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것들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가졌다.첫째, (아마 대부분은)등록금을 내면서 세 끼 밥을 챙겨먹을 만큼의 돈을 가졌다.둘째,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있다.셋째, 공부를 잘 했으니 주변의 관심도 어느 정도 받고 살았을 것이다.세 가지 모두를 갖고 있는 내 경우, 크게 부족한 게 없다보니 자꾸만 작은 것에 불평을 하게 됐다.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가졌다. 첫째, (아마 대부분은)등록금을 내면서 세 끼 밥을 챙겨먹을 만큼의 돈을 가졌다. 둘째,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있다. 셋째, 공부를 잘 했으니 주변의 관심도 어느 정도 받고 살았을 것이다. 세 가지 모두를 갖고 있는 내 경우, 크게 부족한 게 없다보니 자꾸만 작은 것에 불평을 하게 됐다.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은데 마냥 쓰다보면 돈이 부족했다. 그럴 땐 “용돈을 조금만 더 받았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할 때면 해외로 훨훨 날아가서 자유로운 세상을 보고 있을 친구들이 마냥 부러워졌다. 그날도 나는 ‘가지지 못한 것’에 미련을 느끼며 내 신세를 한탄하며 집에 가는 길이었다. 우편함에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그 안에 얼굴색이 가무잡잡하고, 까맣고 큰 눈동자를 가진 남자아이의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낯익은 얼굴 같아 눈여겨보니, 1년 전 내가 결연을 맺었던 10살짜리 베트남 소년이었다. 아이는 내게 짧은 편지도 썼다. 내 후원금으로 책도 사고, 노트도 사고,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내 덕분에 자신의 꿈인 선생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그 순간, 매달 내는 만원짜리 두 장이 아깝다며 투덜거리던 나의 예전 모습이 떠오르면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가출청소년 취재를 위해 아이들을 만나면서 부끄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와 기껏해야 3~4살 차이나는 아이들은 그 때의 나에 비해 너무나 조숙했다. 이들은 가정과 사회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온전히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이들 앞에서 나는 ‘철이 덜 든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하는 아이들 앞에서, 대학생 주제에 “공부가 하기 싫다”는 내 투정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이었을까. 한 인터뷰이가 했던 말이다. “기자 분들은 공부를 잘 하셨을 테니까 아마 모를 거예요, 반에서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어떤 기분일지. 그 아이들은 이름만 기억하고 불러줘도 정말 많이 변해요.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에 감동을 받으니까요.” 아무에게서도 관심 받지 않는 삶은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볼 수 없었다.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누군가는 항상 내게 관심을 가져주고, 이름을 불러줬다. 때로 우리는 삶의 팍팍함에 치여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를 잊고 살곤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쓰느냐보다 모자란 부분을 ‘남들만큼’ 채우기 위해 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잠시만 숨을 돌리자.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을 둘러보자. 가지지 못한 것의 부족함 대신 가진 것의 감사함을 생각하면 삶은 곧 ‘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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