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동안, 우리는 아무런 피해 없이 우리의 천연자원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틀렸습니다.” 이것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을 다룬 영화 에 나오는 미국 부통령의 대사다. 영화의 주인공인 기상학자는 빙하를 탐사하던 중 지구의 이상 변화를 감지하고 전 지구가 빙하로 뒤덮이는 재앙이 올 것이라고 발표하고 뉴욕시에 홍수가 일어난다. 영화는 각종 위급상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자연 재해가 가지고 올 수 있는 파괴력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 ###IMG_0### |
재난영화보다 무서운 자연재해
이런 충격적인 재난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반도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물난리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8월 태풍 루사는 강릉 지역에 하룻동안 870.5mm의 비를 뿌리며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1일 최대 강우량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루사가 한반도에 상륙할 당시 기상청에서 예측했던 300mm를 크게 웃도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동시간 영서지방의 강우량보다 20배 가까이 많은 양이었다. 또 루사는 순간 최대풍속 56.7m/s를 기록했는데, 이는 거리의 가로수가 순식간에 뿌리채 뽑혀 날아갈 수준이다. 인명 피해 역시 엄청나 사망자 수만 46명을 기록했고 재산피해액은 5조원을 훌쩍 넘었으며, 마산 근방에서는 한국전쟁 중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골 백여 구가 태풍으로 인해 드러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2년에 이어 2003년에 또 한번 큰 태풍이 몰아쳤다. 태풍 매미는 초속 60m/s 에 달하는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채 한반도에 상륙했는데, 루사로 인한 피해 복구가 채 끝나지도 않은 무렵이었다. 이로 인해 경북과 강원도 지역에서 홍수가, 경남 지역에서는 해일이 발생했다. 태풍 매미에 의한 인명피해 역시 어마어마해 사망자 수만 117명에 달했다. 2006년에는 집중호우에 의한 홍수피해가 컸다. 작년 7월 강원도 인제군은 집중호우로 인해 사망 35명 실종 13명, 이재민 2196명(819세대)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인제군은 전형적인 산악 지대로 피해의 대부분이 계곡에 집중돼 막대한 양의 토사가 하천으로 유입됐으며 심지어 작은 마을 전체가 유실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수해는 1990년대 이후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서 재난의 규모로 일어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빈도는 늘어나고 있다.
| ###IMG_1### |
| 2006년 여름 강원도 인제군의 수해 현장. 비닐하우스와 나무, 집들이 모두 물에 잠겨 꼭대기만 겨우 보인다. |
1960년대 이전에 하루 100mm이상의 폭우가 연간 2.7회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매년 10회 이상 나타나는 추세다. 수해 후 주민들의 정신적 외상 심각해 수해 피해는 단순히 물질적 손실에만 그치지 않는다. 2006년 국립서울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영동지역 주민 92명 가운데 55%가 여전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강릉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정신적 피해상황 조사 결과에서는 강릉시 전체의 정신적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000억원을 넘어선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수해가 물질적, 정신적 측면을 통합한 관점에서 다뤄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수해를 입은 평창군 재난관리계장은 “수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해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정상치보다 1.8배에서 5.5배까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피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치료 프로그램에 131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고 밝혔다.
| ###IMG_2### |
| 수해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강원도에서는 반파된 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재해의 파급 효과는 해당 지역을 넘어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생태지평 연구소 박항주 연구원은 “소비자 체감 물가에도 수해가 큰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강원도의 농작물 같은 경우는 공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환경파괴 수해는 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중국의 사막화에 따라 강우 형태가 게릴라성으로 변화한 점과 산악지방의 난개발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 역시 수해 피해의 원인으로 꼽히지만, 앞서 언급했던 영화 에서처럼 가장 큰 원인은 기후변화에 따른 온난화이다. IPCC(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는 2002년 조사보고서를 통해 2100년 세계의 해수면은 최대 88cm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게 되면 대기 중으로 강한 열을 방사해 폭풍의 위력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와 수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과관계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9위인 점을 감안하면, 해마다 반복되는 수해는 결국 우리가 자초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난리는 결국 우리가 날린 부메랑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