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토요일 새벽, 기자들은 강원도 인제군으로 향했다. 인제군은 작년 여름 집중호우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곳 가운데 하나다. 물난리 후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인제군은 어떤 상황일까. 오전 10시 경 도착한 인제군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수해 복구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인제군청을 찾았지만 관계자들은 ” (피해 복구 상황에 대해)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각종 언론사에서 피해 복구 상황에 대해 왜곡보도를 했기 때문에 군청에서는 암묵적으로 언론사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차례의 설득 끝에, 익명을 요구한 군청 직원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하천 설계도를 직접 보여주며 “우리의 수해 복구는 단순히 제방을 쌓고, 수문과 양수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사 진척도가 매우 저조하다는 기사를 사전에 접하고 간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진척률 저조를 인정하면서도 “인제 뿐 아니라 강원도의 모든 수해 지역은 ‘친환경적인 하천’을 만드는 것을 복구 작업의 목표로 삼고 있다”며 복구 작업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봐줄 것을 요청했다. 또, 현재 복구 공사를 맡고 있는 한 회사의 관계자 역시 “길게 내다보고 하는 공사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군청 다음으로 기자들이 찾아간 곳은 지난해 인제군 내에서도 특히 큰 피해를 입은 인제군 덕산리였다. 덕산리에서 기자들을 처음 맞은 것은 벽이 파괴된 채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축산회관. 폐허가 된 축산회관은 지난 물난리의 참상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듯했다. 하천 주변을 따라 들어선 마을에는 작년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작년 산사태 때 떠내려온 토사가 쌓여 있었고 하천에도 홍수 때 떠내려온 돌들이 가득했다.
마을 한켠의 작은 구멍가게 주인 할머니는 긴박했던 작년 여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닥쳤어. 황톳물이 우리 가게 앞으로 순식간에 밀려 오더라고. 집이나 논밭이 문제가 아니여. 사람이 많이 죽었어. 이 마을에도 집 주변에 물길 내러 갔다가 휩쓸려 죽은 사람이 있어. 구조하러 온 군인도 다른 사람 살리고 자기는 저 세상에 갔어.” 끔찍했던 인명 피해를 언급하는 할머니의 눈가엔 서글픔이 어려 있었다. 기자 역시 수재를 직접 겪은 적이 있어 할머니의 이야기가 더욱 공감이 갔다. 하지만 수해 이후 생계 유지에 관해서는 기자들의 애초 예상과는 달리 사회 각계각층의 도움 덕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답했다.
덕산리의 많은 주민들은 아직 컨테이너 박스에 살고 있었다. 컨테이너 단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는 이주단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거의 완성된 집들도 있었고, 골격을 제법 갖춘 집도 여러 채 보였다. 작년에 물이 범람하지 않았던 농지에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기반 공사를 실시해 건축비를 보조받았다고 한다. 일부 집들은 빠르면 5월 말 경 입주가 시작되고 늦어도 6월 중순이면 건축 작업은 끝날 예정이다.
수해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 덕산리 이장 김남수 씨(54)를 만났다. 김 씨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만난 한 고등학생은 복구가 더디지 않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임시 복구는 완료됐다”며 “특히 작년에 큰 피해를 가져온 산사태에 대한 대비는 거의 완벽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항구적인 복구가 더딘 데는 농지 보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장 김 씨는 “우리는 수해를 전화위복으로 삼을 것이다. 공사가 끝난 하천을 사람들이 와서 발 담그고 놀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다”라고 장담했다. 김 씨와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마을을 한바퀴 더 둘러봤다. 하지만 김 씨의 말과는 달리 마을의 몇몇 풍경은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산사태에 대한 대비는 사방 공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으나, 하천은 여전히 제방 공사가 덜 이뤄진 모습이었다.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에 제방을 확실히 손보지 않으면 올해도 또 비 피해가 발생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다. 마을을 떠나는 기자들에게 이장 김 씨는 공사가 완료되면 다시 찾아오라며 당부했지만 그의 낙관적인 말에서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단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