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총장’,’민주적 의사 결정 강조’ 등의 평가를 받는 정운찬 총장 시대가 2학기 개강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동안 ‘지역쿼터제’ 등 이슈 중심적으로 정총장의 성향을 분석한 시도는 많았지만, 역으로 정운찬 개인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가’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던 시도는 적었던 듯 하다.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윤건차)’에 의하면, 정총장은 ‘개량적 자유주의자’로 평가되어있다. 윤건차는 개혁과 개량을 ‘특정한 사회체제가 유지된다는 조건하에서 민중의 이익이 실현되도록 사회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자유주의자는 ‘변혁하겠다, 손질하겠다는 노선을 처음부터 정해 놓지 않고, 바꿀 것은 바꾸고 놔둘 것은 놔둔다는 식의 사안별로 접근하는, 변화를 선호하나 한계를 넘어서면 돌아서 버리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정의해 놓았다. 결국 혼합하면, ‘가능한 사안에 대해 변화를 추구하는 태도’로 말할 수 있겠다. 우리의 항해사는 과연 그럴까? 『대학신문』과 정총장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의 성향을 분석해 보도록 하자. 난 개혁총장이야! 정총장은 지역 공동체, 더 나아가 국가 속에서 서울대의 존재를 파악하려한다. 이것은 ‘열린 대학’ 구상에서 잘 나타나는데, 서울대가 과거의 독점적 위치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타대학 혹은 지역구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실제로 관악구민들을 위한 미술관 건립과 도서관 개방과 같은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지성의 권위 회복을 위해 남들과 더불어 사는, 봉사하는 서울대인을 키워내는데 임기 중 주안점을 두겠다.’라는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시도는 서울대생 내부에서조차 지난 과외파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울대 뺏지=독점적 권리’라는 삐뚤어진 엘리트 의식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총장 자신의 거취를 비롯한 대학 행정에서도 개혁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무주택 교수들을 위해, 총장공관과 기존 교수아파트를 재개발, 교수장기임대아파트를 짓겠다는 발언은 ‘총장공관’이라는 권위의 일부를, 동료 교수 복지를 위해 포기했다는 측면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또한 비교적 임기 초인 6개월 내에 후임 총장 선출 제도를 결정하려는 것은 총장 ‘자리’와 관련한 이해 관계의 ‘교통정리’를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보인 듯 하다.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네! – 지역쿼터제의 진실 수많은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지역 쿼터제의 본질은 도·농간의 소득 및 교육 환경 격차를 고려, ‘역차별 제도’의 일환으로서 소외 계층에 대한 지원에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정총장의 본의는 이와 약간 어긋나는 측면을 지닌다.정총장은 발언 배경을 묻는 질문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지내게 되면 이들이 성인이 되고 지도자가 됐을 때 서로간의 이해를 쌓았기 때문에 사회통합을 위해서 굉장히 좋을 것”과 같이 답했다.즉 그는 전라도 학생과 경상도 학생이 어울려도 보고, 또 도시 학생과 농촌 학생이 같이 생활하는 속에서, 단지 대학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제고되는 효과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정총장의 의견을 확대해석, 이를 넓게 ‘자유와 평등’의 문제까지 확대해석,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정총장은 이 부분에 해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혜택이 자연스럽게 고려될 수 있다.’라고 첨언하고 있다. 사실은 보수적? 지역쿼터제의 본질이 결국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더 우수한 엘리트 양성에 있었던 것처럼, 정총장의 생각의 기저에는 엘리트 의식, 교수로서의 권위 의식이 드러난다. 특히 비교적 학생과의 관계설정 문제에서 보수적인 관점을 보인다. “(학생의) 의견 제시는 무지무지하게 많이 해도 좋으나 학교 운영이나 행정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분들은 아직 배우는 입장이므로 배우는 자세로 지내야지 학교행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이르다.”등의 인터뷰 발언과 최근 ‘6.15 기념탑 철거 문제’를 두고 학생 측에 단호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정총장은 학생을 학교 운영의 파트너까지로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 하다. 현실에 대한 고려 – 자유주의적 측면 많은 면에서 정총장은 ‘위에 정의된’ 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난다. “교수연봉제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하나, 현재같이 교수 생활 수준이 낮은 경우 연구 수준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지금같이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김민수 교수 문제-정총장은 민교협 소속으로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는 참 안타까운 일이나, 총장이 개별대학의 일에 간섭할 수는 없다.”, “(김교수 문제와 같은)학교문제는 법원에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대법원에 계류돼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말)이 많지 않다.”와 같이, ‘바꿀 것은 바꾸고 놔둘 것은 놔둔다는’ 선을 긋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마치 정총장의 트레이드마크인 양 되어 버린 쿼터제 문제 역시도 교수들과의 위원회 등을 통한 충분한 합의를 거친 후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조심스러운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개혁’에 대한 기대 – 정해진 틀 안에서 유시민씨는 한 일간지 칼럼에서 정총장을 ‘다양성을 중시하는 리버럴리스트’로 평가했다. 실제로 정총장의 많은 발언을 미루어볼 때, 그를 진보나 보수라는 두 개의 관점으로만 평가하기는 힘들다. 위에서 보았듯이 지역구민에 대한 태도에서 국립대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측면을, 반대로 학생회 측에 대해서는 비교적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끊임없이 개혁과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관악사 문제, 기초학문 분야 지원 문제, 대학 자율성과 예산 문제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해서 그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자유주의자인 정운찬 총장이, 바꿀까? 놔둘까?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현실의 한계를 어디까지 그어 두느냐이다! 한계를 크게 두면, 그는 ‘보수’의 옷을 입게되고, 작게 두어 변화를 시도한다면, ‘개혁’의 옷을 입게 된다. 우리의 항해사, 어디로 서울대호를 이끌어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