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에서 채식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물론 그동안 채식주의자들의 ‘먹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 6월부터 학생회관 식당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음미대·후생관 식당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연두부를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식당에서 제공되는 반찬은 여전히 육류 위주며 채식 식단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이 ‘관악에서 채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학생 식당이 어떻게 개선되기를 바라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육류 위주 식단 속 채식주의자들의 선택권은 어디에
| ###IMG_0### |
| 제육볶음과 영계백숙으로 이루어진 자하연의 8월 14일 중식. 채식주의자들은 여기서 발걸음을 돌려야만 한다. |
채식주의자들은 관악 캠퍼스 내 학생식당의 식단이 전반적으로 육류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수연(중문 04) 씨는 “한 번은 식당 3곳을 돌아다녔는데 세 곳 모두 주 반찬이 육류뿐이어서 결국 음식을 주문해 먹은 적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육류 위주의 식단이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채식주의자들의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박예선(사회교육 05) 씨는 “학생회관은 식단이 3가지라 그 중 하나쯤은 먹을 만한 게 있다. 하지만 한 식당에서 제공되는 식단 모두에 고기가 들어가 있는 경우는 선택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실제로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 웹사이트(www.snuco.com)에 게시된 최근 4주간(7월 30일~8월 26일)의 식단표를 바탕으로 생협 직영 학생식당(제1, 2, 3, 5식당, 제2공학관, 대학원기숙사식당)이 제공하는 식단의 주 반찬 중 육류가 차지하는 비율을 잠정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식단 이름에서 육류임을 알 수 있는 경우(제육볶음, 쇠고기떡말이 등)는 전체 564 가지의 식단 중 총 223 가지(39.5%)에 이르렀다. 채식주의자들 중 어패류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감안해 육류와 어패류를 합해 분석하면 총 363 가지(64.3 %)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한 식당에서 제공되는 식단 모두가 주 반찬으로 육류를 제공하는 비율은 총 49 가지(17.1%), 여기에 어패류를 포함하면 총 131 가지(45.8%)였다.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찌개에 고기가 들어가고 육수를 사용한다는 점, 볶음밥에 다진고기나 햄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학생식당에서 제공되는 식단 중 육류의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학생회관 식당에서는 매주 수요일을 ‘채식인의 날’로 정하고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메뉴는 다양하지 못한 편이다. 새싹비빔밥, 두부김치, 열무비빔밥, 콩국수 등 몇 가지 메뉴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채식주의자들도 채식 제공에는 긍정적이면서도 식단에 대해서 완전히 만족하고 있지는 못하다. 나무(별명) 씨는 “채식 식단은 너무 한정돼 있다. ‘채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못 벗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예선 씨 역시 “식단이 다양하지 못하다”며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채식 식단이 비(非)채식 식단에 비해 부실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길수(국사 02) 씨는 “수요일이라 학생회관 식당에 갔는데 콩국수 같은 게 나올 때는 좀 섭섭하다. 맛있긴 하지만 한 끼 식사로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라며 채식 식단이 하나의 ‘별미’ 같은 가벼운 식사로 취급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채식은 왜 하나요?
채식주의자들은 ‘동물권 보호’를 외친다는 이유로 종종 ‘과도한 동물 애호가’라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채식주의는 동물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들이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인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이라는 게 채식주의의 기본적인 전제다. 여기에 페미니즘은 육식과 가부장제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폭력으로부터 동물과 여성의 해방을 더불어 추구하기도 한다. 채식주의는 평화운동과도 맞닿아 있는데, 길수 씨는 “인간이 먹을 곡물이 사료작물로 쓰이면서 저개발국가 사람들은 기아에 시달린다. 사료용 작물만을 재배해 수출하면서 정작 자신들 나라의 국민들은 굶게 만드는 부패한 정부도 있다. 육식 문화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권, 환경, 정치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자신이 하고 있는 평화 운동과 채식의 접점을 찾고 있다. |
학생식당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들은 가장 먼저 반찬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연 씨는 “반찬을 선택할 수 있는 음미대식당, 후생관식당 같은 카페테리아식 식당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예선 씨 역시 “(세트메뉴를 먹을 때는) 제값 주고 밥을 먹는 데 고기를 안 먹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손해가 크다”며 자신이 먹을 반찬을 스스로 선택해 먹을 때 “나의 주체성이 살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식재료에 대한 정보 공개도 요구된다. 길수 씨는 “다시다는 어떤 것을 넣었는지, 육수를 사용했는지 등의 자세한 정보를 표시하면 식단을 선택하기 훨씬 편해질 것”이라며 채식주의자들이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식재료의 첨가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예산 부족, 인력 부족’…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할 순 없는가
| ###IMG_2### |
| 카페테리아식으로 운영되는 후생관 식당. 채식주의자들은 카페테리아 식 식당의 확충을 원하지만 운영비 문제로 인해 확충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그러나 단체급식의 구조로 운영되는 학생식당의 여건 상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배려는 쉽지 않다. 식재료를 대량으로 납품받고 한 번에 수백 명 정도가 먹을 분량을 조리해야 하기에 특별한 식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맞춤 제공’하기는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생협 식당담당과 관계자는 “채식주의자들을 고려해 식단을 짜기에는 비용상 어려움이 크다”고 밝혔다. 현재 학생회관에서 제공되는 채식 식단 조차 준비한 식수의 70%, 500~700명 정도만 이용해 손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납품받을 수 있는 식재료의 범위 내에서 조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채식 메뉴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며 설명했다. 학생식단의 메뉴 역시 “육류와 채소의 비율을 균형 있게 맞추고자 노력하지만, 학생들의 보편적 식성에 맞추려면 육류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카페테리아식 식당 확충 역시 어렵다. “카페테리아식 식당은 다른 식당보다 반찬을 더 많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식재료비와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것. 실제로 학기 중에는 카페테리아식으로 운영되는 음미대 식당도 방학 중에는 세트메뉴를 제공한다.그렇다면 채식주의자들은 더 이상의 권리를 요구할 수도, 보장받을 수도 없는 것일까. 길수 씨는 학생회관의 채식 식단을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존 메뉴의 재료에 간단한 변화를 주면 괜찮은 채식 식단을 만들 수 있다. 마파두부에 고기 대신 야채를 넣으면 채식주의자들이 아니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은가?” 채식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재료 표기 역시 확대될 수 있다. 현재 학생회관 식당에서는 입구에 전시된 각 식단마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의 포함 여부를 그림과 영문으로 표기해 놓고 있다. 특정 고기를 꺼리는 외국인들에 대한 배려다. 고기의 종류만을 표기하는 것은 다소 부족하긴 하나, 이러한 노력을 다른 식당으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나무 씨는 “누구든지 자기가 먹는 게 어디서 왔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며 식재료 표기는 소비자 전체의 알 권리와도 연결된다고 강조했다.채식주의자들의 권리를 넘어 모든 이들의 ‘행복하게 먹을 권리’로동국대학교 문화관의 원향 교직원식당에서는 주 3회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이 식당에서는 동물성 젓갈을 사용하지 않은 김치와 자체적으로 제조한 두부를 사용하는 등 완전한 채식 식단을 추구하고 있다. 교직원 식당이지만 학생들도 이용 가능하다. 변성혜 영양사는 “불교재단을 기반으로 한 학교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기존의 식단이 육류에 편중됐다는 문제의식이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있어왔다”고 채식 식단을 운영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원향 교직원식당의 채식 식단 역시 서울대 학생회관처럼 운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원래는 주 5회 제공되던 것이 주 3회로 축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변성혜 영양사는 “학내에는 채식주의자들을 비롯해 각종 건강상의 문제로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기호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이들의 먹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학교 전체적으로 육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던 채소류의 비중을 늘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은 비단 채식주의자들 뿐만이 아니다. 건강 때문에,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인도나 이슬람권 출신의 외국인 유학생들의 경우에는 종교적인 이유가 두드러진다. 채식주의자 한별(별명) 씨는 “채식주의자들을 넘어서 음식에 대해 민감한 요구를 해야 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식주의자들의 ‘먹을 권리’는 그들 뿐만이 아니라 전체 소비자들의 ‘먹을 권리’로 확장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