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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 이젠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다. 앞에서 살펴봤듯 TV·라디오·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알파걸이라 불리는 높은 연봉의 전문직 여성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고, 올해 30%에 육박했다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의 여성 합격률 보도는 이제 귀가 따가울 정도다. 그렇다면 알파걸 현상은 언제,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알파걸 탄생시켜 배은경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는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알파걸을 만들었다고 본다. 배 교수에 따르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는 가정 부양을 남성이, 가사 노동을 여성이 맡는 근대적 성역할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능력을 통해서만 안정적 자아 실현을 이룰 수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오면서, 여성들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적 노동 대신 공적 노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성들 중 경제적 지위가 높은, 다시 말해 전문직·고연봉을 쟁취한 여성들이 알파걸로 칭송받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경제 위기 때 알파걸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남성의 경제력만으로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IMF 이후 남성 한 명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1인 생계 부양 체제에서 맞벌이 부부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IMF 이후인 1997년과 2000년 사이에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6.1%에서 74.2%로 꾸준히 감소했으나, 여성은 1997년 49.8%에서 1999년 47.6%로 소폭 감소했다가 2000년에 48.6%로 오히려 상승했다. 평균 결혼 연령대인 25~29세의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3%의 증가를 보여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도 눈에 띈다. 이는 경제 위기를 맞은 여성들이 결혼 직후부터 가사보다는 취업과 경제 활동을 우선시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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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은경 교수는 “알파걸 신드롬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열악한 지위의 여성들을 은폐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지적했다. |
그러나 여성의 활발한 사회 참여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남성과 완전히 동등한 지위로 올라가지는 못했다. 여전히 여성에게는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일만 잘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자기 가정에서도 똑 부러지게 살림하고, 심지어는 육체적 매력이나 성적 매력까지도 갖추어야만 여성들은 인정받는다”고 주장했다. 요즘 여성들은 부모님 세대부터 내려온 견고한 차별 구조를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따라서 알파걸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순수하게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공무원 시험, 사법고시, 의사 등으로 취업하거나, 기업에서 남성들보다 두 세배의 노력을 해서 버텨내는 것이다. 능력있고 ‘독한’ 이 시대 ‘알파걸’의 자화상이다.허울 좋은 알파걸, ‘현실은 시궁창’ 그러나 알파걸은 소수의 여성들에 국한된 현상일 뿐, 여전히 대다수의 여성들은 남성보다 열악한 지위에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정규직 중 여성 비율은 전체 인원의 34%에 불과한 반면 비정규직은 오히려 남성보다 약간 높은 51%를 차지한다. 그런데 정규직 비율은 작년보다 3% 줄었는데 비정규직 비율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다시 말해, 전체 여성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늘어났지만 비정규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대로인 것이다. 배은경 교수는 이에 대해 “올 들어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그나마 있던 비정규직 자리도 남성에게 먼저 돌아가기 때문”이라 해석했다. 이어 배 교수는 “알파걸 신드롬이 소수 여성의 사례를 전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처럼 포장하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실직 여성들을 알아채지 못하게 막는다”며 알파걸을 둘러싼 착시 효과에 대해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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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에 비해 11계단이나 추락한 ‘UNDP 여성권한척도’는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직 걸음마 단계임을 보여준다. |
사실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알파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2007년 국회의원, 고위 임직원 및 관리직, 전문기술직의 여성비율을 점수화한 ‘UNDP 여성권한척도’에서 우리나라는 93개국에서 64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는 전년도의 53위에 비해 11계단이나 하락한 수치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 의원 비율은 전체의 13.4%이며 대기업 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에서 여성은 2만8천여명으로 남성의 10%도 되지 않는다. 배 교수는 “자기의 노력뿐 아니라 주변사람의 평가가 중요한 기업이나 언론사에서는 술자리나 사교생활에 불리한 여성들이 고위직이 되기 어렵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의료계나 법조계와 같은 전문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조영훈(의예 05) 씨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 레지던트를 받지 않는 과들이 있었다, 지금도 여성들은 과 선택에 암묵적 제한이 있는 편”이라며 의대 여성의 현실을 전했다. 2008년 통계청의 ‘의료인 면허 등록현황’에 따르면 여의사의 비율은 전체 9만5천719명 중 1만5천376명(20.4%)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하계급적인 의료노동과정과 당직 등 초과근무에 남성이 적합할 거라는 고정관념은 여성 전문의의 배출을 막고 있다. 과에 따라 여성 비율이 양극화되는 것도 문제다. 소아과·산부인과·가정의학과 등에 여의사가 집중되어 있고 성형외과·신경외과·정신과 등은 상대적으로 여의사가 귀하다. 체력차이나 환자의 선호 때문이라 해도 정신과와 성형외과에서 여의사가 각각 0.3, 0.5%를 차지한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법조계 여성들도 남성들이 구축해 온 ‘그들만의 리그’에서 생존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이제 막 로펌 변호사가 됐다는 A씨는 “법조계에는 남성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그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문화가 있고, 그에 적응해야 법조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그들의 문화가 강조하는 덕목은 사회성이다. 따라서 일은 잘하지만 술자리에 잘 가지 않는 여자 변호사는 자칫하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평가가 단순한 뒷담화로 끝나지 않고 여성의 향후 커리어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로펌에서 높은 직급의 변호사인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8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해야 한다. 이 때 인간관계는 중요한 요소로 파트너 심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더불어 A씨는 법조계가 남성의 언어중심으로 돼 있어 여성의 언어, 여성의 글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그녀는 자신이 연수원에서부터 남성적 글쓰기를 단련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남성적 문장을 베끼고 있는 여성이 오리지널인 남성의 문장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작고 사소한 부분처럼 보이지만 ‘언어’까지도 여성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다.관악의 ‘알파걸’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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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과대별 전임교원 남녀 누적 비율 |
이처럼 뿌리 깊은 여성차별이 존재하는 가운데, 관악에서 여성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2008년도 서울대학교 통계연보에 따르면 학사과정, 석사과정, 박사과정 순으로 여성의 비율은 각각 37%, 44%, 38%로 대체로 증가하나(2008년 등록생 기준) 뚜렷한 경향성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인문계열 대학은 박사로 가면서 여성비율이 높아지는 반면, 자연계열 대학들은 남성비율이 꾸준히 높다. 그러나 전임교수(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의 성비에 있어서는 인문·자연계열 모두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간호대와 생활대를 제외한 대학의 평균 전임교수 여성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박사과정의 60%가 여성인 경영대는 전체 17명의 교원 중 단 한명의 여자 부교수가 있을 뿐이고, 자연대는 133명 중 5명만이 여성이었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학생들이나 현재 전임교수과 박사과정 학생들의 시간차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러한 여성비율의 급감은 다소 충격적이다. 이렇게 많은 여성 박사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몇 년 전에 비해 상황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법대의 경우, 2003년까지는 여성 전임 교원이 단 한 명도 없었으나 지금은 6명으로 늘었다. 이러한 성과 뒤에는 교수들을 따라다니며 법대 여교수 채용에 힘썼던 2002년 당시 법대 학생회장 박정은(법학 99) 씨의 숨은 노력이 있다. 박 씨는 “법대 교수들의 분위기는 매우 우호적이었으나 일각에서는 ‘지금 교수를 할 만한 나이 또래의 여성 중에 서울대 법대를 나온 사람이 없다, 다른 학교 나온 사람을 교수로 뽑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취하셨던 분들도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여교수 채용 운동을 펼치게 됐던 동기에 대해 묻자, 박 씨는 “강의실에서 겪는 성차별을 토로하거나 단대에 역할모델로 삼을 만한 여성 교수가 필요했던 점, 젠더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법학과 그 강의에 대한 갈증”을 들었다. 이는 비단 법대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단순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 확보라는 측면 외에도 여학생의 수업권 보장이나 역할모델로서도 여교수 채용은 절실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교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채용엔 소극적이었던 교수들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배은경 교수는 “고급학위를 취득한 여성 학문후속세대들이 교수 채용에서 좌초하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며 과마다, 개인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예컨대 특정 전공이 여성 교수 채용에 대해 보수적일 수도 있고, 실제로 남성 교수 후보자들과 경쟁할만 한 커리어를 쌓은 여성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어 배 교수는 “그나마 공통적인 장애 요소를 찾자면 여성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결혼, 육아 등의 가정사적인 것이 아닐까”하고 귀띔했다. 사적 노동과 공적 노동의 이중 부담을 안고 가야하는 여성이 경제적 가치를 뒤늦게 얻게 되는 ‘학문’이라는 공적 노동을 위해 사적 노동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