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는 특혜가 아니다”

936명.지난 2년 동안 국내에서 수감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숫자다.이는 국제앰네스티가 지난달 23일 내놓은 ‘2007년 연례보고서’가 추정한 수치로, 보고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판결과 구속수감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사형제도의 유지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침해사례로 지적했다.

936명. 지난 2년 동안 국내에서 수감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숫자다. 이는 국제앰네스티가 지난달 23일 내놓은 ‘2007년 연례보고서’가 추정한 수치로, 보고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판결과 구속수감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사형제도의 유지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침해사례로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슈화된 지 벌써 10여 년이 다 돼가지만, 대체복무제 도입 등의 제도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지난 50여 년 동안 누적된 병역거부자가 1만 명을 돌파함에 따라, 주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현재 관악캠퍼스에 재학 중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재판 절차를 밟고 있는 강성민(농경사 02) 씨를 만나 병역거부를 선언하게 된 계기와 재판 진행 과정, 그리고 향후 대체복무제의 도입 가능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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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박해를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꼽고 있는 국제앰네스티 2007년 연례보고서의 일부분.

“병역거부는 종교적 신념이자 개인적 신념”

서울대저널(이하 저널)│종교적 이유로 병역거부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병역거부를 결심하기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나?

강성민(이하 강)│

현재 ‘여호와의 증인’ 신자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종교 집회에 참석했다. 원래 정식 신자는 아니었는데, 대학 2학년 때 정식으로 신도가 됐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종교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대학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성서를 공부했고 이를 계기로 신자가 됐다. 비록 ‘여호와의 증인’ 신자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신념도 병역거부에 큰 영향을 끼쳤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껴 왔다. 중증장애인들을 돕는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군대를 가지 않고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들이 많겠다고 생각했다.저널│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했나?강│조금은 소극적인 방법을 택했다. 지난해 12월 5일 306 보충대로 입영할 것을 명령받았으나, 전날 미리 병무청에 전화해서 병역거부 결심을 전했다. 병무청에서는 조사를 위해 다음날 출두하라고 통보했다. 그쪽에서도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리 요령을 숙지하고 있었던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서 조사가 끝나더라. 이후 검찰에 고발당했고,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12월 30일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기각돼서,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저널│검찰 조사 과정은 어땠나?강│검찰에서 몇 차례 조사를 받았다. 담당 검사는 양심의 자유보다 국가 방위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수사’가 아닌 ‘훈계’를 받은 느낌이었다. 검사는 소극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보다, 좀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꿔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병역거부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범위 내에서의 최선의 선택이라고 답했다. 검사에게 성서 내용을 근거로 병역거부의 타당성을 주장하니, 종교적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더라(웃음). 검찰 조사는 그렇게 마쳤고, 2월에 기소됐다. 원래 4월 11일에 재판을 받도록 돼 있었는데 국선변호인 선임 등의 절차를 거치며 일정이 늦어져 6월 1일에 첫 재판 날짜가 잡혔다. 현재 생각으로는 1심에서 유죄를 받더라도 항소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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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지만, 개인적인 신념도 병역 거부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대체복무제 도입,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무를 조화시키는 길

저널│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후자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재판부의 입장으로 보인다.

강│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상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많은 공익근무요원들이 복지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총을 들고 국경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양로원이나 복지시설 등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 또한 국가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양자를 조화시킬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위헌판결을 내리거나 대체입법을 권고한 재판관들도 있다.저널│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면, 현실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병역기피자를 가려내는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강│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용한 병역기피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얼마 전에 병역특례제도를 악용한 병역기피자들도 적발돼 처벌되지 않았나. 그 정도의 색출 능력이라면 둘을 가려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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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항소할 의사를 피력하는 강 씨

저널│악용 소지를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강│

분단의 참상을 몸으로 느낀 분들이 아직도 살아 계시는 상황에서 국민 여론을 단시간 내에 변화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국민들의 여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항상 다수의 의견에만 따라야 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같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의 권익은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말 것이다. 극소수의 현역 입영 대상자만이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가 진정으로 소수자를 배려할 생각이 있다면, 대체복무제 도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여론에만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다.저널│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한 대체복무제 도입이 ‘여호와의 증인’에만 특혜를 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이 심한데.강│대체복무제 도입이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로 비쳐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과거에는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병역을 거부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오태양 씨와 같은 불교 신자는 물론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병역거부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대만의 예를 들면 과거 병역거부로 처벌 받은 사람들의 대다수는 여호와의 증인이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 이를 신청한 2000여 명 중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35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불교 등의 다른 종교는 물론, 평화주의 등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도 폭넓게 존중되어야 한다.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저널│최근 ‘양심적 예비군훈련 거부’가 새롭게 이슈화되고 있다. 군복무를 마친 뒤에 병역 거부에 대한 신념을 가지게 된 경우인데,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병역 거부가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하나?강│병역의무 이행의 특수성이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그 분들은 징집대상에 해당돼 어쩔 수 없이 입대한 뒤, 강압적인 군대의 문화에 짓눌려 있다가 전역한 뒤에서야 비로소 병역 거부에 대한 신념을 가지게 된 경우다. 예비군훈련은 병역의무를 이미 마친 사람에게 또 다른 형태의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그야말로 ‘옥상옥’에 해당한다. 법률적 근거 또한 모호하다. 병역거부자들은 1년 6개월 동안 징역형을 살면 병역의무가 면제되지만, 예비군훈련 거부자들은 해마다 꼬박꼬박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것이 쌓이면 수천만 원에 달한다. 사실 예비군훈련에는 돈을 주고 참석을 대리시키는 등의 편법이 난무하지만, 양심적 예비군훈련 거부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훈련을 대리시키는 방법을 쓰지 않는다. 예비군훈련 거부가 신념인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대신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예비군훈련 문제는 병역거부 문제에 비해 비교적 풀기 쉬운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여론도 호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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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씨는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 뿐만아니라, 불교나 평화주의 등의 다양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널│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라면 소수자다. ‘소수자’를 바라보는 바깥으로부터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강│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과 다른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감했다. 아직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사회적 분위기도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와 다름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늘어간다는 것을 최근에 새삼 느끼고 있다. 특히 어렵게 불구속 수사 결정을 내려 주신 담당 판사나 국선변호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열심히 변론해 주시는 변호사님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분들은 진정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 옳다고 믿어주시는 것 같다.저널│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달라.강│일제시대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지금의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3대가 대대로 병역거부로 고통을 겪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안타까운 심정이다. 현재 각종 국제기구와 인권단체에서도 우리 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국회와 행정부에서 과감한 결정이 내려져, 더 이상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자유를 구속당하는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은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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