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어느 술집에서 ‘XX학교 동문회’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선배로 보이는 사람이 한 손으로 술을 따르고 있고,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그가 따라주는 술을 받고 있다. 감히 선배 얼굴을 후배 주제에 빤히 쳐다볼 수 없다는 것이 이 동문회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차례 술을 받아 마신 후배는 결국 메스꺼운 속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로 향한다. 잠시 후 한결 편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에게 선배는 다시 동일한 방법으로 술을 강요한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입 벙긋 못하는 후배는 속으로 생각한다. “2년만 지나봐라.”
| ###IMG_0### |
| 술 강권은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현상이다. 대학이라고 이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
이 이야기에서 20여 년 전 대학가의 풍경을 떠올렸다면 그건 오산이다. 2008년 한국의 대학가에도 버젓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대학 문화의 핵심에는 아직도 술이 있다. 술자리에선 자연 술을 강권하고, 게임에서 진 사람에게 ‘쇼’ 같은 벌칙을 강요하는 일이 잦다. 주로 이런 강제는 ‘연령 차’로부터 비롯된다. 나이 많은 사람은 단순히 나이만을 이유로 나이 어린 사람의 인신을 제약하는 이런 ‘연령주의’는 음주 문화뿐만 아니라 대학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도처에 깔린 연령주의 보통 학번 혹은 학년과 중첩되기 마련인 나이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다니는 학생들 간의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게 형성된 질서는 이로 인해 폭력 사태나 심각한 인권 유린이 발생하지 않는 한, 크게 위협받지 않고 계속된다. 이런 문화는 대학만의 특유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초중고 시절부터 학년 간의 엄격한 구분과 상급생에 대한 복종을 주입받으며 연장자 혹은 상급생에게 순종하는 태도를 자연스레 몸에 익히게 된다. 이는 사회에서도 반복된다. 연공서열제 하에서 연소자에 대한 상급자이자 연장자의 권한은 당연시되고 또 유지된다. 그 결과 ‘복종 이데올로기’는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물론 한국의 모든 남성들이 지는 병역의 의무는 이 기제의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일제가 선물한 지뢰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연령주의의 기원은 근대 교육제도가 도입된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당시 ‘개화된’ 국민의 사상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 천황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학교 규율의 파시즘을 연구하는 오성철 교수(청주교대)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사범학교에서는 천황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민을 창출하기 위해 서구에서 도입한 근대적 형식의 학교 교육을 군대와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선배가 후배를 군대식으로 통제하는 구조에서 길러진 교사들은 일선 학교에 나가 선배가 후배를 통제하는 학교 규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제도가 식민지 기에 우리나라에도 도입됐다.
| ###IMG_1### |
| 일제 강점기 당시 도입된 근대 교육의 모습 |
경성사범학교 역시 ‘선배, 즉 고학년이 후배를 통제하고 심지어 체벌을 가할 수 있는 규율체제’였고, 심지어 조선인 고학년이 일본인 저학년에게 체벌을 가할 수도 있었다. 이는 식민지 내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일본 근대 학교에서 연령에 따른 서열 지배 구조가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를 입증하는 사례다. 한번 형성된 규율 체계는 해방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박노자 교수(오슬로대)는 “1960년대 이후에 사회가 많이 병영화됨에 따라 학교 분위기를 예비역 출신의 보수적인 남성교사들이 주도했고 그 결과 연령주의가 강화됐다”고 주장했다. 일제 군사문화의 유산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 주도의 동원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연령주의의 재생산에 기여하였다. 왜곡된 ‘장유유서’ 연령주의의 기원은 유교적 전통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장유유서’가 상징하는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어 연소자에 대한 연장자의 권력 행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한상 강사(철학과)는 “유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유교의 근간에 위치한 ‘삼강오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에 따르면 삼강과 오륜은 사실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른 뉘앙스를 내포한 질서 의식이다. 삼강이 중국의 사상가 동중서가 활동한 한대(漢代) 이래 유교 사회의 근본 윤리로서 군신 간의 위계적 관계 등 관계의 종속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는 반면, 오륜은 송대(宋代)의 주희에 의해 부각된 이래 부자 간의 상호적 관계 등 보다 평등한 내용을 담았다. 삼강의 이런 권력적 특징은 원형이 제시되었던 나 의 시기에는 유효했을지 몰라도, 이미 민주주의의 원리가 보편적 윤리 규범으로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 여전히 필요할지는 의문이다.
| ###IMG_2### |
| “연령주의의 책임을 유교에게 모두 돌릴 수는 없지만, 분명 어느 정도 원인을 제공한 측면은 있다.” 철학과 김한상 강사 |
의 저자 김경일 교수(상명대 중어중문학과)는 “유교의 핵심 코드 충과 효”로 인한 연령주의 현상을 “정치, 학계, 기업, 군대 등 한국 사회 어디서든지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주로 나이든 사내에게 권력이 쏠리도록 만들어져 있어 이들은 핍박 받은 세대에게 자신들의 특권을 대물림하는 장치를 통해 이 구조가 흔들리지 않도록”하고 있다며 문제를 지적했고, 이 현상의 피해자들이 현재의 고통에 대한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며 고통을 감내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한 김 교수는 연령주의가 “개인적인 차원 뿐 아니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억압한다”는 점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단 한번 누리게 되는 삶 속에서의 자유와 창의의 힘이 눈치에 의해 꺾이게 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문화적 낙태’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물론 살인미수가 더 많긴 하지만” 한번 “상처 난 감정은 아물기가 쉽지 않다”며 고민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우리 사회의 지나친 ‘낙관’을 비판했다. 한편 유가 윤리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송영배 교수(철학과)는 “물론 전근대적인 사유에는 인간의 평등보다는 사회적 차별을 용인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부장적 질서를 인정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나 서양 중세에도 나타났다”며 “그런 사유도 근대적 평등사상으로 변모, 발전할 수 있기에 유교 속에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차별관 역시 앞으로는 지양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연령주의 현상은 유교 사상의 핵심이기보다는 인간 차별을 용인했던 구시대의 악습”이라고 덧붙였다.나이가 어려도 인권은 보장받아야 한다 익명의 K대 태권도학과생은 체육대학 자체의 분위기가 권위적인 탓도 있지만, 학생들 중 다수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며 겪는 선배들의 폭력에 길들여져 있어 물리적 폭력이 사라지질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의 한 학생 역시 “고등학교 운동부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과 보다는 분명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편”이라 밝혔다. 그리고 그는 “기본적으로 선후배 사이는 나이보다는 학번 위주로 선배들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하고, 존대말과 반말 구분이 엄격하다”고 덧붙였다. 앞의 사례처럼 여전히 선배가 후배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은 빈번하다. 그러나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의 체대에서는 최근 몇년 간 자정 노력이 이뤄져 과거에 비해 물리적 폭력의 빈도가 줄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여전히 선배가 후배에게 ‘학번’을 근거로 가하는 언어적 폭력은 남아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대학생들은 그런 일이 있긴 하지만 물리적 폭력도 아니고 개인적 문제인 경우가 많기에 크게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입을 모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인권 운동을 해온 유윤종 (사회 06) 씨는 “이미 고교 때부터 교사나 동아리 선배 등에게 당해 왔기에 그 자체를 내면화”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당해오다 보니 문제라고 의식하지 못하거나 아예 이에 대한 생각을 멈추어 항의나 저항을 할 생각도 못한다는 것이다.
| ###IMG_3### |
| 이렇게 새내기와 선배들이 함께 있는 과/반방 안에서 연령주의는 언어 폭력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
연령주의는 그로 인해 연소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유윤종 씨는 인권 침해가 단순히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명령에 따르라는 식의 분위기 상의 폭력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임을 강조했다. 희망의 씨앗, 여성주의 실제로 오늘날 대학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거의 없다. 서울대에서는 인문대나 사회과학대 등을 중심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선배가 술을 강권한다거나 일방적으로 말을 놓는 행위 등이 후배 같은 ‘상대적 약자’로 하여금 분위기 상 거부하지 못하고 선배의 뜻에 따르게 만들어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는 점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된 것이다. 특히, 주로 속칭 ‘새맞이 기간’인 1학년 2월과 3월 동안 선배들을 통해 이런 담론을 접하게 된 새내기들에게 연령주의의 해체는 낯설면서도 ‘해방의 담론’으로 다가간다. 대학에 들어온 뒤 동문회나 동아리, 과/반 등지에서 선배들과 보다 편하게 관계를 맺는 것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학생들 사이에는 이런 측면에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유윤종 씨도 “과/반에서는 여성주의가 그나마 활성화 되어 있기 때문인지 ‘연령주의’적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사회대 전체에서 여성주의적인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기에 “사회대 일부 선배들은 존대를 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 일방적으로 말을 놓아 약간 불쾌하기도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이제는 졸업할 때 사회에 만연해 있고, 대학에서는 특히 ‘학번주의’라는 유사품과 결합되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연령주의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일제가 식민 지배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이 땅에 들여온 군사주의적 근대 교육제도와 삼강 같은 시대착오적인 이념에서 탈피하지 못한 유교적 전통이 20세기 후반 한국의 군사 정권 하에서 혼합되어 만들어진 구조이자 현상이 바로 연령주의이다. 연령주의를 특정 개인이나 소수의 노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이미 문화 깊숙히 침투해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비판 담론을 제공하는 여성주의는 많은 사람들의 ‘일부 극렬 페미니스트들의 여성상위주의’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결연히 연령주의에 졸업을 선언할 때다. 연령주의에 대한 비판이 전혀 제기조차 안된 척박한 토양에서 이뤄진 선배들의 선구자적 행동은 결국 학교와 사회를 이만큼 바꾸어 냈다. 그러나 아직도 연령주의의 망령은 한국을 떠돌고 있다. 그래서 달걀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라도 연령주의를 졸업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구조를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인류의 가장 큰 진보가 민주주의의 쟁취였다면, 이제 다시 한번 또 하나의 진보를 욕심낼 순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