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 복지와 정치의 틈바구니에서

총학생회는 학생자치활동의 상징적 기구다.1985년 학도호국단이 폐지된 이후 지하조직으로 운영되던 총학생회가 전면에 부상했다.정권과 학교는 학생들의 정치참여를 막기 위해 총학생회를 탄압했지만, 총학생회는 민주화의 ‘선봉’이자 학생권익을 지키는 ‘바리케이트’였다.1985년 이후 매년 총학생회 선거가 펼쳐진다.선거는 학생사회에서 다양한 논의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선거기간 동안 학내에는 거대한 공론의 장이 형성된다.

총학생회는 학생자치활동의 상징적 기구다. 1985년 학도호국단이 폐지된 이후 지하조직으로 운영되던 총학생회가 전면에 부상했다. 정권과 학교는 학생들의 정치참여를 막기 위해 총학생회를 탄압했지만, 총학생회는 민주화의 ‘선봉’이자 학생권익을 지키는 ‘바리케이트’였다. 1985년 이후 매년 총학생회 선거가 펼쳐진다. 선거는 학생사회에서 다양한 논의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선거기간 동안 학내에는 거대한 공론의 장이 형성된다. 그 중심에는 총학생회선거에 등장한 ‘공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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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대 총학생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의제로 총투표를 진행했고, 동맹휴업을 성사시켰다. 총학생회는 학생사회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총학회선거 공약, 해를 거듭할수록 복지 위주로

90년대 초반까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공약’이란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선거운동본부(선본)들은 각각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선거를 진행했다. 이들은 정치적 담론을 위주로 선거를 진행했다. 정은미(사회 92 씨는 “당시엔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수업보다 중요했다. 총학생회 선거도 그 연장선 에 있었다. 노동, 통일, 여성 등의 담론이 활발하게 소통됐으며 학생정치조직이 주로 당선됐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은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조덕현(외교 99) 씨는 “한 선본이 등록금을 깎자고 주장했다가 복지공약을 내세웠다고 비판받은 일도 있었다. 당시 복지공약은 하나의 금기사항이었다”며 정치적 담론 위주의 총학생회 선거를 회상했다. 정치적 론보다 복지를 앞세운 선본도 있었다. 총학생회 선거에 비운동권 선본이 처음으로 당선된 것은 1999년이다. ‘광란의10월’ 선본은 재미있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제42대 총학생회 선거에 당선됐다. 그러나 제42대 총학생회는 운영상의 미숙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오영훈(응용생물화학 97) 씨는 “‘광란의10월’ 이후 비운동권이 당선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2003년에 ‘학교로’ 선본이 당선되고 이후에 점점 비운동권의 입지가 넓어지는 걸 보며 학생사회의 지형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에는 꾸준히 비운동권 선본이 등장했다. 제51대와 제52대 총학생회선거에서 ‘실천가능’ 선본이 당선된 것도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총학생회장 박진혁(경제 05) 씨는 “다양한 공약을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학생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실천가능’의 목표”라고 밝혔다. ‘실천가능’은 ‘남학생휴게실설치’, ‘긴급구조셔틀’, ‘군복무중학점이수제’ 등 다양한 복지공약을 내세웠다. 복지공약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최근 비운동권 선본이 강세를 보이는 것에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정근식 교수(사회학과)는 민주화의 진전과 시민사회의 성장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예전에는 시민사회가 정치적인 요구를 할 수 없었다. 군부정권에 의해 많은 부분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주체가 학생뿐인 상황이었다. 지금은 정치적 비판을 외부 시민사회가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정치에 참여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이런 변화에는 취업시장의 축소도 한몫을 담당했다. 정 교수는 “전체적으로 취업시장이 경쟁적으로 변했다. 대학사회가 커졌고 다른 대학과의 경쟁도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외부의 정치적 문제에 참여하기보다는 개인적인 복지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생들의 계급적 배경이 변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경제적 여건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개인화돼 가는 것도 한가지 원인이다. 곽금주 교수(심리학과)는 “현실적인 문제, 자신과 직결되는 것에 학생들이 점점 더 많이 심을 가진다. 최근의 학생들의 의식을 살펴보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보다 복지나 안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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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대 총학생회 선거 직후, ‘서울대대학생사람연대’는 자보를 통해 복지공약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의 학생들이 대체로 복지공약을 선호하는 것은 명백하다. 총학생회 선거에서 ‘실천가능’이 2년 연속으로 당선된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복지 일변도의 공약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김휘동(지구과학교육 05) 씨는 “복지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총학생회 선거의 중심이어선 안 된다. 최근 선거를 보면 다양한 복지 아이디어로 ‘표’를 사는 마케팅 같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총학생회 선거가 근시안적 관점에서 학내에 갇혀있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제50대 총학생회장 한성실(미학 03) 씨는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대표기구다. 학생들의 의사를 모으는 중심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 선거 때, 할 수 있는 것만 말하다보면 언젠가는 학생들이 총학생회를 불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주(국어국문 05) 씨는 복지를 위해서도 복지공약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복지에는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준다. 학생사회 외부의 문제나 법인화 같은 큰 문제들이 복지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이런 걸 무시하고 학내의 복지 제도 하나하나에만 집착하면 제대로 된 복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공약, 중요하지만 실행되기 어려워실제로 학생사회에서 총학생회 선거 때의 공약이 갖는 의미는 크다. 한성실 씨는 “선거라는 과정이 중요한 만큼 공약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각 선본이 내세우는 입장이 선거 때 다양한 논의를 형성한다. 선본의 입장을 실현시키는 방법이 ‘공약’이다. 공약은 학생사회의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박진혁 씨는 “학생회에 관심이 없는 학생도 많고 학생회를 싫어하는 학생도 많다. 이는 학생회에 대한 신뢰가 붕괴됐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여태껏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정치적 구호가 학생들의 생활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약을 성실하게 이행할 때 총학생회에 대한 신뢰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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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장 박진혁 씨는 “협상을 통해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선거 공약이 공수표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상황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제50대 총학생회가 내세운 ‘대학국어 S/U’, ‘생리공결제’는 무성한 논의만 남기고 시행되지 못했다. 제51대 총학생회의 간판공약인 ‘남학생휴게실’도 당초 공약과 어긋난 모습으로 시행됐으며 그마저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박진혁 씨는 적극적인 협상을 통해 이런 상황을 타개하겠다고 밝혔다.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 등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확실하게 전달하겠다. 꾸준한 협상을 통해 공약사항을 실천하겠다”며 본부와의 대화의지를 밝혔다. 한성실 씨는 “본부와 학생 사이에는 명백한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학생들은 언제나 권력관계의 아랫부분에 위치한다. 대화만으로는 법인화 등 중요한 일들을 해결할 수 없다. 많은 학생들의 요구를 모으고 강하게 관철시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52대 총학생회, 실천가능한가제51대 총학생회는 ‘17+1학점’, ‘셔틀버스연장운행’, ‘구급약상비제’, ‘긴급구조셔틀’ 등 다양한 공약을 실천했다. 제52대 총학생회의 공약은 실천가능한 것일까. 제52대 총학생회는 ‘군복무중학점이수제도’, ‘project중도’, ‘24시프로젝트’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대부분의 공약들에 대해 본부 측은 난색을 표했다. ‘군복무중학점이수제도’는 12학점을 군대에서 온라인으로 이수할 수 있는 제도다. 박진혁 씨는 “군복무 동안 학생들이 학업과 너무 떨어져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정책을 만들었다. 국방부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사과 김기철 사무관은 “군복무학점이수를 위해선 온라인 강의가 신설돼야 한다. 작년에도 온라인 강의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할 수 없었다. 교수자가 없기 때문이다. 교수들에게 공문을 돌렸으나 부정적인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강의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강의를 개설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사무관은 “온라인강좌가 개설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군복무중학점이수제도는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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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실천가능´ 선본은 ´군복무중학점이수제도´ ´24시프로젝트´ 등의 복지공약을 앞세워 당선됐다.

‘project중도’나 ‘24시프로젝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project중도’는 ▲중앙도서관 사물함 개선 ▲도서자동반납기 확충 및 분산배치 ▲중앙도서관 예약도서 반납개선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24시프로젝트’는 중앙전산원과 인문대 신양학술정보관을 24시간 개방하겠다는 공약이다. 중앙도서관 정보관리과 김기태 사무관은 “도서자동반납기 분산 설치나 중앙도서관 터널에 예약도서를 반납하는 것은 현재로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인력문제 때문이다. 각 단대에 반납된 도서를 중앙도서관으로 가져오고 반납된 예약도서를 즉시 가져올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김 사무관은 “중앙도서관에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도 줄어들었다. 많은 인력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사물함확충에 대해서 중앙도서관 행정지원팀 김장원 실장은 “중앙도서관 입장에선 사물함 수를 늘려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2008년 연말에 사물함을 증량했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김 실장의 설명이다. ‘24시프로젝트’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친다. 장재성 학생처장은 “중앙전산원이나 인문대 신양학술정보관을 24시간 개방하기 위해선 관리자가 필요하다. 관리자의 임금이나 전기, 수도의 사용도 고려해야 한다”며 ‘24시프로젝트’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학생과 관계자는 총학생회에 대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학교 복지의 많은 부분이 등록금을 통해 진행된다.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시행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진혁 씨는 “결국 분배의 문제다. 학교 예산 전체에서 많은 부분을 학생 복지에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총학생회의 일”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박 씨는 “등록금이 동결됐다 해도 학생들이 많은 등록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총학생회는 학교 예산 가운데 학생들의 몫을 키워 학생 권익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 51대 총학생회도 대화를 통해 많은 부분을 이뤄낼 수 있었다. 낙성대셔틀 등도 본부가 난색을 표한 공약들이었으나 주장과 논의를 거듭한 끝에 시행할 수 있었다.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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