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가능 2년의 명과 암

‘탈정치, 선복지, 다원주의’를 모토로 실천가능은 출발했다.사진은 실천가능 1기의 선거 리플렛.‘실천가능’의 타이틀을 가진 학생회가 막을 내렸다.‘탈정치 선복지’와 ‘다원주의’를 전면 내세운 학생회로서 주목을 받았지만, 지난 해 6.3 동맹휴업과 식권사태 등 많은 논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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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 선복지, 다원주의’를 모토로 실천가능은 출발했다. 사진은 실천가능 1기의 선거 리플렛.

‘실천가능’의 타이틀을 가진 학생회가 막을 내렸다. ‘탈정치 선복지’와 ‘다원주의’를 전면 내세운 학생회로서 주목을 받았지만, 지난 해 6.3 동맹휴업과 식권사태 등 많은 논란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탈정치를 내세우는 실천가능 학생회와 사회참여를 요구하는 기존 학생정치조직 간의 의견대립이 잦았고, 이는 총학생회운영위원회(총운위)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 결과 실천가능 2년 동안 총 4번의 전학대회에서, 총론이 3번 부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복지, 실천가능 2년의 원동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가능 2년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총학생회장 박진혁(경제 05) 씨는 복지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박 씨는 “실천가능이 2년 연속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감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복지를 잘해서라고 생각한다”고 평한다. 물론 여기에 다른 해석도 있다. 임대환(사회 03) 씨는 “이전까지 학내 운동 세력과 더불어 추상적인 정치에 대한 무기력함이 실천가능의 당선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실천가능 2년간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역시 복지의 측면에서 일어났다. 실천가능 1기의 경우 ‘17+1’, ‘강의평가’, ‘낙성대 셔틀’, ‘긴급구조셔틀’ 등의 공약이 실천됐다. 실천가능 2기에도 ‘중앙도서관 사물함 확충’, ‘무인택배보관함’ 등이 이행됐다. 박진혁 씨도 “복지 공약들이 이행이 되고, 그에 대한 인정과 호응이 있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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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실천가능 2기의 활동보고 자보다. 하지만 실천가능형 복지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또한 교육개선협의회(교개협)의 정상화와 본부와의 관계 개선도 실천가능 2년의 변화다. 실천가능 1기 때의 학생처장이었던 이정재 교수(조경시스템공학부)는 “학교와의 상호 협력은 꽤나 잘 됐다. 학생회와 본부가 상당히 균형있게 일을 했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천가능 2기에 들어서는 복지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학내 커뮤니티 포털 ‘스누라이프(www.snulife.com)’에는 ‘인터넷문화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실천가능 2기의 공약이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조운범(사회 07) 씨는 “실천가능 2기는 공약 이행률도 떨어졌고, 공약을 재탕하는 것도 많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실천가능 2기가 제시한 14개의 공약 중, ‘S/U 평가 확대’, ‘군복무 중 학점이수제’, ‘중앙전산원 2층 24시간 개방’ 등은 교개협에서 본부의 부정적인 입장으로 인해 제대로 된 협상조차 하지 못했다.실천가능의 복지는 ‘서비스센터 형’이다? 학생사회 일각에서는 실천가능의 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도 있었다. ‘서울대학생행진’의 미경(미학 05) 씨는 “실천가능의 경우 복지를 대리해주는 서비스센터의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학생 자치의 의미가 파괴됐다”고 논평한다. 임대환 씨도 “복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복지를 매개로 학생들과 소통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실천가능은 그렇지 못했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때문에 복지에 대한 논의의 공간이 확장되지도 못했고, 필요할 경우 적극적인 쟁취의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밖에 실천가능의 복지를 두고 지나치게 ‘돌려주기 형’의 복지라는 비판도 있었다. ‘야식사업’, ‘긴급구조셔틀’, ‘usb 메모리’ 등 학생회비를 재원으로 해서 ‘낸 만큼 돌려준다’식의 복지에 대한 비판이다.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의 구현(정치 06) 씨도 “총학생회비를 그대로 돌려주는 방식의 복지였다”고 비판한다. 일련의 비판에 대해 박진혁 씨는 “학생회에 대해 기대가 큰 사람보다 낮은 사람이 많다고 본다”며 “때문에 학생들이 보다 쉽게 받아들이고 갈등이 적은 의제부터 풀기 시작해야 했다”고 반박했다. 학생회의 필요성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서비스’의 측면도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다.실천가능은 정치를 싫어한다는 비판도 실천가능 2년 동안 가장 잡음이 많았던 것은 특히 ‘정치’와 ‘사회’에 관한 현안들이다. 특히 탈정치 선복지와 같은 ‘정치와 복지의 이분법’에 대해서는 학생운동권뿐 아니라 일반 학우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있었다. 이를 두고 “정치 의제 자체를 꺼리고 있다”는 해석도 제시됐다. 특히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동맹휴업 과정에서 이같은 불만은 일찌감치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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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휴업 당시 실천가능 총학의 역할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당시 이명박 정권 비판을 주 내용으로 하는 ‘5대 현안’에 대해서 51대 총학생회가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스누라이프에서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박진혁 씨는 “언론에서 과장되게 보도된 측면도 있다. 의제의 확산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최대한 가운데 서서 포용하려 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동맹휴업 당시 실천가능이 별달리 일을 하지도 않았다는 평도 있었다. 조운범 씨는 “학생의 총의를 받아서 나간다고 했지만, 그 이상으로 아무것도 안 했다”며 “반권 성향이 있다고 간주되던 곳이라 그런지, 사회적 일에 몸을 사렸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4.19추모행사를 여는 것에 대해 실천가능 총학은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서 학생운동권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실천가능 1기 때는 학내 4.19행사에 총학이 참여하지 않았다. 2기 때는 참여는 했으나 당시 4.19행사의 홍보 자보의 수와 총학 사업 보고에 관한 자보의 수가 현저히 차이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일기도 했다. 용산참사에 대한 성명서 발표에 대해서도 “굉장히 소극적이었다”고 당시 사회대 학생회장 구현 씨는 회고했다. 6.10 시국선언 때는 총운위에서 한 총학생회 집행부원이 “비권으로 당선된 우리가 왜 시국선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2번의 총투표는 무엇을 남겼나 실천가능의 탈정치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총투표라는 평가가 있다. 박진혁 씨도 “학생회가 성급하게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실천가능의 출발이었고, 때문에 총투표를 최상의 수단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특히 이전 총학들이 총운위와 같은 의결기관의 인준절차를 거쳐서 행동한 것조차 일반 학생들의 시각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의견이 “말뿐이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법인화 총투표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말이 많다. 임대환 씨는 “총투표는 의사수렴을 위한 절차다. 때문에 그 결과를 대변할 계획, 로드맵이 필요했는데 애초에 이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 한계다”고 말한다. 미경 씨도 “문제는 실천가능 총학이 이후의 계획 없이 총투표만 했다는 것이다”라며 실천가능 총학의 실천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총투표에 대한 실천가능의 자세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었다. 오준규(법학 08) 씨는 “중요한 사안을 취사선택했다고 본다. 투쟁적 사안에 대해서는 외면했고, 대안을 제시하기 싫은 의제는 골라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총학이 총투표 이외에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총의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평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박진혁 씨는 “2기에 들어서는 융통성 있게 하려고 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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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사회 일각에서는 탈정치, 선복지의 모토보다 무관심이 더 큰 추세가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사진은 법인화 총투표 당시의 중도터널 투표소.

‘식권가능’, ‘총론부결’로 신뢰에 타격 입어

그렇게 학생들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하겠다던 실천가능이었지만, 총학 간부의 식권 위조 사건으로 신뢰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특히 범인으로 지목된 총학 간부가 실천가능 1기 때부터 일을 해온 사실과 52대 총학의 미온한 대처는 사태를 키우기도 했다. 당시 일부 단과대에서는 실천가능 사퇴 요구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박진혁 씨는 “집행부 인선이 간략하게 진행 되기 마련이고, 한 사람의 비밀까지는 알기 힘들다”는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토로했다. 하지만 미경 씨는 “총학 집행부는 전학대회의 의결을 받는 존재”라며 식권 사건을 ‘감시와 승인의 부재’의 문제로 진단했다. 실천가능 1기 당시 인문대 학생회장으로 전학대회와 총운위에 참가한 미경 씨는 당시에 대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집행부에 이름이 올라와 있고 엘티도 갔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인지 평가할 최소한의 통로가 무너졌다”고 회고했다. 식권 사건 외에도 거듭된 총론 부결은 학생대표자와 총학 사이의 괴리를 야기하기도 했다. 총론은 한 학기 동안의 총학의 운영 향방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하지만 대의원들은 “실천가능의 모토를 교과서처럼 나열한 총론”이라는 불만을 3번의 전학대회에서 꾸준히 제기했다. 오준규 씨는 “총론은 최소한 당시 정세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학대회 이전에 대표자들과 소통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물론 실천가능의 불만도 적지 않다. 박진혁 씨는 “솔직히 전학대회에서 왜 총론을 논의하는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즉 선거를 통해 총학의 방향성을 인준 받은 것이라 볼 때, 전학대회에서의 총론 논의는 선거 때 부족했던 점을 구체화 시키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 박진혁 씨의 의견이다. 거듭된 총론의 부결에 대해 과/반(기층단위) 학생회의 붕괴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임대환 씨는 “단선으로 선출되는 과 학생회도 많고, 기층단위의 의견을 잘 수렴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층단위 학생회 붕괴’가 실천가능 2년 간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존재해, 총론 부결과 실천가능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또한 총론의 부결에도 총학의 운영에는 별다른 재제요소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표자와 총학의 괴리 문제는 이후 총학에게도 부담을 주는 숙제가 될 전망이다.학생사회, 실천가능을 넘어서 실천가능에 대해서는 호오가 갈린다.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식권 사건과 법인화 투쟁, 실천가능형 복지에 대해서 비판이 많지만 탈정치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삽질’과 실천가능의 탈정치성이 겹치면서 부정적 여론이 생겼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재연장 투표에서 드러난 것 처럼 학생사회의 무관심이 더 큰 추세인 것 같다는 비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실천가능뿐만 아니라 학생운동권은 소통을 강조하는 데는 한 입을 모았다. 특히 실천가능의 후신인 리본 선본에 대해서도 “실천가능에 비해 소통을 강조하며 진일보 했다”는 평가도 있다. 임대환 씨도 “실천가능이 시대적인 요구에 밀려서 변화했다”고 말한다. 탈정치 선복지의 모토를 넘어 학생사회의 변화에 대한 한 목소리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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