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중순, 2학기를 마치고 개성관광을 떠나기로 했던 A 씨. 들뜬 마음에 이것저것 여행갈 채비를 하던 11월 말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북한 측이 갑작스럽게 개성관광을 중단하고 개성공단을 축소한다는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밟을 북한 땅을 생각하며 설레던 그는 아쉬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선언이 이어지면서 TV와 신문에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북한의 동향을 호들갑스럽게 전한다. 하지만 A 씨의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도대체 내 주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은 A 씨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대북정책과 통일에 대한 서울대 학생들의 인식을 조사했다. |
| 이번 설문조사는 2월 5일부터 11일까지 총 7일간 서울대학교 학부생 25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설문은 학내 곳곳에서 이뤄졌으며 표본은 무작위로 선정했다. 오차한계는 신뢰도 95% 수준에서 ±6.16%다. |
이명박 정부 통일정책 “잘못됐다” 대다수
‘이명박 정부의 통일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75.4%의 학생들이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긍정적’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11.9%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 정책은 응답자의 주관적 이념성향과 관계없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밝힌 학생들의 62.8%가 현 정부의 통일 정책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중도(72.8%)와 진보(89.6%)로 갈수록 부적절한 정책이라는 응답이 다수였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장 박명규 교수(사회학과)는 “현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현재의 대북정책은 실제적 이익추구보다는 이념적 논쟁에 매몰돼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실용주의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핵심인데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는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는 요소가 없다”고 평가했다. 김병로 교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전임연구교수)는 “지난 정부처럼 북한에 끌려 다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불균형적인 남북관계는 시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햇볕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할 새로운 대안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결국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북한이 먼저 회담을 요구하며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소극적 자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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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개성공단 착공을 위한 첫 삽이 떠졌다. 개성공단은 남북경제협력의 이상적인 형태라 불리기까지 했으나 지금은 난항을 겪고 있다. |
한편 이명박 정부가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64.6%의 학생들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정책은 응답자의 주관적 이념성향이 진보에 가까울수록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진보 성향의 학생 중 79.3%가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중도 성향에서는 63.4%, 보수 성향은 50.0%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박명규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현 정부보다 많은 지지를 얻은 것에 대해 “지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중요한 국가적 목표로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경제성장 등 다른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초기에 통일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을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때문에 지난 정부가 이뤄놓은 남북화해 등의 성과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북한 관련사건에 대한 정부대응도 부적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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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최근 발생한 북한 관련사건에 대해 정부가 부적절하게 대처했다고 평가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의 정부 대응’은 75%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원정화 간첩사건, 개성공단 차단, 조평통의 남북 간 합의사항 무효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 역시 50% 이상의 학생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의 책임에 대해서는 49%가 ‘남북한 양 측의 잘못’이라고 답했다. ‘북한 측의 잘못’이라고 답한 비율은 34.3%였다. 관광객 개인의 잘못이라는 답변도 9.2%로 뒤를 이었다. 원정화 간첩사건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32.3%가 ‘보수언론 등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병로 교수는 “남북을 공정하게 다루는 매체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매도된 채 남한 측의 의견만 청취하게 되기 쉽다”며 언론의 불균형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문제확대에 이어 30.6%의 학생이 ‘북한의 대남공작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답했다. ‘정부 등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14.1%)’, ‘남한 안보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10.9%)’라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개성공단에 대한 평가로 ‘설립한 취지는 좋았으나 경제적 실효성이 적다’를 꼽은 응답자는 67.2%였다. ‘남북 간 경제협력의 이상적인 형태(18.3%)’라는 대답이 뒤를 이었다. 개성공단 문제는 북한과 관련된 다른 사안들에 비해 학내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히 논의되기도 했다. 52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했던 ‘바로잡기’ 선거운동본부(선본)과 ‘세잎클로버’ 선본은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에 대해 서로 상반된 입장을 표명했다. ‘바로잡기’ 선본은 “개성공단이 북의 노동력과 남측의 기술이 결합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며 정부 측에서도 개성공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세잎클로버’ 선본은 “남북경제협력은 북한의 노동자들에 대한 남한 자본과 북한 국가자본의 공동착취의 산물”이라며 개성공단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NLL선 폐기, 남북 간 모든 합의사항 무효화 등을 주장한 조평통의 성명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40.9%의 학생들은 ‘북한 내 정치·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외부로 관심을 돌리려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답한 학생들도 33.5%를 차지했다. 응답자들은 ‘오바마 당선 등 국제 정세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17.8%). 뚜렷하게 나뉜 통일 찬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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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사이에서 통일에 대한 입장은 반으로 갈렸다. ‘지금 통일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통일에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찬성(48%)과 반대(46%)가 팽팽히 맞섰다. 응답자의 주관적 이념에 따라서 통일에 대한 찬성 여부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자신의 이념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65%가 통일에 찬성했지만, 중도(48%)와 보수(38%)로 갈수록 찬성률이 낮아졌다. 통일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46.6%가 ‘전반적 국력의 증가’를 꼽았다. ‘같은 민족이므로 당연히 통일해야한다’는 대답이 두 번째를 차지했다(30.5%). ‘이산가족 상봉 등 개인의 행복 증가’라는 대답은 6.8%에 그쳤다. 이는 2008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의식조사 결과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통일평화연구소의 조사 결과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응답은 ‘같은 민족이므로 당연히 통일해야 한다’였다(57.9%). 그 다음으로 ‘한국이 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와 같은 경제적 측면이 17.1%를 차지했다. 이는 통일 문제에 있어 민족적 당위성보다는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우선으로 꼽았던 서울대 학생들과 차이를 보였다. 통일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로는 전체의 39.3%가 경제적인 비용 문제를 꼽았다. ‘양국 국민의 문화적, 사상적 이질성이 극심하므로’라는 응답은 29.5%로 두 번째였다. ‘양국을 포괄하는 정치체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 학생들은 19.6%였다. 통일, 관심은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해‘통일 정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48%의 학생들이 ‘잘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10%에 그쳤으며 ‘보통이다’라고 대답한 비율은 42%였다. 통일 및 통일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학생은 전체의 25%였다. ‘통일정책에 관심이 없다’고 대답한 비율도 25%로 같았다. ‘보통이다’라고 대답한 학생은 전체의 50%였다. 이념 성향으로 나눴을 때 통일정책에 대해 ‘관심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가장 큰 집단은 진보성향(34.4%)이었다. 보수(23%)와 중도성향(18%)이 그 뒤를 이었다. 통일평화연구소는 이를 “이념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북한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