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사회대 1반 02학번 학생들은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MSN에서 사람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이른 오전 7시, 놀랍게도 1반 학우 대부분은 로그인 상태였다. 그리고 한 시간 여 후, MSN에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3일은 바로 수강신청 날. 몇몇 학점을 잘 준다는 전공선택 과목이 신청 시작 후 단 몇 분 만에 마감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과연 무엇이 02학번을 이토록 수강신청에 미치게 하였을까? -그건 바로 너! 학부제 2002년 자연대, 인문대 등에 이어 사회대까지 모집단위 광역화가 도입됨으로써, 서울대학교는 본격적인 학부제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 대학 스스로의 변화라기 보다는, 국가에 의해 강요된 측면이 강하다. 강요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 28조 2항중, ‘모집단위를 정함에 있어서 대학은 복수의 학과 또는 학부별로 이를 정한다.’ 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왜 국가는 학부제를 권장하는 것일까? 『창작과 비평』102호, 논단, ‘대학 구조조정과 학부제’를 참고하면, 이는 노동력 수급 문제와 큰 관련이 있다. 즉 대학의 학과들을 학부제로 묶어주어 노동시장에 안 맞는 학과들의 비중은 줄여나가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수요가 많은 학과들의 졸업생 배출을 늘리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BK 21’ 지원 여부를 학부제 시행과 연계해 놓았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단과별 전공결정 방식과 인원제한 현황 서울대는 단계적으로 학부제를 시행함으로써, 각 단대 별로 진행 상황이 상이하다. 그러나 신입생들 사이에서 학부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원인은 대부분 동일한데,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단대가 전공 선택의 기준을 학점으로 설정, 진입의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96년부터 학부제를 시행한 자연대를 보면, 생명 과학부에 학생이 몰리는 경향이 있으나, 암묵적으로 전공재수를 허용하며, 각 과 정원도 융통성 있게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공대의 경우는 상황이 좀 복잡하다. 03학번은 다시 예전의 학부, 학과제로 돌아가고, 02학번만 대단위 광역화로 모집된, 이른바 ‘낀 세대’ 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현실적으로 02학번은 전공 재수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한 공대 내 자체 조사 결과 약 40% 정원을 차지하는 전기·컴퓨터 공학부에 공대 학생 80%가 지원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대의 경우 전공 제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실정이다. 광역화와 관련한 사회대내 학생 대표 기구인 ‘사회대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이민철씨는 “4년 학부제, 120%정원제, 완전철폐, 전공재수 활성화 방안을 바탕으로 2학기 때 사회대 총투표를 실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안을 바탕으로, 학장단과 구체적인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인문대의 경우는 02년부터 학부제를 본격 시작, 전공진입규정이 자체적으로 제정된 상태이다. 규정은 공통 사항과 각 과의 개별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통 사항은, ’66학점 이상 이수, 외국어 과목 9학점 이상 이수’이며, 개별사항은 국문과를 예로 들면, ‘국문과 전공탐색과목 2개 이상 이수, 그리고 학점 B-이상’과 같다. 문제는 ‘각 학과는 전공진입 신청자 수, 00년도 정원 등을 고려하여 인원을 정한다.’는 모호한 규정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사범대는 120%안을 잠정적으로 확정해 놓았지만, 수학과학 교육계 같은 경우 수학과에 학생이 몰려 다수의 진입 실패가 예상된다. 문·이과를 분할 모집하는 생활과학대의 경우, 이은선(생과대 자연계)씨에 따르면, 아동가족학과보다는 소비자학과에, 식품영양학과보다는 의류학과에 학생들이 더 많이 지원하고 있으며, 전공은 1학년 성적을 고려하여 결정된다고 한다. 미대 디자인 학부의 경우, 학과 간 지원자 편차가 심하다. 도예과에 지원하는 학생은 10명 미만이며, 상대적으로 인기가 좋은 시각, 공업디자인 학과 진입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대 학부제, 부실 투성이 서울대,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살펴본 바와 같이 전공인원제한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즉 학교 차원의 공통된 규정이 없는 것이다. 이현택씨(연세대 경영학부)는 “연세대는 전 학부가 1(학부)+3(학과)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2학기 때 전공 진입에 실패했을 경우, 3학기, 즉 한 학기만 더 전공 재진입의 기회를 부여한다. 이는 전 학부가 동일하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전공인원제한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학부제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 교육부 산하 학술연구지원국이 1998년 제2회 연세교육포럼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학부제는) 학생은 꼭 학과 또는 학부와 같지 않은 별도의 모집단위에 소속되어 다양한 학문·전공을 경험할 수 있게끔 한 것입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에서는 실제로 이런 점이 나타나고 있지 못하다. 이는 전공 진입을 학점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회대 1반 학생 33명과 자유 전공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강대 인문대 4반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명확히 서울대 학부제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수강 신청시 전공 문제 때문에 학점을 고려하여 과목을 선택하였다.’라는 문항에 82%의 서울대 학생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한 반면에, 서강대 학생은 44%만 동의하였다. 서강대 나머지 학생 중, 평소 관심이 있었던 과목을 신청했다는 대답이 91%에 달했다. 즉 다양한 학문에 대한 선택권을 학생 스스 로 전공 진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학기 내에 하나의 전공을 탐색하는 것은 ‘수박 겉햝기’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정치학 과목을 수강했던 김현우(사회대)씨는 ‘전공 탐색 과목이 형식에 그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셋째로 선택 과정에서 수요자의 의견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점과 전공 진입에 필요한 재능과 흥미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질문에 서울대생 91%, 서강대생 89%가 찬성하고 있다. 전공에 대한 이해도와 흥미를 교양 과목의 성취도로 판단한다는 발상은 마치 히딩크를 야구장에서 찾는 것과 같다. 또한 ‘전공진입 여부가 신경 이 쓰여 학교 생활의 제약을 받고 있다’는 문항에 서울대 학생은 79%가 ‘예’라고 한 반면에, 서강대생들은 ‘대학 생활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자유로운 학문탐구(13명), 인간관계 확장(11명)이 학점 성취(4명)를 크게 상회, 대조를 이뤘다. -우리의 모델 = 서강대의 자유 전공제+α 현실적으로 학부제를 되돌릴 수 없다면, 문제는 어떻게 하면 학부제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 교수를 비롯한 학교 당국과 학생, 양 자를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강대의 자유 전공제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우선 자유 전공제를 실시하면 학생의 선택권 문제는 해결된다. 서강대 김성례(종교학과)교수는 “대학 교육의 목표가 지성을 갖추고, 정신적으로 조숙한 교양인을 양성하는 데 있다면, 수능 성적의 재탕이라고 할 수 있는 학점에 의한 전공 제한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서강대는 필수 이수 학점을 줄여 복수 전공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이는 학문간의 경계를 허무는, 즉 boarder crossing 현상을 가져와 융통성이 있으며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려는 학부제의 기본 취지에 부합하며, 이른바 소수 학과도 살아남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라고 말을 이었다. 문제는 자유 전공제 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원자가 몰리지 않는, 소수학과 문제다. 이에는 현실적인 타협안을 수용할 수 있는 소수학과 측의 결단이 요구된다. 서강대 종교학과의 개혁은 이런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종교학과는 타학과의 과목이라도 종교학과 연관이 있으면 학점을 인정해 주고 있으며, 다수의 전공필수 과목을 타과생도 들을 수 있는 교양 과목으로 확대하였다고 한다. 또한 전공예약제도 소수학과를 위한 지원책이 된다. 물론 여기에는 학교측의 소수학과에 대한 고려가 선약되어야 한다. 즉 교양으로 확대할 수 없는 소수학과 심화 과목을 위해 폐강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뒷받침이 요구된다. 결국, 자유 전공제라는 가장 학부제적인 제도 속에서, 소수학과에 대한 각 종 지원책과 같은 학과적인 요소를 고려한 제3의 방안이 현 학부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