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 다시 서울대 3대 바보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언제 누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현 서울대의 사회적 위상과 고립성 그리고 대학문화의 부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대학문화라는 큰 주제를 다루기 버겁다면, 이를 집적으로 잘 보여줄 대동제에 대해 생각해보는게 어떨까? 대동제는 어떤 변화를 겪어왔고, 현재 학우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특히 46대 총학생회하에서의 대동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03년 봄 대동제는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까? 대동제는 대학문화의 축소 모형 대동제의 탄생은 80년대 초반이다. 당시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이데올로기적 선전이 가득한 관제축제가 성행하였으며, 대동제는 이에 대한 반향으로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84년 2학기에 발족된 학생회를 중심으로 대동제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의 대동제는 독재 정권에 대한 투쟁의 장이였다. 이러한 대동제의 성격은, 정치가 문화에 깊숙히 관여하던 당시 시대 상황과 맞물려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대동제의 성격과 학우들의 문화 사이에 괴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 후 대동제로 대표될 수 있는 ‘대학문화’는 사회 저항의 의미와 함께 ‘대안 문화’ 형성의 장으로 이야기 되어왔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대동제의 위상과 의미는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한 가지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장 많이 이야기 되어온 요소를 들자면 ‘정치성의 약화’ – ‘정치적 사안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 퇴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즉 정치와 문화가 이전까지는 하나로 묶일 수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이것이 분리되었다. 이에따라 다소 정치색이 깃든 것으로 보이는 그동안의 대학문화가 외면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학문화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동제의 부재를 가져왔다. 대동제는 80년대 정치적 배경을 안고 출생 대동제는 바뀌어야 한다. -서울대의 3대 바보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씁쓸하게 웃는다. 그리고 대동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매년 대두된다. ‘소통으로서’, ‘쉼으로서’, ‘주체로서’, ‘문화적 실험의 장르로서’ 혹은 또 다른 무엇으로서, 학우들은 대동제가 일정한 제 역할을 다 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과연 대동제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학내 언론들은 대동제가 정치적 문제를 뛰어넘어 다양한 현실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에 초점을 맞출 것을 권고한다. 즉 ‘다양성’의 추구야말로, 대동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다양성’의 추구라는 주제 하에 특히 현재 준비되고 있는 03년 봄 대동제는 주목할만하다. 유래없이 총학이 아닌 일정한 독립성을 담보받은 위원회(축제하는 사람들, 이하 축하사 www.freecahl.com/festival2003)를 통해 축제가 준비되고 있으며, 축하사에서는 ‘참여’와 그에 수반될 수 밖에 없는 ‘다양함’의 공존을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축하사에서 준비하는 대동제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측면에서 기존의 대동제와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먼저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대동제를 준비하는 주체를 따로 ‘모집’ 한 것이다. 이는 총학이 ‘주체’하는 대동제에 일반 학우들이 ‘참여’한다는 의식을 벗어나, 학우 개개인이 대동제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봄 대동제와 가을 대동제의 성격 분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 대동제에서 ‘축제’의 성격을 띄는 것들을 봄 대동제로 몰았다면, 가을 대동제는 ‘학술제’의 성격을 갖출 것으로 이야기된다. 이 두 가지 성격이 분리되면, 각각의 특성에 맞게 대동제 일정이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각 자치 단위의 참여를 가능한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존에 활동을 하던 단위들을 이끌어내어, 대동제 기간에 행사를 하게 하고, 축하사에서 일정의 자금을 대주거나 일정을 같이 잡는 형태이다. 현재 총학생회 사이트에 올라온 대동제 제안서에 따르면, 각종 공연 동아리와 더불어, SAFE, 어울놀이, 몽환, 레이브 동아리, 스타크래프트 동아리, SNUnow 등등이 대동제에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계획서이기 때문에 실행과정에서 차이가 생길 수는 있다.) ‘광합성 놀이터’에서 우리는 얼마만큼 변화된 대동제와 함께 할 수 있을까? 계획서만 가지고 앞으로 있을 대동제를 평가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축하사의 2003년 봄 대동제, ‘광합성 놀이터’는 대동제가 다 끝난 후 다시 한 번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동제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지금. 학우들의 ‘참여’를 끌어모으려는 현 축하사의 노력은 새롭다. ‘놀이터가 아닌 광합성 놀이터일 수 있을까? 다양한 자치 단체를 끌어낸 지금, 축하사는 이들의 ‘소통’과 새로운 문화 ‘생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저 다양한 것들을 늘어 놓기만 한다고 해서 의미를 갖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함’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를 어우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광합성 놀이터’의 프로그램은 새롭다기 보다는 다소 기존의 각 단위의 활동을 합쳐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갑자기 새로운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것 또한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 자치단위 수준에서의 활동이 어떻게 하나로 묶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놀이터’가 ‘광합성 놀이터’이기 위해서 단순한 이벤트의 나열일 수 있는 각 행사들을 잘 연결하고, 충돌과 소통을 창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3년을 통해 대동제가 다시 자라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