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총총, 관악에서 사라지는 마르크스경제학

김수행 전 교수의 퇴임 앞둔 작년 2학기부터 논란 시작돼 사회과학대학 전경.지난해 2학기부터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 채용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김수행 전 교수의 정년퇴임을 한 학기 앞둔 작년 2학기부터였다.지난 20년간 김 전 교수가 경제학부 교수 30여 명 가운데 유일하게 마르크스경제학을 강의해왔다.

김수행 전 교수의 퇴임 앞둔 작년 2학기부터 논란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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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대학 전경. 지난해 2학기부터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 채용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김수행 전 교수의 정년퇴임을 한 학기 앞둔 작년 2학기부터였다. 지난 20년간 김 전 교수가 경제학부 교수 30여 명 가운데 유일하게 마르크스경제학을 강의해왔다. 그가 2008년 2월에 퇴임하면 ‘정치경제학입문’이나 ‘현대마르크스경제학’ 등의 수업은 사라질 형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김 전 교수의 빈자리를 메울 신임교수를 어떤 세부전공에서 뽑을 지에 관심이 모아졌다.지난 해 8월 29일, 경제학부 인사기획위원회는 2008년 1학기에 뽑을 신임교수의 채용분야를 ‘경제학 일반’으로 발표했다. 당시 인사기획위원을 맡았던 이 모 교수는 9월 3일 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1학기부터 비경제학부 출신이나 타교 출신들을 3분의 1 이상 채워야 한다는 규정이 적용되는데, 마르크스경제학으로 채용 분야를 더욱 좁힌다면 실력 있는 교수를 뽑기 어렵다”며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로부터 이틀 뒤인 9월 5일, 경제학부 전체교수회의는 인사기획위의 발표를 원안 그대로 확정했다. 하지만 채용 분야를 ‘경제학 일반’으로 모호하게 공고함으로써 ‘김 전 교수의 후임 자리를 은근슬쩍 주류 경제학 교수로 채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학내외에서 ‘마르크스경제학 교수’ 채용 촉구 운동 이어져결국 지난 해 2학기에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 채용이 불발에 그치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박사과정 32명, 석사과정 38명 등 총 70명의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은 올해 2월 18일에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 채용을 바라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이라는 명의로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2월 25일에는 사회학과 대학원생, 2월 27일에는 정치학과를 포함한 여타 대학원생들도 연대 성명을 내며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한편 학외에서도 마르크스경제학 교수 채용을 촉구하는 선언이 이어졌다. 3월 11일에는 홍훈(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를 비롯한 전국의 경제학 교수 80명이 종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는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열린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3월 12일에는 221명의 교수 및 연구자들이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의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 채용 요구를 지지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진보적 학계의 공감을 얻고,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매체와 경향신문 등 일간지에도 채용촉구 움직임이 보도되면서 이는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됐다.



“마르크스경제학 전공교수 채용을 호소합니다!”
경제학부 대학원생 대자보를 통해 본 마르크스경제학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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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양한 학문의 섭렵은 진정한 학문적 발전의 기본 조건… 따라서 학문의 창의적 발전이 크게 저해될 것”
마르크스경제학은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유일한 경제학으로서 자체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에도 학문적 영감을 줄 수 있다. 발전경제학 등의 일부 분야는 더욱 그렇다. 젊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견해들을 접하지 못하고 사물의 양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학문적 편견과 자폐로 이어진다. 때문에 마르크스경제학의 퇴출은, 세계적 석학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서울대 경제학부에도 ‘자충수’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이다.

2. “학위 논문을 지도해 줄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가 없다는 것… 사실상 학문적인 사망선고”
대학원 후학들을 양성해야 하는 이유는 학문의 재생산과 발전 때문이다. 연구과정을 지도하고 논문을 심사하는 전공교수의 부재는 학문 발전은커녕 재생산마저 불가능하게 한다. 현재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은 겪는 혼란도 큰 문제다.

3. “학문의 수요자인 학생의 권리를 철저하게 무시… 가장 큰 당사자인 학생들은 부실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여전히 적지 않은 학생들이 마르크스경제학 수업을 듣고 있다. 2007년 2학기 ‘정치경제학입문’ 수업의 경우 수강생이 세 자릿 수를 기록했다. 2008년 1학기는 시간 강사를 초빙해 강의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 당장 2학기부터는 모든 과목이 폐강되어 이마저 들을 수 없게 됐다.

교수회의, ‘실력 부족’을 이유로

1학기 지원자 전원 탈락시켜

올해 3월 14일 교수회의는 신임교수의 채용분야를 ‘경제학 일반(정치경제학 포함)’으로 변경키로 합의한다. 학내외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정치경제학 포함)’이라는 문구가 추가된 것이다. 결국 4월 7일에 ‘2008년도 제1차 교수 채용 공고’가 나갔고, 접수마감 결과 지원자 가운데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가 3~4명 가량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실제로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가 2학기 신임교수로 채용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개월 후인 6월 11일, 교수회의는 신임교수를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또다시 마르크스경제학 교수 채용은 무산된 것이다.의 6월 13일자 보도(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채용 무산)에 따르면, 이영훈 당시 경제학부 학부장은 지원자들이 여러 측면에서 채용 기준에 미달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경제학부의 모 교수 역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수준이면 세계적 저널에 논문을 발표할 정도의 실력을 요구한다. 채용 과정 전반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기준이 높기 때문에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상적 채용 절차를 거쳤으나 실력 부족을 이유로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 채용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제학부가 마르크스경제학자를 뽑을 의도가 애초에 없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채용 호소하는 학생들을 문전박대… “애당초 뽑을 마음 있었나 의문”경제학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익명의 한 학생에 따르면, 후임 교수 채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 뜨거울 당시에, 뜻을 같이하는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이 교수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채용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은 몇 명씩 팀을 짜서 자료집을 직접 들고 교수실을 하나하나 방문해 후임교수 채용을 호소했다. 25명 정도의 교수들을 만났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었지만, 대다수 교수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느꼈다. 일부 교수는 심지어 대놓고 면박을 주며 나가라고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 이 학생은 간곡히 호소하는 후학들을 매몰차게 대하는 교수들을 접하며, 마르크스경제학 후임 교수 채용이 결국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일부 경제학부 교수들이 애당초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를 뽑을 생각이 전혀 없는 눈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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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학기 마르크스경제학 관련 수업에 쓰였던 교재. 얼마 뒤면 이들 교재를 수업에서 볼 수 없게 된다.

또다른 경제학부 대학원생은 ‘공개세미나’에 참석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역시 같은 추측을 내놨다. 공개세미나는 지원자들이 자신의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로, 현직교수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그 자리에서 지원자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며 지원자의 학문적 실력을 시험한다. “직접 목도한 공개 세미나의 수준은 너무나도 천박했다. ‘가치’가 무엇인지,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이 무엇인지와 같이, 학부 수준의 강의에서나 나올 법한 질문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심사위원으로 배석한 교수들의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이해 수준이 너무나 낮았다는 것이다. 지난 2월에 퇴임하고 현재는 성공회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수행 전 교수도 마르크스경제학 후임 교수 채용이 무산된 과정이 그리 석연치 않았다는 입장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1학기 교수 채용에는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마르크스경제학자들이 응모했다. 그런데도 (지원자들이 기준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은 것이 매우 유감이다.”이밖에도 경제학부 익명게시판이나 스누라이프 등에는 제도주의 경제학자로서 ‘뮈르달상’을 수상할 정도로 학계에서 인정받는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역시 경제학부 교수 임용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 일부 교수가 수업 시간에 주류에 편향된 발언을 했다는 사실 등에서 경제학부 교수들의 지적 오만을 문제삼고 있기도 하다. 비주류 경제학은 학술저널 자체가 소수이므로 주류와 똑같은 논문 게재 실적을 요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하지만 당시 경제학부 학부장으로서 채용과정을 총괄했던 이영훈 교수는 인터뷰를 연거푸 거절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는 이미 책임을 면한 사람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신임 학부장에게 물어보라”는 대답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올 2학기에는 마르크스경제학 강좌마저 모두 폐강… 학문 전통 사라지나게다가 올 2학기에는 시간강사들이 진행해 온 몇몇 마르크스경제학 강좌들마저 폐강이 확정됐다. 지난 7월 25일 경제학부 홈페이지에는 “여러 선생님들을 섭외하였으나 모든 분들께서 강의를 사양하시어 부득이 폐강하게 됐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이를 두고 시간강사들이 후임 교수 채용 무산에 항의하는 뜻에서 집단으로 수업 진행을 보이콧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그러나 1학기에 ‘현대마르크스경제학’ 수업을 강의했던 김창근 강사는 소문을 부인했다. 김 강사는 “마르크스경제학 후임 교수 채용이 무산된 것에 다들 실망한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강의는 다들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이지 집단 보이콧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간 서울대가 비판적 비주류 경제학계를 이끌어왔다. 이 점을 서울대 경제학부는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야 했고 채용에 세심한 배려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지도교수 한 명 없는 서울대 경제학부가 대학원 후학들을 양성하고 학문을 더욱 발전시킬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서울대 외의 공간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앞으로도 후임교수 채용은 쉽지 않을 듯지난 해 하반기부터 경제학부에서 신규 교수 채용이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안동현 교수가 사표를 냈고 지난 8월 말에 김신행 교수가 퇴임해 추가 결원이 생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학기에도 교수 채용 공고는 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 경제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는 오성환 교수는 과의 전화통화에서 “교수 채용은 경제학부 교수 전체가 함께 결정하는 사안이다. 9월 개강 이후 인사기획위와 교수회의가 열리는데, 지금으로선 어떻게 될지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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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신규 교수를 채용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경제학부 교수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오 교수는 사견임을 전제로 “현재 전공필수과목인 거시경제학 강좌가 제대로 개설되지 않고 있다. 학생 수요도 고려할 때 이 수업이 조금 더 중요하지 않느냐”면서 거시경제학에 집중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사회과학대학 전임교수 신규채용후보자 심사지침’에 따르면 학부장이 추천하는 인사 가운데 연구실적심사위원과 총괄연구업정심사위원이 선정된다. 또한 학부장이 교수회의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2학기 경제학부 신규 교수 채용에서도 마르크스경제학이 특별히 고려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더구나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교수회의에서 재직교수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므로, 현재 교수 28명 모두가 주류경제학자들인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마르크스경제학 후임교수 채용이 앞으로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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