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의 밥상에 드리운 세계화의 그림자

‘세계화’라는 단어가 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사람들의 인식 속에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세계화가 구체적인 일상의 영역에도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그에 따라 우리의 식생활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관악도 예외가 될 수 없다.이에 『서울대저널』에서는 관악의 식생활이 얼마나 ‘세계화’ 됐는지 알아 보고자 한다.

‘세계화’라는 단어가 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세계화가 구체적인 일상의 영역에도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의 식생활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관악도 예외가 될 수 없다.이에 『서울대저널』에서는 관악의 식생활이 얼마나 ‘세계화’ 됐는지 알아 보고자 한다. 생활협동조합의 협조를 받아 11월 13일에 제공된 학생식당 메뉴와 스낵코너 메뉴의 원산지 정보를 파악했다. 생협에서 가공식품의 원산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경우에는 해당 업체에 직접 문의해 알아 냈다. 이를 토대로 가상의 인물 SNU군의 하루 생활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해 봤다. 밥의 경우에는 쌀을, 반찬이나 국의 경우에는 주재료를 조사 대상으로 삼고 식재료별로 원산지를 파악했다. 가공식품의 경우에는 국내산 원재료를 사용한 경우에는 국내 가공공장을, 수입산 원재료가 주로 사용된 경우에는 해당 재료의 수입국을 원산지로 간주했다. 국내산이지만 정확한 생산지가 불분명한 일부 채소류의 경우에는 다른 국내산 식재료 운반거리의 평균치를 적용했다. 원산지가 국내인 경우에는 해당 시군구에서 서울까지의 직선거리, 외국인 경우에는 해당국 수도로부터 서울까지의 직선거리를 파악한 후 이를 모두 더하는 방식으로 계산했다.(구글어스 기준)이는 영국의 학자 Tim Lang이 고안한 ‘푸드 마일리지’의 개념을 패러디한 것이다. 푸드 마일리지는 음식물의 중량에 운반 거리를 곱한 수치로(t×km), 푸드 마일리지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먼 거리로부터 운송돼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음식물의 중량을 무시하고 단순히 운송 거리만을 고려해 통계를 냈다.SNU군의 일상을 통해 추적한 관악의 식생활오늘도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서 일어난 SNU군. 어제 밤늦게까지 밀린 리포트를 썼더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영 개운치 않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은 뒤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뛰어가니 수업 시작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평소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던 SNU군은 어쩔 수 없이 자하벅스(자하연 스낵코너)로 향한다. 그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와플과 오렌지주스를 사 들고 강의실로 향한다.와플 : ㄷ사의 밀가루로 만들어진다. 가공공장은 국내에 있지만 주재료인 밀의 원산지는 미국과 호주다.(11,177km와 8,376km의 평균, 9,776km)오렌지주스 : D사의 제품이다. 역시 국내의 가공공장에서 만들어지나 브라질산 오렌지가 주재료다.(17,520km)전공수업 두 개를 연강으로 들었더니 그만 지쳐 축 늘어진 SNU군. 오늘은 동아리 점모가 있는 날이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점모 장소인 음미대 식당으로 향한다. 무엇보다 음미대 식당은 원하는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그가 오늘 고른 메뉴는 쌀밥, 시금치된장국, 쇠고기양송이볶음, 연두부 그리고 김치. 반찬을 몇 개 고르지 않은 것 같은데 가격은 거의 3,000원이 나왔다. 그는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계산대에서 밥값을 지불한다. 그래도 친구들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으니 행복하다.쌀밥 : 밥을 짓는 데 쓰이는 쌀은 국내산 일반미. 생협 소속 식당은 충남 당진과 전남 해남에서 생산된 쌀로 밥을 짓는다.(80km와 334km의 평균, 207km)시금치된장국 : 시금치는 국내산이지만 정확한 산지를 알 수 없다.(170km, 국내산 식재료 평균거리 적용) 된장은 ㅈ사의 국내 가공공장에 생산되나 주재료인 콩은 미국산이다.(11,177km)소고기양송이볶음 : 소고기는 호주산이다.(8,376km) 양송이는 국내산이다.(170km, 국내산 식재료 평균거리 적용)연두부 : 두부는 S사의 경기 군포공장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두부를 만드는 데 쓰이는 주재료인 콩은 100% 미국산이다.(11,177km)김치 : 생협 소속 식당에서 제공하는 김치는 ㄷ사의 충북 진천공장에서 제조된다.(86km) 김치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부재료는 모두 국내산이므로 제조공장을 기준으로 한다.오후 수업까지 마저 마치고 과방에서 시간을 때우던 SNU군. 웬 일인지 과방에는 개미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다. 엠피쓰리에 저장해 놓은 음악을 들으며 소일하던 그에게 동문 선배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학관에서 저녁 먹자!”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학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선배가 사준 밥은 학관 A메뉴. 오늘은 메뉴가 괜찮은 편이다. 쌀밥에 시래기된장국, 장어탕수육, 미나리나물, 소시지볶음, 깍두기가 오늘의 식단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저녁 시간을 보냈다.쌀밥 : 역시 충남 당진과 전남 해남에서 생산된 쌀로 밥이 지어졌다. (80km와 334km의 평균거리 207km)시래기된장국 : 시래기는 국내산이다.(170km, 국내산 식재료 평균거리 적용) 된장은 역시 ㅈ사의 제품으로 주재료인 콩은 미국산이다.(11,177km)장어탕수육 : 냉동장어는 중국산이다.(955km) 양송이는 국내산이다.(170km, 국내산 평균거리 적용)미나리생채 : 미나리는 국내산이다.(170km, 국내산 식재료 평균거리 적용) 고춧가루 역시 국내산으로, 충북괴산의 한 공장으로 생산된 것이다.(110km)소시지볶음 : 소시지의 주재료인 돈육은 국내산이며, ㄷ사의 부산공장에서 제조됐다.(327km) 케첩은 ㅊ사의 국내 공장에서 제조됐으나, 주원료인 토마토페이스트 등이 중국산이므로 수입산으로 간주한다.(955km) 깍두기 : 김치와 동일하게 충북 진천에서 제조됐다.(86km)하루 섭취한 음식물에 쓰인 식재료의 운반 거리 합은 무려 72,986kmSNU군이 하루 동안 섭취한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된 식재료들의 운반 거리를 모두 합치면 무려 72,986km에 달한다. 적도를 기준으로 한 지구 한 바퀴의 둘레가 약 40,000km임을 고려하면, 약 지구 두 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다. 이 중에서 국내산 식재료의 운반 거리는 불과 1,873km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수입산 식품의 운반 거리에 해당한다. 전체 식재료의 운반 거리에서 수입산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최정이(생협 식당사업과장) 씨는 “대부분의 신선식품 식재료를 국내산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소고기의 경우에는 가격 때문에 수입산을 사용하고 있으며, 냉동수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공식품의 경우에는 정확한 원산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풍토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는 게 인체에 바람직의 저자 안병수 씨는 서울대학교 학생식당 메뉴의 수입 농산물 의존도가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호한 것도 아니라며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가공식품도 적잖이 쓰이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공식품은 푸드 마일리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 통계에서도 가공식품의 푸드 마일리지는 신선식품보다 4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그는 가공식품이 첨가물과 보존료의 사용, 트랜스지방산의 과다 함유 등으로 인해 인체에 유해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안 씨는 “이러한 결과를 서울대에만 한정하지 말고 우리 사회 전체로 확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나라의 수입 농산물 사용 전반에 대한 문제점들도 지적했다. 그는 “푸드 마일리지는 중량에 운반거리를 곱한 수치로 계산되기 때문에 푸드 마일리지가 낮다면 신토불이 식생활을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수치가 높으면 그만큼 먼 곳에서 운반된 수입 농산물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우리 인체는 오랜 기간 동안 발붙이고 살아 왔던 풍토에 적응돼 있기 때문에, 조상 대대로 먹어 왔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급적 바람직하며, 어쩔 수 없이 수입 농산물을 섭취하더라도 그 비중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동양 사람들 중에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효소가 충분한 사람이 적다는 사실을 인체가 풍토에 적응해 있다는 점의 근거로 들기도 했다.수입 농산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지구 환경에도 바람직하지 않아안 씨는 수입 농산물을 많이 섭취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구 환경과도 연관 지어 설명했다. 먼 곳으로부터 농산물을 들여옴으로써 불필요한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것이다. 국제 무역 과정에서 선박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교토의정서의 규제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을 만큼, 기본적인 통계에조차 집계되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칼로리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영국인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브로콜리를 섭취함으로써 얻는 에너지의 100배가 넘는 열량의 화석 에너지가 운반 과정에서 소모된다.물론 가격경쟁력 등의 이유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입농산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수입 농산물에 계속적으로 의존한다면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수입 농산물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 우리 나라의 푸드 마일리지 수치는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2위를 기록할 정도다. 안 씨는 “카겔과 몬산토 등의 다국적 농산물 유통회사가 세계 식량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거대기업일 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을 좌우할 수도 있는 강력한 압력단체다. 이들 메이저 기업에 의해 지구촌의 식량이 수급되고 있는 현실이 심화된다면 결국은 우리의 먹거리 선택권이 말살되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며 수입농산물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한미 FTA의 체결이 예상되는 등 자유무역이 더욱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 우리 먹거리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현실에 대한 고민이 한번 쯤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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