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적인 캠퍼스를 조성하기 위해 추진됐던 ‘걷고 싶은 거리’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다. 완성된 구간이 늘어나면서 이번 공사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 중 하나로 공사 과정에서 장애 학생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걷고 싶은 거리’ 공사를 통해 나무 계단이 신설된 자하연 옆은 본래 경사로여서 장애 학생들도 휠체어를 통해 이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경사길이 없어지고 계단이 설치되면서 장애 학생들은 이동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서 이의를 제기한 상황이다. 서울대입구역에 도착했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나는 지체장애 때문에 오늘도 학교를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매일 무료로 탈 수 있는 셔틀버스를 포기한 채 힘겹게 택시를 잡는 일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강의실까지의 여정이 걱정될 뿐이다.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힘겹게 휠체어를 끌고 집을 나선다. 항상 등교길을 도와주는 친구가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언제나처럼 택시기사들은 나를 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친구 혼자라면 택시를 쉽게 잡았을텐데, 나로 인해 늦어지는 등교시간이 매번 미안할 따름이다. 40분 만에 힘들게 택시를 잡고 본부 앞에 내려 장애인 셔틀버스를 타고 수업이 있는 8동 대형강의실로 향한다” (가상상황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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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장애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셔틀버스, 장애 학생들도 타고 싶다 |
2005년 1월 27일 공포된 ‘교통 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르면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즉, ‘이동권’은 교통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부분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서울대학교에 접근하는데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통학시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지하철, 버스, 택시 등이다. 이 중 가장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의 경우 대부분의 지하철역에 리프트가 설치되지 않아 장애 학생들의 접근이 불가하다. 버스의 경우 역시 휠체어를 타고 계단에 오를 수 없어 장애 학생들은 이용이 어렵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상버스의 도입이 제안되지만 워낙 고가라 확대되기 어렵다. 마지막 이동권인 택시마저도 장애 학생을 승차시키기를 꺼려하는 운전수들 때문에 쉽게 이용할 수 없다. 설사 이용이 가능하더라도 매번 비싼 택시비를 물고 통학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철, 버스, 택시의 이용이 힘들다는 것은 결국 이들의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강의실에 도착했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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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 학생들의 이동을 막는 28동 대형강의실 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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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 학생들의 이동을 배려한 26동 대형강의실 경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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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 탄 곰돌이- 계단식으로 구성된 83동 대형강의실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을 요구하는 퍼포먼스 |
서울대학교는 산지라는 지형적 특수성 때문에 계단과 경사로가 많다. 따라서 장애 학생들은 강의실 이동 시 많은 불편을 겪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대형강의실은 계단식 좌석이 대부분이라 장애 학생들은 맨 앞줄과 맨 뒷줄밖에 앉을 수 없다. 8동 대형강의실은 이런 강의실 내 이동권 뿐만 아니라 강의실 문 밖에 설치된 반 계단 때문에 접근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장애 학생들은 대부분 타인의 도움으로 반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에 대해 장애인권연대사업팀 문영민(화학 04)씨는 “나의 안전을 타인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은 최근 8, 28, 83동에서 특별한 행사를 했다. 휠체어를 탄 곰인형을 강의실에 설치하여 장애 학생들이 강의실 내에서 겪는 불편함을 알리고자 했다. 비단 강의실 내에서만이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고층 강의실이나 장애인셔틀버스가 진입할 수 없는 건물 강의실의 이동권 등 전반적으로 강의실 이동권 문제가 심각하다. 수업이 끝났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모든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향하려는 나에게 친구가 다가와 오늘 녹두에서 개강파티가 있다고 말한다. 자꾸 참석을 피하는 나에게 이번만큼은 빠지지 말라며 나를 이끌고 택시로 향하는 친구. 이런 배려가 고맙지만 나는 버스를 타고 녹두로 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하다. 녹두에 도착해 술집이 2층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술집에 도착한 나는 오랜만에 갖는 이런 술자리가 즐겁기는 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이 분위기를 깨고 친구에게 화장실에 가자고 도움을 청하기가 더 부담스러워진다.”(가상상황 C) |
학생회관에는 식당, 서점, 문구점, 라운지, 여자휴게실, 동아리실 등이 설치되어 서울대학생들의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장애 학생들도 이런 공간에서 필요를 충족할 권리가 있지만 실제로 수많은 계단으로 인해 이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문영민씨는 “학생회관 1층과 1.5층까지만 접근이 가능한 장애 학생들에게 2층 이상의 다른 시설들은 무의미한 공간이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라운지도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라운지에 접근할 수 없다는 물리적 제약뿐만 아니라 공연에 동참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문화적 소외감을 가져올 수 있다. 학생회관 못지않게 신입생 환영회, 개강파티 및 종강파티 등 다양한 행사가 녹두거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녹두거리는 실질적 이동권역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 학생들에게는 접근조차 어렵고, 만약 힘들게 녹두 거리에 접근하더라도 2층이나 지하에 위치한 수많은 음식점에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동권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은 “서울시 지하철이 장애인 엘리베이터 설치를 외면했다”고 말하며 장애인 이동권에 무관심한 서울시를 질타했다. 지하철 관련,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서울시는 역 중에서 46곳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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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에서 활동 중인 박경석씨 |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 이와는 전혀 다르게 한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가능함이 드러났다. 이번 사건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제고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서울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강의실 이동의 어려움과 장애인 편의 시설의 미흡함을 안고 있는 서울대학교 역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장애인 편의 시설 설치 확대를 통한 물리적 해결이 시급하다. 이에 대해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회의 대표 박경석씨는 “이런 물리적 해결의 밑바탕에는 장애인 문제를 비장애인과의 ‘통합의 관점’에서 실현하려는 사회 구성원간의 정신적 합의가 깔려있어야 한다. 물론 장애인 분리 정책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결국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고착시키고 재생산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통합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노인,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할 수 있는 ‘Universal Design’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장애 학생 이동권 보장에 있어서도 이런 통합의 관점이 유지되어, 비장애인 학생이 함께 할 수 있는 캠퍼스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