 대해 고시생과 비고시생 모두 본질적인 질문은 회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하영 부원장은 “고시전문 교육원 입장에서 고시의 장단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에 따라 응시생들에게 도움을 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며 “다만 공무원을 뽑는 시험제도 자체가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전했다. 김희재 사무관은 “고시는 그간 공정한 인재등용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으며, 국가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일각에서는 행정환경의 변화에 따라 고시제도에 대해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런 점을 감안해, 고시제도가 가지고 있는 순기능을 살리면서 문제점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고시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과 연관돼있음에도 불구하고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거나 고시 제도에 한정돼 평가되기 일쑤다. 이에 대해 이준구 교수 (경제학부)는 “학문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많은 대학생들이 고시를 준비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많은 사회적 원인들이 뒤엉켜 있기 때문에 뚜렷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며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했다. 이 교수는 “무조건적인 고시를 막기위해 인문대학이나 공과대학에 지원을 해주는 것도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며 “대학차원이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사회차원에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만 그 지원이 의미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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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연수원 배지를 가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힘들어져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