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우먼으로 거듭나기 위한 고민+α

공적 노동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알파걸들.아직 알파걸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숙제가 남아 있다.‘결혼’이라는 관문을 거치면서 여성들은 다시 한번 여러 가지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된다.김신명숙(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씨는 “페미니스트가 된 것도 30대 중반, 결혼생활을 겪으면서였다”고 회고했다.김신명숙 씨에 따르면 결혼은 남녀에게 기존의 근대적 성역할을 그대로 부여한다.

공적 노동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알파걸들. 아직 알파걸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숙제가 남아 있다. ‘결혼’이라는 관문을 거치면서 여성들은 다시 한번 여러 가지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김신명숙(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씨는 “페미니스트가 된 것도 30대 중반, 결혼생활을 겪으면서였다”고 회고했다. 김신명숙 씨에 따르면 결혼은 남녀에게 기존의 근대적 성역할을 그대로 부여한다. 즉, 결혼은 성별에 따라 할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가부장적 사회 시스템이다. 기존 성역할의 해체로 등장한 알파걸에게 다시 근대적 성역할을 요구하는 결혼, 현실은 어떨까.

###IMG_0###
결혼생활이 여성운동 시작의 계기가 됐다는 김신명숙 씨.

일과 가정, 양날의 칼 위에 선 알파걸

앞서 살펴봤듯 여성에게는 항상 이중의 부담이 따른다. 공적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로서 일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근대적 성별분업 안에서 요구돼 온 가족내 돌봄노동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배은경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는 “이 두 가지의 노동은 절대 정합이 안 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항상 고민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육아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여성의 몫이다. 작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서울경기지역의 5세 미만 아동을 양육하는 1000가구를 대상으로 돌봄 서비스의 수요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9.5%가 아동의 어머니였으며 5명은 편부 가정의 아버지였다. 이는 곧 가정에 여성이 있으면 육아는 모두 여성의 책임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회계사 김지혜 씨는 “일반적으로 육아의 1차적 책임자는 ‘엄마’가 되는 것 같다. 아이가 먹을 것, 계절마다 입을 옷 등을 결정하는 주체가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사 분담의 경우는 작년 통계청이 조사한 결과 93.3%의 사람들이 부인만 가사를 도맡아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로 가사 분담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물음에서 부인이 주도한다고 대답한 경우는 남편 89.4%, 부인 89.5%, 그 중 부인이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답한 비율이 남성 33.4%, 여성 35.7%으로 여성의 부담이 여전히 존재함을 나타냈다. 이에 비해 남편이 가사를 주도한다는 응답은 각각 1.9%, 1.5%로 현저히 낮았다.

###IMG_1###
###IMG_2###
부부간 가사분담에 대한 견해와 현황.

이런 이중 부담은 사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김신명숙 씨는 “‘엄마니까’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금방 바꾸기란 쉽지 않다”며 “육아나 가사 관련한 광고를 눈여겨보면 모두 ‘엄마’를 겨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면 여성에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앞지르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인드라 누이의 경우 사람들이 그녀의 리더십은 주목하지만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해했던 것은 잘 알지 못했다”며 가정 내 문제가 비가시적이고 그만큼 풀기 어려움을 지적했다.가사와 육아를 하면서 직장의 업무까지 병행하는 것은 심리적 어려움도 따른다. 김지혜 씨는 “되도록 야근을 안하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굉장히 전투적으로 일한다”며 “이렇게 바쁘게 뛴다 해도 육아를 전담하는 사람에 비해선 부족하고 앞으로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하는 고민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IMG_3###
한 학습지 광고의 장면. 육아관련 광고는 ‘엄마’들을 타겟으로 할 때가 많다.

알파걸도 ‘엄마니까’

이런 상황에 처한 여성들을 위한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발전해 왔다. 여성부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정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육아휴직 제도는 기존에 자녀 생후 1년까지 이용할 수 있었지만 2008년 이후 출생하는 자녀부터 3년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의 생활 안정을 위해 육아휴직 급여를 20만원에서 50만원으로 확대 지원한다. 그러나 정작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꼭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김지혜 씨는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고 3개월의 출산휴가만 사용했다. 조금 더 쉬려고 했지만 일이 바빠 곧 돌아왔다”며 “육아휴직 관련법이 있지만 회사는 사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담당자가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례가 없었다”고 밝혔다.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쉬었다 하더라도 다시 업무로 복귀할 때가 수월하지만은 않다. 김 씨는 “휴가 기간이 짧았지만 자리로 돌아왔을 때 약간의 어려움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작가 김현희 씨는 “임신, 출산 때문에 4개월 정도 쉬었다 일했고, 애를 키우면서도 계속 일을 했다. 나 자신은 다를 바 없는데 주변에서는 ‘애엄마’ 라 감이 떨어진 것 같다, 회식도 참여하고 늦게까지 놀다 가라, 너무 애엄마 티 내는 것 아니냐, 이러다 도태된다, 그런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시간제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해 전일제 육아휴직 제도와 함께 선택의 폭을 넓혔지만 시행 초기라 그 영향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대부분의 여성들은 보육 시설보다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을 더 믿음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김 작가는 “친정엄마가 육아를 도와주신다. 예전에 드라마를 집필하다가 그즈음 같은 동네 아줌마가 ‘나도 애 봐주는 친정엄마만 있으면 이렇게 안 살았을 텐데’라는 부러움섞인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작가는 “현재 일하는 엄마들의 육아는 거의 가정과 가족 안에서 해결하고 있는데, 사실 사회에서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김 작가가 작년에 쓴 드라마 은 이런 경험들에서 나온 드라마다. 일하고 싶은 여자가 육아를 대신해 줄 ‘친정엄마’를 만드는 얘기다. 여성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려면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것은 아직까지 대부분 친정어머니 혹은 시어머니, 즉 같은 여자의 몫이다. 김신명숙 씨는 “모성 이데올로기가 너무나 굳건한 상황에서 정책적 지원으로 단기간에 의식까지 바뀌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IMG_4### 포스터스토리보드.” />
드라마 <워킹맘> 포스터스토리보드.

직장, 쉽게 떠나지만 쉽게 돌아올 순 없다

‘워킹맘’으로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지 않는 경우 결혼한 여성은 보통 직장을 쉬고 가정을 택하게 된다. 남녀의 연령대별 경제활동참가율을 비교할 때,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5세부터 30대까지 꾸준히 올라가 30대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지난 1월의 경우 92~93.7%에 해당하는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여성의 경우는 같은 30대에 이르러 이전까지 60%대였던 경제활동참가율이 50%대로 하락한다. 그리고 40대 이후에서야 이전의 비율을 회복한다. 이렇게 M자형 곡선이 드러나는 이유에 대해 배은경 교수는 “여성은 처음에 취업을 했다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일을 그만뒀다 일터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고, 남성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역U자형 곡선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역U자형 곡선을 그리는 경우에는 직장에서 이탈이 없으므로 승진 경험이나 경력 등이 쌓이지만, M자형 곡선에서와 같이 한번 직장을 벗어나면 경력이 단절되기 쉽다. 배 교수에 의하면, 이미 ‘커리어 트랙’에서 벗어난 여성이 다시 취직할 때는 자신이 예전에 취직했던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실제로 여성의 취업과 재취업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찾을 수 있는 직장은 거의 계약직이거나 아르바이트직이 많다. 직업의 종류도 급식조리사나 청소, 주방보조원, 경리사무원 등 단순직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학력 여성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배 교수는 “이런 여성 인적자원이 경력 단절을 통해 완전히 사장되기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IMG_5###
M자형곡선을 그리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M자형 곡선과 U자형 곡선 사이의 골은 여성친화적인 사회일수록 얕아진다. 여성친화적 사회에서는 여성도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들이 사회에 점점 많이 진출하고 있지만 M자형 곡선의 모양은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골의 위치만 뒤로 이동하고 있다. 20대 중반에 생기던 곡선의 골이 이제 30대에서 생기는 것이다. 배 교수는 “이 모습은 결국 사회는 안 바뀐 상태에서 여성들 개인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버티는 것이다. 결혼이나 출산을 뒤로 미루며 일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예전엔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면 지금은 아이가 학교 들어가고 나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뒷바라지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보충했다. 그리고 “북유럽 같은 경우는 여자도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기에 역U자 곡선을 그린다”고 소개했다. 이렇게 모두 일을 하면 사회적으로 돌봄 노동을 맡을 사람이 없어지는 ‘돌봄의 공백’ 현상이 일어난다. 배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정을 좀더 강화하기 위해 여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복지라든지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돌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그 제도의 예로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가정에서 미성년자를 보육하는 가정보육모의 활동이 활발한데, 가정보육모고용지원제도는 인증을 받은 보육모를 고용하게 함으로써 보육모의 질을 관리하고 음성적인 영업도 막는다. 가까운 미래, 결혼과 직장을 겪을 알파걸들에게배 교수는 “여성학 수업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15년 내지 30년 후에 자신의 삶이 어떨지 써보라고 하면 다들 일과 결혼생활 모두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어떻게 해서 이룰 수 있을 지에 대한 구체적 사고는 거의 없다”며 “구체적 계획 없이 그냥 ‘무조건 열심히’와 같은 막연한 사고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김신명숙 씨도 같은 생각이다. “현실을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며 특히 결혼과 관련해 서로 원하는 결혼생활이 뭔지 확인하고 아주 충분하게, 구체적으로 배우자와 합의하라고 충고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성들이 앞으로 닥칠 일들에 완벽히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신명숙 씨는 “다른 문제보다도 특히 여성 문제는 일상과 깊이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로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기 삶을 돌아보고, 고쳐나가며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알파걸’은 더 이상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학교를 벗어난 알파걸이 사회에 진출하고 결혼을 거치면서 겪는 문제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더욱이 알파걸이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며 ‘알파우먼’이 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 알파걸이 본인의 삶뿐 아니라 바깥의 현실에도 눈을 돌려볼 시점이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대한민국은 지금 ‘무늬만’ 알파걸 시대

Next Post

당신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나, 강력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