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에서는 북한 핵시설 폐쇄에 관한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개성공단의 노동자가 1만 5천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지난 4월에는 북한 축구 청소년대표팀이 제주에서 전지훈련을 치르기도 했다. 6,15 남북 공동선언이 있었던 지난 2000년만큼은 아니지만, 북핵 사태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던 지난 가을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한반도는 ‘갈등’ 보다는 ‘화해’를 향해 기울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노력해 온 시민단체들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지난 5월 4일 기자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부근에 위치한 대북 의료지원 NGO ‘나눔 인터내셔날(이하 ‘나눔’)’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북한 어린이들의 환한 미소를 담은 사진이 들어왔다.북한의 ‘어린이’와 ‘환자’들에게 가장 먼저 나눔의 손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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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 인터내셔날’의 현관문 |
‘나눔’의 이윤상 대표(44)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1985년부터 ‘월드비전’, ‘유니세프’, ‘굿네이버스’ 등에서 구호활동을 했다. 그러다 1996년 북한 대홍수를 계기로 대북 지원사업의 필요성을 느꼈고, 2004년 2월에 ‘굿네이버스’를 떠나 ‘나눔’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대북 지원사업에 전념하게 됐다. 북한의 빈곤 퇴치를 위해 각종 구호와 지속개발 사업을 전개하는 ‘나눔’은 2004년 3월 통일부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됐고, 그 해 6월에는 통일부로부터 대북지원사업자로 지정됐다. ‘나눔’은 북한의 의료와 보건환경 개선을 중심으로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북한 조선적십자병원의 의료기기 현대화 사업과 척추수술 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남북 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의료협력을 위해 2005년에는 평양 만경대구역에 ‘평양의료협력센터’를 건립했다. 이 대표는 “지금 북한에서는 식량문제로 인해 환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데 의료시설이 부족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못 받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환자들을 위한 보건의료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북한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열악한 의료환경을 꼽았다.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한 물자 지원 역시 ‘나눔’의 주요 활동 중 하나다. “전 세계의 모든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이다. 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어른들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눔’에서 의료 지원사업만큼 아동 지원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 이유다. ‘나눔’은 북한의 탁아소와 유치원, 학교 등에 영양식과 보육용품, 학습기자재 등을 지원하며, 지난해 4월에는 국민일보와 함께 ‘북한 어린이를 도웁시다’라는 제목의 모금 운동을 벌여 어린이용 영양제, 유치원 환경개선 물자 등을 북송했다. 체계적 지원과 지속적 관리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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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북한의 한 학교를 방문해 이전에 지원한 교육자재가 수업 시간에 사용되는 모습을 살펴보는 이 대표. ‘나눔’에서는 물자를 북송한 이후에 물자가 잘 활용되고 있는지 꾸준히 점검하고 있다. |
사무실 한 곳에 세워진 게시판에는 대북 물자탁송과 방북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한 달을 단위로 수차례 일정이 잡혀 있는데 대북 물자탁송은 90차, 대표단 방북은 70차를 넘어가고 있다. ‘나눔’의 사업이 물자를 한 번 보내고 끝나는 ‘일회적 행사’가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눔’은 한달에 2~3회 방북해 지원물자의 활용 실태 모니터링, 의료기기 설치, 사업협의 등을 진행한다. “우리는 북측과의 협의 하에 학교, 병원 등 구체적 사업장을 정하고 어떤 물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철저히 검토한 후에 보냅니다. 정기적으로 대표단이 방북해 한 번 보낸 물자가 북한에서 잘 쓰이고 있는지 관리하고 앞으로 무엇이 더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죠.” 방북 활동을 설명하던 이 대표는 대북 지원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시대에는 북한에 물자를 보내면 그게 목적대로 잘 쓰이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간에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고 이제 그런 우려를 할 단계는 지났다고 봅니다. 이제는 전달된 물자가 북한에서 잘 활용되도록, 그렇게 함으로써 대북 지원사업이 더 큰 효과를 내도록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속적으로 고민할 때입니다.”대북 지원사업은 정치적 논리와는 별개로 계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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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 지원사업을 지속해 오다가 북핵 사태를 계기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을 볼모로 잡는 셈이죠.” ‘나눔’의 이윤상 대표 |
지난해 7월과 10월 연이어 발생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인해 남한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 시민단체들은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하며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지속되어 온 햇볕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사업 등도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눔’은 지원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당시의 비판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이 대표에게 물었다. “북핵 사태 이후로 남한의 안보상황에 위기가 닥쳤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북한에 경제제재가 가해지고 식량지원이 중단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을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바로 북한의 주민들입니다. 대북 지원사업을 지속해 오다가 북핵 사태를 계기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을 볼모로 잡는 셈이죠.” 이 대표는 대북 지원사업이 ‘인도적 지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지원 사업은 북한 주민들을 위한 것입니다. 정치적 논리와는 별개로 지속돼야 합니다.” 실제로 이 대표는 당시 남북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던 상황 속에서도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대북 지원사업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6자 회담이 타결되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해빙의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는 ‘나눔’과 같은 민간단체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남과 북의 공존과 번영이 우리 세대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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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속 북한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처럼 한반도에도 밝은 미래가 펼쳐졌으면 좋겠다. 사진은 ‘나눔’ 사무실 내부에 있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담긴 액자. |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한 사회에는 한때 통일 ‘붐’이 크게 일었다. 북한 가요 ‘휘파람’을 부르는 남한 가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남북 축구대표팀 간의 친선경기도 수차례 열렸다. 그러나 요즘 남한 사회에서는 당시와 같은 통일의 열망을 찾기 힘들다. 대선을 앞두고 실시되는 각종 여론조사를 봐도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 가운데 남북통일은 경제성장보다 한참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경기 불황으로 통일 문제에 무관심해진 데에 북한 핵실험 사태의 여파가 더해져 통일을 기원하는 여론은 여러 번 흔들렸다. 이처럼 아직 ‘통일’은 멀기만 한 얘기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와 ‘나눔’이 대북 지원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지금, 남북이 공존하며 번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 ‘나눔’은 시민들에게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나눔’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그리고 대북 지원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예전에 우리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죠. 하지만 북한은 우리와 한 민족이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인 만큼 부정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제 남과 북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 화합해서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