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화면에 흰 글씨, 014xy, 2400bps 모뎀, 자정 무렵의 통화중, 잦은 통장(통신 장애), 다른 사람 아이디에 기생 하기, 안시 화면 꾸미기. 이러한 말에 익숙한 사람은 DOS 명령어를 아직 기억하고, 마우스 쓰기를 귀찮아할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부터 컴퓨터 통신을 해 왔던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90년대 말, PC통신의 전성기 국내 PC통신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천리안이 최초의 비디오텍스 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국내에도 PC통신이라는 것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코텔로 출발했던 하이텔이 91년에 생겨남으로서 본격적인 통신 시대가 열렸다. 이 당시 전화국에서는 통신 단말기를 보급하기도 했었다. 이 때만 해도 컴퓨터 통신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이용자들은 보통 사람과 다르게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컴퓨터가 점차 보급되고 모뎀 가격이 내려가면서, PC통신은 점차 성장해 나갔다.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나우누리. 당시에는 삐삐가 퍼져나가고, 초기 전화접속 인터넷이 보급되던 때라 PC통신에 대한 열망도 강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나우누리는 1994년 10월에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신생 업체로서 당시로서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기존 업체(천리안, 하이텔)들이 대학 모임 개설 자격을 엄격히 하고 있었던데 반해 당시 나우누리는 각 대학 과 모임, 동아리 모임을 만드는 요건을 간소화하고, CUG(폐쇄 이용자 모임)의 경우 개설료를 면제해 주는 등 대학생 이용자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타 통신망에서 꺼려하던 총학생회 게시판 등도 열어주어서 학생회의 온라인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대학 사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판촉 활동을 하면서 대학생에 대한 30% 할인 혜택을 준 것도 급속한 성장 배경 중 하나다. 최초로 한글 아이디를 지원한 것도 젊은 층으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나우누리 안의 서울대, sccr 이러한 상황에서 학내 과, 동아리 모임이 나우누리에 생겨난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정보 광장의 CUG도 존재하였으나 느린 속도와 불편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많은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고, 과 단위 이상의 거의 모든 큰 모임은 나우누리에 만들어졌다. 기능상으로 크게 나누자면, 서울대 통신 연구회(이하 sccr)와 각 과, 동아리 모임으로 나눌 수 있다. sccr은 서울대 학우 전체의 통신 동호회이다. 하지만 단순한 통신 동호회 차원을 넘어서 학내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나우누리 ‘총학과 함께’에는 학내 단위의 집회 소식이나 대자보 내용이 올라와서 학내 동향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관악○○’ 식의 단대나 과 이름을 아이디로 사용한 것이 눈에 많이 띈다. 원래 ‘총학과 함께’ 게시판은 총학의 정책에 관한 토론의 장으로 사용하고자 하였으나 현재는 그 기능이 다소 바뀐 면이 있다. 그리고 토론실은 본격적인 의견 교류의 장이었으며, 여기에서의 논쟁이 나우누리 전체 게시판(plaza) 에까지 확산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게시판이 있다. 각급 과, 동아리 모임은 일단 몇 명이 모여서 만들어지면, 다음 해에 신입생들도 가입하게 되어 차츰 세를 불리게 되었다. 남들이 다 가입하니 가입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대체적으로 지금 인터넷 상의 모임들과 기능은 유사하다. 인터넷 환경의 변화인터넷 망이 널리 보급되고, 무료 서비스 제공 업체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고 있다. 프리챌, 다음 등 무료로 인터넷에 모임 공간을 제공해 주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존 통신 업체들은 이용자 격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프리챌 등 인터넷 업체는 회원 가입비나 월 이용료가 없어서 가입에 대한 부담이 없는데다 기존 텍스트 기반 통신과는 다른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기존의 PC통신을 접하지 못한 경우 복잡한 명령어를 알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학번이 낮아질수록 인터넷 커뮤니티로 몰리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과나 동아리 단위의 게시판은 다음 까페나 프리챌 커뮤니티로 대부분 이전되었다. 실제로 나우누리 과 모임의 대부분의 게시판은 1년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고, 글이 올라온다 하더라도 몇몇 고학번의 잡기장이나 한 사람의 일기장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학과, 산업공학과, 응용화학부 정도만이 나우누리 과 모임이 어느 정도 굴러가고 있지만, 여기도 일부 이용자에 한정되어 있고, 조회수도 예전만 못하다. 한편, 자체 홈페이지에 게시판 기능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단과대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게시판도 토론의 장소가 된다. 이 경우에는 익명의 글이 많이 올라와서 게시판 질서를 어지럽히기도 한다. sccr의 힘은 어디로? 과모임과 마찬가지로 sccr도 많이 위축되었다. 글이 많이 올라오던 ‘총학과 함께’ 게시판의 경우, 99년 6000여개 2000년 6400개의 글이 올라오던 것이 올해 9월 현재 1000개에 머물고 있다. 일부 쟁점사항을 제외하고는 조회수도 100을 밑도는 실정이다. 그리고 매년 있었어야 할 시삽 선거도 후보자가 없어서 치루어지지 못했다. 그 대신 다른 곳에서 그 기능을 이어받으려 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총학과 함께’ 나 토론방에서 열띤 논쟁을 벌였을 사안이 sccr에서는 잠잠해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속할 수 있는 곳으로 그 논쟁이 옮겨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총학게시판과 SNUnow.com이다. 총학 게시판에는 총학 정책에 대한 찬반의 글과 함께 다양한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각 단위의 집회 알림이나 보고가 올라오고 있어서 옛날 ‘총학과 함께’ 게시판과 비슷해지고 있다. 그리고 일정 공유는 총학 게시판 외에도 자치달력이 어느 정도 이 역할을 떠맡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학 홈페이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능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올해 초 생겨난 SNUnow의 경우 주요 사건이 보도 되었을 때, 기사에 의견을 다는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되다가, 논쟁이 격해지면 따로 토론방을 개설하기도 한다. 이번 인문대 성폭력 조작 의혹 사건도 온라인 상에서 한 학우의 요청으로 SNUnow에 토론방이 개설되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한편, 그동안 sccr에서 게시판 하나씩 차지해왔던 기능들도 흩어지고 있다. 기본적 만남의 장으로서의 역할은 프리챌이나 세이클럽의 서울대 동호회 등으로, 강의 추천 등의 이야기는 snulife.com으로 많이 옮겨져 갔다. 그리고 벼룩 시장 같은 공간은 sis의 게시판이 이용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의 의견은 어디로 가야 하나?아직 많은 학우들이 나우누리를 사용하고, sccr을 이용하고 있다. 그 중에는 온라인이지만 좀 더 인간적이었던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남아 있는 학우도 있고, 자료실이나 기존 동호회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학우도 있다. 한 학우는 ‘이용료가 부담이 되지만 미련이 남아서 해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히 변화에 흐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몇 년간 학내 온라인 소통의 공간이었던 나우누리의 sccr과 개별 과, 동아리 모임이 인터넷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다른 곳으로 기능이 이전되는 것에 대해 좋으니 나쁘니 얘기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동안 구심점처럼 존재하던 힘이 사라지고, 기능적 분화가 일어나면서 온라인 내에서의 학내 여론 형성에 공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현재까지 위에 언급되었던 어떤 사이트도 예전의 sccr만큼의 지위에 있지는 못하다. 대자보가 오프라인에서의 소통 매체라면 통신망의 게시판은 온라인에서의 매체이다. 게다가 시간적, 공간적 장애가 없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찬찬히 읽어볼 수 있고 논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관악 학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혹은 발전된 온라인 공간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