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 학교엔 왜 일문과가 없지?” “자존심 싸움인가봐.동경대도 한국문학과가 없다고 하던데.” “선배, 일본어 강의 듣고 싶은데, 강의가 왜 하나밖에 없죠?” “글쎄..그냥 언어교육원에 가서 듣는 수밖에.” “상실의 시대, 슬램덩크, 러브레터, SMAP…” 요즘의 젊은 세대라면 아마 선호하는 일본 문화장르나 구체적인 작품 이름 한 두 개쯤은 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엔 왜 일문과가 없지?” “자존심 싸움인가봐. 동경대도 한국문학과가 없다고 하던데.” “선배, 일본어 강의 듣고 싶은데, 강의가 왜 하나밖에 없죠?” “글쎄..그냥 언어교육원에 가서 듣는 수밖에.” “상실의 시대, 슬램덩크, 러브레터, SMAP…” 요즘의 젊은 세대라면 아마 선호하는 일본 문화장르나 구체적인 작품 이름 한 두 개쯤은 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애니메이션, 영화, 만화, 소설, 음악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대중문화는 우리에게 친숙해진 지 오래다. 젊은이들이 일본의 대중문화에 반해 일본어를 배우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예전부터 일본어는 꾸준히 인기가 있었지만,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일본어 열풍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서울대는 일본어에 관한한 무풍지대인 듯 하다. 그 단적인 예가,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양 강좌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 일본어 무풍지대 photo12004년 2학기 학부 수강편람을 살펴보면 중국 관련 강좌는 31과목, 67개의 수업이 개설되어 있다. 반면, 일본 관련 교양강좌는 3과목, 수업은 총 4개(고급일본어 2개, 일본문화의 이해 1개, 일본 근대국가의 성립과 전개 1개)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강좌 개수로는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다.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던 이승주 씨(인문 04)는 “지금도 일본어를 배우고 싶지만 개설된 유일한 강좌의 경우 내가 듣기에는 수준이 너무 높다. 학교 당국에서는 왜 교양 강좌에 일본어 강좌를 다양한 수준별로 개설하지 않는지 궁금하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또한 고급일본어 강좌를 담당하는 강사 김영민 씨는 수강생들 간의 실력편차가 큰 관계로 독해위주의 강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일본어 관련 강좌가 많이 부족한 까닭은 일본 관련 학과가 부재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일본 관련 학과 개설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관련 학과 설치, 험난한 여정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한 민족적 반감이 있었고, 해방 직후인1946년 개교 이래 서울대가 일본 관련 교과목 편성이나 연구 과정 개설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2004년 현재 일본관련 연구는 7년 전, 국제지역원에서 대학원 협동과정으로 둔 일본연구과정과 정치, 경제와 같은 각 분야별 연구가 전부이다) 이후 90년대 초반부터 일본 관련 학과(일어일문학과, 일본어교육과 등) 신설 논의가 이어지고, 2000년 6월, 이기준 총장이 하스미 시게히코 동경대 총장과 협약을 맺음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학문적 교류가 활발해질 가능성을 보였다. 그 협약이란 서울대에 일본학 연구과정을, 동경대에 한국학 연구과정을 개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것은 그 동안의 소극적이었던 태도에서 벗어나 양국의 학문 교류에의 물꼬를 튼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2001년 3월, 이기준 총장이 도쿄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고 돌아온 후 학과 개설 논의 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됐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곳도 있었다. 당시 교수협의회 회장 신용하 교수(사회학과)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 시정되지 않는 한 관련학과 설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신교수는 서울대가 일문과를 먼저 만들거나, 우리는 학과를 만들고 도쿄대는 관련과목만 개설한다면 민족을 대표하는 국립대로서 있을 수 없는 굴욕이라며 자존심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기도 했다. 서울대는 포화상태, 과 신설은 이제 그만? 결국 협약을 구체적인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 해 9월, 서울대는 학장회의 및 학사평의회를 통해 사범대 일어교육과 신설방침을 확정해 교육부에 제출했지만 교육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국립대 발전 방안에 따라 학과 신설을 금지한다는 원칙과 더불어 당시 일본어 교사의 공급 과잉 상태를 우려해 계획안에 반대한 것이었다. 사범대와 마찬가지로, 인문대 역시 일어일문학과 설치를 하지 않은 이유 중 행정적인 부분이 큰 몫을 차지한다. 권두환 인문대학장은 “대학 별 특성화가 중요시 되는 현시점에 서울대가 모든 과를 다 갖고 있어야 한다는 백화점식 사고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의 대학에 120여개의 일본어(일문)학과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서울대에 신설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학과개설이 아니라 대학원 과정에서 일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견해이다. 한편, 인문대의 불안정한 학부체제 하에서는 일문과 설치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불문과 모 교수는 지금의 학부체제에서 일문과가 신설된다면 비인기 학과들의 생존이 더욱 어렵게 될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이렇게 일본어 관련 학과 신설 문제는 단순히 민족 감정뿐 아니라 행정적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렇지 않아도 포화 상태인 서울대가 새로운 과를 개설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국립대로서의 역할 photo2그렇다면 감정상의 이유, 행정상의 부담 등등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서울대의 일본 관련 학과 설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일본학회 임원인 최관 교수(고려대 일어일문학과)는 두 가지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나라에 있어서 일본은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일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발전이나 통일을 위해서라도 주변 강대국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과의 설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국립대로서의 서울대가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전국 대학에 일본 관련 학과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최관 교수의 견해이다.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변국에 대한 연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주변강대국 사이에 위치에 있고 그 영향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을 심도 있게 연구할 단체나 대학이 필요한데, 서울대가 앞장을 서야 합니다. 사립대가 하기에는 한계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다방면에서 체계적으로 서울대가 연구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위와 같은 견해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여전히 일본 관련 학과 설치에 소극적이다. 복잡한 행정적 원칙과 절차를 이유로 학과 신설이 어렵다 치더라도 고등학교 제 2외국어로 지정되어 일정 정도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일본어 강좌는 왜 단 하나에 불과한 것일까. 단순히 행정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아가기에 아직은 껄끄러운 민족적 앙금 혹은 자존심이 남아있기 때문인가. 혹여 그렇다면 학문적 필요성과 민족감정은 별개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은 일본에 대한 이해를 위해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할 때인 것이다. 물론 과 신설이 그 나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나 분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고 어문과가 있는 스페인. 중국, 독일의 경우 일본에 비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관련 많은 강좌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학과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가 그것의 중요성과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 합의는 되어 있다는 상징일 것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중요시한다면 일본 관련 학과 설치에 대한 진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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