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5월 18일, 고속버스를 타고 세시간 남짓을 달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도착한 기자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열망하는 플래카드였다.2014년 동계올림픽은 과연 어디서.결과는 7월 4일에 발표된다.지난 2월 올림픽 유치 실사단이 평가를 위해 평창을 방문했을 때는 진부면 주민의 절반인 2,000여 명이 청사초롱과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 행렬에 참여하기도 했다.

5월 18일, 고속버스를 타고 세시간 남짓을 달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도착한 기자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열망하는 플래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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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동계올림픽은 과연 어디서? 결과는 7월 4일에 발표된다.

지난 2월 올림픽 유치 실사단이 평가를 위해 평창을 방문했을 때는 진부면 주민의 절반인 2,000여 명이 청사초롱과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 행렬에 참여하기도 했다. 들뜬 구호들을 뒤로 하고 체육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졌다. 잿빛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사방으로 들이쳐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 도착한 체육공원은 작년 7월 수해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이 10개월 째 머물고 있는 컨테이너촌이 위치해 있었다. 입구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쏟아지는 비를 피해가며 찾아간 체육공원에는 예상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었다. 컨테이너의 외벽은 깔끔하게 페인트칠이 돼 있고 지붕까지 얹어져 있어, 얼핏 봐서는 일반 가옥과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가까이 가자 얇은 외벽이 드러났다. 진부면은 강원도에서도 상류 지역이기 때문에 배수가 용이해 그간 수해 피해를 입은 적이 드물었다. 그러나 2006년 여름 수해는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비 피해였기 때문에 누구도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5월 15일에서 18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린 비는 시간당 최대 120mm에 달할 정도였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바로 저기가 우리 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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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이 살고 있는 컨테이너촌. 외관만으로는 컨테이너라는 것을 알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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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촌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비를 피해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방금옥(70) 씨는 “바로 저 하천 건너편이 우리 집이었는데 토사에 묻혀버렸다”며 하천 건너편 산기슭을 가리켰다. 산이 많은 강원도의 지형 특성상, 집중호우가 닥치면 하천이 불어나 집과 논이 잠길 뿐 아니라, 산기슭에서 흙이 쓸려 내려와 토사에 가옥이 파묻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김성욱 주민대책위 위원장은 “산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고 묘사했다. 그는 “서울에서 친구가 놀러온 김에 밥을 먹으러 나갔다 왔는데 1시간 반 사이에 집이 물에 떠내려 가고 없었다”며 “단순히 집이 떠내려간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추억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다”고 토로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미지로 막연하게 수해 피해를 상상하던 기자들에게, 화재는 재를 남기지만 수재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실감나게 다가오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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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면에서는 포크레인을 비롯한 각종 복구 장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진부면 수재민 컨테이너촌에 남아 있는 가구의 수는 현재 38세대이다. 이들은 생활 형편이 어려워 다른 곳에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애초에 부도 아파트를 매입해 수재민들에게 임대 아파트를 제공하겠다던 정부의 입주 계획은 2008년 12월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기존의 아파트 건축주가 요구하는 매매금액과 주공의 감정평가금액이 각각 91억원과 78억여원 등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다 국민임대아파트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주차장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입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컨테이너에서 이미 한 번의 겨울을 난 수재민들은 예상 외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김성욱 씨는 “국민들의 도움으로 112억이라는 성금이 평창에 지원됐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 지난 겨울을 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며, 자칫 수재민에 대한 시선이 온정주의적인 관점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적막한 컨테이너촌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린 평창군청은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재난관리담당 김두관 계장은 “작년 평창군의 피해액이 5400억 정도로 추정된다”며, “항구 복구를 위해서는 피해액의 여섯 배가 필요하지만 평창에 할당된 복구 지원비는 1조원 뿐이기에 임시 복구를 중심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사람들은 수재가 발생하면 흔히들 ‘또 인재다’라고 관을 탓하지만 실제로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예산을 신청하는 등 일련의 과정들에 소요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절기에는 공사를 시행할 수 없어 실제로 공사가 착공되는 것은 봄이 가까워질 무렵”이라는 말에서는 수해 복구 가능성에 대한 무력감마저 느껴졌다. 부족한 인력과 예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창군청 건물을 뒤로하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또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웰컴 투 평창, 예스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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