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제51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실천가능 선본은 ‘남학생 휴게실(남휴) 설치’를 간판공약으로 걸고 당선됐다. 선거 당시 남휴는 서울대학교 내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었고 실천가능 선본은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모두가 남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선거 기간에 타선본이나 여성운동단위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스누라이프 게시판이나 학내에 자보 등을 통해 학생들 사이에서 남휴에 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7년 말, 관악을 달구었던 남학생휴게실 문제는 지금 어디까지 와있을까.학내에 남학생휴게실 설치할 공간 충분하지 않아우선 학내에 남휴를 설치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본부 측과 총학생회가 남휴에 관해 처음으로 논의한 것은 지난 1월 21일 열린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에서 였다. 이정재 학생처장은 “남휴는 본부가 실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본부 소관의 공간은 학생회관과 후생관을 비롯한 몇 개 공간밖에 없다. 따라서 각 단과대학 별로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총학생회 측은 “학생회관의 전반적인 공간문제 해결을 위해 동아리연합회(동연)과 함께 학생회관공간조정위원회(공간조정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공간조정위원회에서 남휴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간조정위원회는 현재 준비단계에 있으며 총학생회에서 2명, 동연에서 2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휴에 대해 동연 회장 석영(교육 04)씨는 “공간조정위원회에서 남휴는 시급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남휴에 관해선 어떤 논의도 진행되지 않았다. 학생회관은 현재 남휴가 설치될 자리 뿐 아니라 동아리의 자치 공간조차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휴의 필요성에 대해서 석영 씨는 “원칙을 세우는게 먼저다. 굳이 학생회관에 설치하고자 한다면 원칙에 부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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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1대 총학생회선거에서 실천가능 선본은 남학생휴게실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해 큰 관심을 받았다. |
각 단과대 건물에 남휴를 설치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총학생회 측은 “단대 차원의 논의를 점차 확대해 1학기 중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몇몇 단과대 간부와 접촉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 단대에 문의한 결과 농업생명과학대학을 제외한 모든 단대가 남휴를 설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장 큰 이유는 우선 설치할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단과대학에서 공간 부족을 토로했다. 사회과학대학 임현진 학장은 “현재 사회대 내의 동아리도 자치공간이 없어서 한 공간을 여러 동아리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휴 설치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남휴에 대한 논의는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인문대학의 경우는 신양정보학술관이 신축됨에도 불구하고 남휴는 설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남휴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공과대학 홍성걸 학생부학장은 “‘남성전용’이라는 개념 자체도 문제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낮잠 잘 공간까지 마련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있는 학생휴게실을 학생들 편의에 맞게 개편하는 것은 가능해도 남휴를 신설하는 것에는 반대”라고 말했다. 농생대는 예외적으로 남휴 설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철영 농생대 학생부학장은 “농생대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옴에 따라 공간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개강과 동시에 남휴에 대한 수요를 조사하고, 의견이 모아지면 설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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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학생회선거 정책간담회 자리에서도 남학생휴게실은 논쟁의 대상이었다 |
남휴의 정의와 앞으로 운영 방법도 불투명해
남학생휴게실이 어떤 공간인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것도 남휴의 설치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정재 학생처장은 “여학생휴게실(여휴)의 경우 여학생의 신체적 특징에 따라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남휴는 그 공간의 용도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총학생회 측은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남휴가 수면실의 기능을 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협의를 통해 다양한 활용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처장은 “용도가 결정된다고 해도 능사는 아니다. 설치하는 것보다 유지, 관리하는 일이 훨씬 힘들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휴게실을 이용할 때 일정부분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러한 방식도 검토 중이다”고 말하며 설치 이후의 운영방식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대 홍성걸 학생부학장도 “현재 학생들의 사회의식이 너무 낮다. 자기 것이 아니면 함부로 다루는 경향이 크다. 이는 공대안의 자치공간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남휴를 설치하기 이전에 총학생회에서는 학생들의 사회의식을 재고하는 운동을 먼저 펼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또한 이정재 학생처장은 “이번 총학생회는 남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차기 총학생회까지 그런 입장이 이어지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결국 올해가 지나면 책임은 학교에서 져야한다. 좀 더 면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성급하게 남휴를 설치하는 것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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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누라이프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남휴논쟁’. 남휴에 관한 논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학생사회에서도 남휴에 대한 논의 끊이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서도 남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총학생회 측은 “남휴의 필요성은 총학생회 선거 과정에서 증명됐다. 또, 1월 20일부터 1월 27일까지 설문조사를 했는데 여기에서도 남휴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현재 학교에 충분한 휴게공간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의 설문조사는 정보화 포털, 총학게시판, 스누라이프를 통해서 진행됐으며 설문에는 345명의 학생이 응답했다. 설문은 단대를 구분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남휴에 관한 의견은 남학생만이 응답하도록 하되 자율에 맡겼다. 이에 대해 박태성 (통계학과) 교수는 “설문결과가 학생 전체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우선 표본이 적으며, 또 단대구별이나 성별이 설문의 결과에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따라서 총학생회가 실시한 설문의 결과를 신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휴에 대한 반대 의견은 꾸준히 제시돼 왔다. 학내에서 여성운동을 해온 한 학생은 “남휴가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휴와 남휴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문제다. 여휴는 생리라는 여성의 신체적 특수성을 고려한 공간이고, 여성이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휴는 이런 맥락에서 쟁취된 공간인데, ‘남학생도 휴게실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여휴가 생겨난 맥락을 훼손시킬 수 있다. 또 여성의 권리와 남성의 권리가 대립적인 것처럼 논쟁이 흘러가는 것도 문제다”고 남휴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한 사회대 학생은 “학내 자치단위의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실제로 사회대는 3개의 동아리가 한 공간을 사용한다. 남휴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학생들이 원하니까 해 주겠다’는 식의 사고는 잘못됐다”고 말했다.남휴는 행정적인 부분에서도, 학내의 여론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학내에 남학생휴게실을 설치하는 것이 ‘실천가능’한지의 논쟁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남학생휴게실이 학생사회에 던지는 근본적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던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