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나, 강력범죄

MBC 뉴스데스크의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보도.1월 30일,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이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으로 확대됐다.범인의 자백은 활자와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됐고, 사람들 위로는 살인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활자와 영상은 인면수심의 살인범을 발가벗겨 사회 한 가운데 던져놓고 이대로 떠나가려 하고 있다.언론을 통해 비친 활자와 영상이 그동안 우리에게 던져온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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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의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보도.

1월 30일,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이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으로 확대됐다. 범인의 자백은 활자와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됐고, 사람들 위로는 살인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활자와 영상은 인면수심의 살인범을 발가벗겨 사회 한 가운데 던져놓고 이대로 떠나가려 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비친 활자와 영상이 그동안 우리에게 던져온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가? ‘메시지’는 없고 ‘이미지’만 떠오르지는 않는가?뉴스엔 온통 살인마, ‘올인보도’ 1월 5일,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이 공개수사로 전환되면서 이 사건은 처음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CCTV에 여대생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장면이 공개됐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군포’, ‘여대생’과 같은 관련 키워드를 검색한 네티즌들이 무차별적으로 수사망에 오르기도 했다. 공개수사 전환 20일 만인 1월 25일 범인이 밝혀졌다. 곧이어 1월 30일, 그는 군포 여대생뿐 아니라 인근 지역 부녀자 실종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자신이라고 자백하면서 언론의 보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실제로 1월 30일 공중파 3사의 메인 뉴스인 KBS ‘9시 뉴스’는 전체 39건 가운데 15건, MBC ‘뉴스데스크’는 31건 가운데 11건, SBS ‘8시 뉴스’는 26건 가운데 12건을 보도함으로써 전체 분량의 절반가량을 할애해서 이 사건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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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여대생 살인범으로 검거된 1월 25일부터 검찰에 송치된 2월 3일까지, 공중파 3 사의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보도량이 크게 늘어났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던 지난달 3일까지도 보도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송지혜 모니터부장은 이를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보도는 범인이 다른 연쇄살인범과는 다른 점도 있었고, 2년간 미제로 남아있던 실종사건의 장본인이기 때문에 보도가 점차 증가했을 것”이라고 해석하면서도 “과거의 다른 연쇄살인사건 보도와 비교해볼 때 전체 보도에서 사건보도가 월등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방송사의 보도 행태를 ‘올인보도’라고 평가했다. 뉴스보도뿐만 아니라 방송사들의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현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속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뉴스와는 달리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특정 주제와 관련한 심층 보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21일까지 공중파 3사 다섯 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을 다루었으나, 이미 뉴스에 방영돼 중복되는 소재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내용에 있어 직접적 연관성이 있었던 KBS ‘미디어비평’은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뤘으나, MBC ‘시사매거진 2580’은 경찰의 범인 추적과정을, KBS ‘추적 60분’에서는 부녀자 실종 상황 재구성, 여죄 가능성 등을 따지는 등 기존 뉴스에서 보도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범죄보도의 필요악, 범행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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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부터 2월 4일까지 공중파 3사 메인뉴스의 보도 내용을 분류한 자료.

연쇄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보도에서 피의자의 범행 수법은 빠지지 않고 언급돼 왔다. 이번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건 보도 가운데 경찰 수사 상황과 수사 기법을 다룬 기사는 전체 기사의 절반인 78건이었고, 강 씨의 범행 동기와 수법을 다룬 기사는 34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그밖에 유가족 및 시민들의 반응을 담은 보도는 22건,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논의와 대책을 다룬 기사는 16건, 기타 보도가 1건 있었다. ‘호감형의 외모를 미끼로 호의동승을 유도하거나 노래방 도우미를 유인해 성폭행한 뒤 살해, 시체를 유기했다’는 범행 순서는 매일 반복적으로 보도됐다. 또한 강 씨가 피해자를 유인하기 위해 특정 복장과 차량을 사용하고, CCTV를 피해 다니는 등의 구체적인 범행과정이 제시됐다. 살해과정에서 사용된 도구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시체를 훼손했다는 점 역시 공중파 3사에서 기자의 멘트나 현장검증 등의 영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송지혜 모니터부장은 “이와 같이 범죄수법을 세밀한 부분까지 설명하는 것은 자칫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다”며 “언론이 섣부르게 모든 정보를 밝히는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백수진(간호 07) 씨 역시 “강 씨의 범행 수법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유치장 생활 등 신변잡기적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언론 보도 행태에 이의를 제기했다. 누구를 위한 범죄보도인가 ‘모방’의 문제는 강력범죄에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작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 안재환 씨의 자살과 그 이후 언론의 보도는 언론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이미 2004년에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는 공인일지라도 사건과 관련한 사진·장소·방법·경위를 밝히지 않고 사건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보도하라는 내용을 포함하는 을 발표했다. 이에 불구하고 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각종 매체가 앞다투어 안 씨의 자살방법과 자살현장 사진을 보도했다. 또한 안 씨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를 ‘카더라’ 통신을 통해 전했다. 심지어 ‘카더라’ 통신에서는 안 씨의 죽음이 고 최진실 씨와의 채무관계 때문이라는 내용까지 떠돌았다. 자살경위에 대한 추측성 보도가 난무하는 등 보도경쟁이 과열되어 시청자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보도 후 실제로 안 씨가 사용했던 방법과 매우 유사한 방법으로 자살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으며, 악성 루머에 시달리던 최 씨마저 자살했다. 이와 같이 모방범죄·모방자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행수법과 동기가 사건보도에서 자세하게 다뤄지고 있다. 결국 그것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방송과 신문 모두 광고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시청자나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 KBS 보도본부 이정록 기자는 “언론사, 특히 민영방송과 신문의 경우에는 광고가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뉴스일지라도 최대한 사람들을 자극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을 넣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시청자·독자를 유인하기 위해서 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뽑고 영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극적 보도의 폐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자극적 보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언론으로서 다양한 사회적 여론을 수렴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의 수사상황이나 수사방법, 추가 범죄에 대한 의혹, 범행수법과 동기 등 대부분의 보도는 경찰 측의 발표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다. 피의자의 얼굴공개, 범법자의 유전자 정보를 모아두는 유전자은행 등과 같은 (이차 담론적인) 현안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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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뒤늦게 언론재단이 주최한 ‘언론의 범죄 피의자 얼굴 공개와 인권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의 토론 모습.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의 얼굴과 신상 공개 과정은 단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진 30일, 몇몇 일간지에서 범인의 신상을 공개했고 그것이 순식간에 다른 신문과 방송매체로 옮아간 것이다. 먼저 신상을 공개했던 일간지들은 국민의 뜻이라며 그들의 보도를 합리화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특종을 터뜨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송지혜 모니터부장은 “피해자의 인권 보호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비록 피의자고 본인이 범행을 자백했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위해 사회적으로 심도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고 일부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다. 극악한 범죄로 인해 국민들이 매우 흥분한 상태임을 알면서도 일부 언론의 신상 공개 과정은 국민들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순식간에 이뤄졌다. 언론 보도가 공익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판단으로 흘러가기까지의 과정에 충분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이 있었는지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다.자극적 보도에서 벗어나, 의미있는 문제제기 필요 각 언론사에는 보도시 지켜야할 규칙인 보도준칙이 있다. 방송사 또한 방송강령이 있고 전체 언론사를 아우르는 언론보도윤리강령과 같은 최소한의 규율이 존재한다. 이들 규칙에는 범죄보도에 있어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정성을 제거하고 꼭 필요한 사실만을 다루며, 피의자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담겨있다. 그러나 앞서 다룬 고 안재환 씨의 경우 보도준칙이 사건 보도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방송강령과 언론보도윤리강령 등의 보도준칙이 문제들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송지혜 모니터부장은 “윤리강령을 보완한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과열 경쟁이 쉽게 사그라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윤리강령의 보완과 그 기능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그녀는 “피의자의 인권문제나 CCTV 설치와 같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언론이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강남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보도의 가이드라인을 세세하게 하게 세우는 것은 오히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며 절대적 잣대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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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정록 기자가 진정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선정적 보도로 한껏 자극받은 국민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치기 쉽다. 중요한 것은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냐 마냐가 아니라, 충분한 의견 교환을 바탕으로 하나의 합의점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기자와 언론이 할 역할이다. 이정록 기자는 “아직 (연쇄살인)사건이 마무리 선상에 있으니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문제가 사그라질 때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언론의 참된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무엇을 어떻게 보도하느냐는 전적으로 기자들에게 달린 일이다. 그러나 그 보도의 내용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그 방향은 분명하다. ‘이미지’만을 위한 보도가 아니라, ‘메시지’를 위해 ‘이미지’를 활용하는 보도를 통해 앞으로 언론 보도가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내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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