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반길만한 것은 모르는 새에 오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란 뜻의 시나브로라는 말은 언제나 뒷맛이 씁쓸하다. 모든 나쁜 것이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 물가는 언제나 시나브로 오른다. 책장을 뒤지다가 어머니의 손때묻은 낡은 책을 본 적이 있다. 책의 가격은 2000원.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책값은 2만원이 훌쩍 넘는다. 물가는 언제나 시나브로 오른다! 사실 물가가 높은 것만 알고 있었다. 학내에서 생활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어서 더더욱 높은 물가를 체감하지 못했다. 고정코너[기자가 뛰어든 세상]에서 일주일을 5천원으로 하루를 버티던 자취생 기자의 기사는 읽기 쉬운 문체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모르는 사이’를 ‘아는 사이’로 바꿔 준 좋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곳곳에 실려 있는 돈 안들이고도 다양한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팁도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돈과 행복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물론 단발성 기사라는 점과 수필류(類) 기사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기왕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라는 거창한 주제를 잡은 이상 심도 있는 기획으로 나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돈을 쉽게 생각하거나, 혹은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 것은 과도한 관념론일 뿐이다. 돈은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서 사람들을 지배한다. 따라서 돈과 행복에 대한 접근은 실로 무수하면서도 중요하므로, 추후 특집으로 삼기를 기대한다.그 중에서도 ‘진보를 일구는 참목소리’라는 서울대저널의 정신과 맞도록 자본주의와 행복의 관계에 주목했으면 한다. 물론, 어떠한 경제체제 하에서도 돈과 행복은 밀접한 관련을 지녔다. ‘돈=행복’이라는 공식이 자본제 사회에서만 통용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로 발전한 시기와 돈이 모든 가치를 뒤로하고 제1의 목표로 등장한 시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풍요는 고통을 ‘특정화’ 혹은 ‘주변화’시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고통, 다시 말해 돈이 없음은 더 이상 나의 문제가 아니라 일면식 없는 제3세계의 일이다. 우리는 대면(對面)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도 상실해 버렸다. ‘인간은 그가 먹은 것의 총합’이라는 말을 비꼬아 본다면, ‘인간의 편리함은 그가 짓밟고 있는 것의 총합’이라는 명제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락함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부탁한다. 특히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를 전후해서 일각에서 등장한 ‘공정 무역’의 허와 실에 관한 보도였으며 좋겠다. 일상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기호품이면서도 그 출처는 우리의 일상에서 배제되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