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녹두거리(녹두)에는 많은 호프집이 있다. 그리고 각 호프집에는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화장실은 위생문제, 남녀공용문제, 변기 수와 공간문제 등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이로 인해 ‘화장실 사용’이라는 기본적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으며, 열악한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특정인만이 녹두 호프집의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실정이다. 이는 여러 장애물을 극복해야만 승리에 다다를 수 있는 게임과 흡사하다. 본 기사는 이러한 녹두의 화장실, 특히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호프집 화장실 20여 곳의 실태를 조사하여 녹두화장실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특별히, 극복해야 만하는 화장실의 열악한 상황이 게임의 장애물과 흡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화장실 문제를 게임에 비유하여 이야기하고자한다. 그리고 녹두화장실의 여러 문제점들은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살펴봤다. 녹두화장실 사용 GAME : 녹두화장실에 들어갈 자, 누구인가.게임 소개 본 ‘녹두화장실 사용 게임’은 서울대 주변 신림동 일대 호프집, 흔히 ‘녹두거리’라 불리는 일대의 호프집 화장실을 주 배경으로 진행된다. 각 레벨에 존재하는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화장실에 입실, 화장실을 사용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게임 시 유의사항 본 게임에 사용되는 화장실은 대부분 악취, 공간부족, 변기부족, 입구의 협소함 등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20개 중 16개는 남녀공용화장실이다. 따라서 소변을 오래 참을 수 없는 사람과 악취를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은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며, 장애인과 여성의 경우에도 게임에서 매우 불리하다. GAME, START. Level 1. 화장실에 입실하기 위해서 우선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본 게임에 등장하는 화장실 중 상당수는 화장실이라는 표시가 없다. 따라서 반복게임, 즉 경험을 통해 화장실의 위치를 추측해내야만 한다. 호프집 주인이나 친구의 조언을 얻을 수도 있겠다. 화장실의 위치를 알아냈다면 자신이 그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화장실의 협소한 출입구를 통과할 수 있을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본 게임 화장실의 경우 1층에 위치했을지라도 평균 3~4계단이 있으며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는 화장실 출입구는 없기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 등 신체가 불편한 사람은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운 좋게 도와줄 사람을 만나 살아남을 수도 있다. Level 2. 화장실을 발견하고 출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화장실에 입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의사항에도 밝혔듯이 비좁은 공간과 악취를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본 게임에서 설정한 화장실의 대부분은 좁고 심한 악취가 난다. 또한 화장실 한 곳 당 좌변기 약 1.6개, 남성용 소변기 약 1.2개로 변기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인내력을 가진 사람만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photo1photo2photo3 Level 3. 악취와 변기 수 부족으로 인한 오랜기다림을 이겨내고 화장실에 들어서려는 순간, 게임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바로 80%이상 배치된 남녀공용화장실이라는 벽이다. 호프집에서 얼큰히 취한 남녀는 화장실 속에서 의도치 않게 마주칠 수도 있다. 녹두의 화장실에 입실하려면 그 ‘잘못된 만남’을 감당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사용하는 동안 남성이 화장실 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기에 사용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남성의 경우 화장실 출입문을 잠근 상태로 화장실을 사용하지만, 여성은 화장실 내부의 문만 잠그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혹 여성이 외부 출입문을 잠그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 술취한 남성의 문 발길질과 압박을 이겨낼 자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남녀의 의도치 않은 화장실 안 마주침에서, 여성은 더 당황하기 쉽다. 폐쇄된 공간 속에 남성과 같이 있는 여성은 성범죄라는 측면에서 공포감에 휩싸이기 쉽다. 여성은 화장실에 들어서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따라서 Level 3에서 많은 여성들이 게임을 포기한다. Level 4. Level 1,2,3을 돌파하고 화장실에 입실한 사람들은 화장실 사용이라는 게임의 마지막 관문을 맞는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는 않다. 특히 남녀의 마주침이라는 큰 장애물을 견뎌낸 여성일지라도 일부는 게임에서 도태된다. 생리중인 여성의 경우 휴지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휴지가 배치된 화장실은 스무 곳 중 3곳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희미한 전등 불빛 도 참가자들, 특히 생리중인 여성이 이겨내야 할 큰 장애물이다. 또한 빡빡한 내부문고리를 채울 수 있는 힘도 부가적으로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화장실 사용을 마친 이들에게 때때로 BONUS가 있기도 하다. 바로 ‘손을 씻을 수 있는 물’이 제공되는 것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화장실 중, 스무 곳 중 3곳의 꼴로 세면대 및 수도꼭지가 없긴 하지만 대부분의 곳에 간이식으로나마 손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누구나 BONUS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BONUS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일부의 사람들 뿐 이다. 세면대는 대부분 남성변기와 붙어있기 때문에 남성이 변기를 사용하고 있을 때도 사용할 수 있는 남성이나 그것에 개의치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여성들, 혹은 남성이 없을 때만 사용가능하다. You Win!1,2,3,4단계에 걸친 녹두화장실의 장애물을 견뎌냈는가? 당신은 이 게임에서 승리하였다. 우선 악취를 이겨내고 적은 변기 수라는 한계를 이겨낸 것을 축하한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더욱 축하한다. 당신이 장애인이라면, 축하를 넘어 존경을 표한다. photo4photo5photo6 게임을 만든 사람들 : 누가 녹두화장실의 사용권을 결정하는가.지금까지 꾸며본 녹두화장실 사용 게임은 다른 여타 게임과는 달리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또한 불필요하며 불공평하다. 이 유쾌하지 못한 게임을 하지 않고 모두가 화장실을 사용할 수는 없는가, 도대체 이 게임은 누가 만들었는가? 불행히도 근시일 내에 게임이 중지될 가능성은 없다. 녹두의 N호프 주인은 “화장실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남녀공용, 변기 부족 등의 문제는 나도 느끼는 바이다. 그러나 건물 내 화장실 공간 자체가 턱없이 비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많다”고 말한다. 또한 녹두 대부분의 건물에는 일정규모이상의 공간과 변기시설 등을 요구하는 ‘공중화장실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도 적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는 “국가.지방자치단체에서 세운 공중화장실과는 달리 다중화장실의 경우 3000㎡(907평)이상의 대형건물에만 법안이 마련되어있다”고 지적한다. 행정자치부 관계자 역시 “지방자치단체가 소규모 건물에 남녀 화장실을 분리해서 짓도록 권고 할 수는 있지만, 시설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녹두거리 호프집은 ‘화장실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화장실의 질은 전적으로 건물설립자의 양심에 달려있다. 그러나 건축주나 허가권자들이 대부분 남성이기에 남녀 공용 화장실의 문제점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등 현실은 매우 어둡다. 법안이 부재하는 상황 속에서 건물설립자는 이익추구라는 현실적 목표를 위해, 부족한 인식 때문에, 유쾌하지 못한 ‘화장실 사용 게임’의 제작자가 된다. 그 결과 녹두거리 호프집의 고객들은 지극히 기본적인 ‘화장실 사용’도 못한다. 녹두에서는 화장실도 게임에서 이긴 소수의 강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