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조선말로 희망을 품는, 우리학교

지난 3월 말, 다큐 영화 한 편이 조용히 개봉했다.이 영화는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일본 내의 ‘민족학교’를 소재로 한다.지난 5월, 입소문을 타고 이 영화는 다큐 영화 흥행 신기록을 달성했다.이 영화가 바로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다.최근 SBS에서는 2005년에 이어 도쿄 에다가와 민족학교를 소재로 한 다큐를 방송했다.

지난 3월 말, 다큐 영화 한 편이 조용히 개봉했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일본 내의 ‘민족학교’를 소재로 한다. 지난 5월, 입소문을 타고 이 영화는 다큐 영화 흥행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 영화가 바로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다. 최근 SBS에서는 2005년에 이어 도쿄 에다가와 민족학교를 소재로 한 다큐를 방송했다. 에다가와 민족학교와 도쿄도 간의 재판을 다룬 이 다큐는 방송 후에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런 일련의 분위기 속에, 남한 사회에서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재일동포와 민족학교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재일동포의 꿈이 담긴 학교, 민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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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민족학교를 폐쇄하기 위해 수백명의 일본 경찰이 동원됐다.

민족학교는 해방 직후 재일동포들에 의해 세워졌다. 재일동포들의 대다수는 언제든지 조국의 사정이 안정되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조국에 돌아갈 날을 그리며 재일동포 1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학교를 다닌 자녀들을 위해,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칠 수 있는 조선인학교를 설립했다. 해방 직후 사정이 어려웠던 조국이나 식민지 지배국가였던 일본 정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따라서 전쟁 직후 기본적인 생계도 꾸리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음에도 민족 교육이라는 목표 아래 재일 동포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학교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재일동포 1세, 2세들은 민족학교에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에다가와 민족학교 재판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직접 일본을 다녀왔던 박기홍 SBS 피디는 “한마디로 그분들의 (민족학교에 대한)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재일동포 1세 분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고 얘기한다. 지금도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 오신다”고 말했다.그러나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일본 사회에서 소수민족인 조선인의 민족교육은 난항을 겪었다. 민족학교는 탄생 초기부터 일본 정부와 연합군 사령부(GHQ)에 의해 탄압을 받는다. 탄압을 받은 재일 동포은 저항했고, 48년 ‘한신교육대투쟁’에서 저항은 최고조에 달했다. 연합군 사령부는 도쿄도 내 조선학교 폐쇄령을 내렸고, 항의를 하기 위해 오사카부청사 앞에 재일동포 1만 5천명이 모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물 대포와 총을 쏘면서 사태를 진압했고, 이 결과 조선인 중학생 1명이 사망했고, 70여명이 다쳤으며, 179명이 체포된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민족학교를 허가하는 듯 했으나, 49년 10월 다시 문부성에서 민족학교 폐쇄령을 내렸다. 일본 정부와 우익의 민족학교 차별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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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지상 씨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 민족학교 학생들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민족학교 탄압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3월에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도쿄도가 에다가와 민족학교(조선 제2초급학교)를 상대로 ‘학교 토지를 반환하고, 사용료 40억을 지불하라’고 제소한 사건은 민족학교가 처해있는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민족학교를 졸업한 고성(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씨는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민족학교와 총련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보다 심해진 것 같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민족학교는 현재 일본 교육법 제1조에 속하는 ‘정규학교’로 인정되지 않고, 그 외 ‘각종학교’로 취급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민족학교 학생들은 민족학교를 졸업하더라도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일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보지 않아도 되는 학력 인정 시험을 치러야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2000년에 민족학교를 졸업한 김미나(카페 ‘수카라’ 직원) 씨는 “전문학교를 지원했는데,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시험을 봐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민족학교에 대한 교육적 차별은 많이 완화되는 추세다. 민족학교 출신인 강철수(사회학과 석사과정) 씨는 “국립대학에서는 아직까지 민족학교를 인정하지 않지만, 사립대학들은 민족학교를 인정하고 있다. 몇몇 학생들은 일본 대학으로 진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또한, 민족학교는 ‘각종학교’로 취급되면서 일본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해 재일동포들의 지원금을 통해서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 자녀를 민족학교로 보내는 학부모들도 일본 학교를 다니면 내지 않는 비싼 수업료를 따로 내야 할 상황이다. 민족학교를 소재로 한 노래인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를 작곡한 이지상 씨는 “자녀를 민족학교를 보내는 재일동포는 모든 수입을 민족학교에 쏟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 극우단체의 폭력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민족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총련이 북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북 · 일 관계가 악화되면 민족학교와 우익 간의 충돌도 잦아진다. 고성 씨는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나빠지면 우익들이 자주 학교를 위협한다. ‘학교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식의 협박 전화나 여학생이 치마저고리를 찢기는 일은 큰 일도 아니다”라고 말해 일본 극우단체의 폭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게 했다. 김미나 씨도 “학생들에 대한 폭력이 워낙 심해서, 학교에서도 등교할 때는 일본 교복을 입도록 했다”고 말했다. 남쪽 정부와 총련의 너무나 아픈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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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열린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발족식 현장.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했다.

현재 재일동포 사회는 크게 민단(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과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으로 나뉘어진다. 민단은 남한을 국가적 배경으로 하며, 현재 남한에서 일정액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총련의 경우 북한과 가깝다는 이유로 남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며, 같은 이유로 총련의 산하 기관 격인 민족학교 역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총련과 북한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북한 정부는 1957년부터 총련에 교육원조비 명목으로 연 10~20억 엔을 지원했다. 이 돈으로 총련은 조선대학교와 많은 민족학교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 직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남한 정부는 총련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총련은 북한 정부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후에 재일동포들에게 일방적인 국적 선택이 강요되면서 총련과 남한 정부와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된다. 이로써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해방 이전의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남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나뉘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재일동포들은 남한 정부가 동포 사회를 영원히 갈라놓음으로써 자신들을 버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국회의원은 “민족학교 문제는 단순히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에 수탈당했던 역사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며 재일동포 문제를 다르게 볼 필요성을 제기했다.남쪽 정부는 ‘이적단체’란 이유로 외면만민족학교의 어려운 상황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민족학교를 돕기 위한 민간단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로 지난 5월 25일 발족식을 한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이 있다. 이 단체는 도쿄도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합의금 1억 4천만 엔을 선고받은 에다가와 민족학교를 돕기 위해 결성됐다. 상임대표인 시인 김용택 씨는 “시골초등학교 교사로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민족학교 아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집행위원장인 이지상 씨는 “재일동포들은 고국을 잊지 않고,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이번 모임을 만들었다”며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의 결성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또 “합의금 모금 활동에 주력하고, 나아가 민족학교에 대한 인식을 바른 방향으로 확산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며 단체의 활동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민족학교에 대한 여러 민간단체들의 활발한 지원 활동과 달리 현재 우리 정부는 지원 계획이 전혀 없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7~80년대 대법원 판례에서 ‘조총련은 이적단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조총련계 법인인 민족학교를 지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사회적으로 민족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외교부 내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태도가 쉽게 변경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민족학교 지원 계획은 없음을 밝혔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도 “총련과의 활동 계획을 아직까지는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국사학과 정용욱 교수는 “이미 민족학교 학생 중의 30% 정도가 한국 국적의 소유자이고, 이들이 일본 극우 세력의 일상적 위협속에 있다면 이 30%의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며 우리 사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민족학교와 민족주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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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가와 민족학교를 다룬 방송을 2차례 제작했던 박기홍 피디.

최근에 나온 민족학교 관련 영상들이 시청자들의 좋은 호응을 얻으면서, 많은 언론과 방송사들이 앞다퉈 민족학교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방송을 보고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에서 수난을 당한 재일동포들의 역사를 마음 아파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민족학교가 강조하는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기홍 피디는 “민족학교에서 강조하는 민족주의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민족주의는 별개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일동포들은 식민지 국가인 일본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민족주의를 강조했다”며 민족학교와 재일동포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강조하는 민족주의를 살펴 볼 것을 강조했다. 정용욱 교수도 “민족학교의 민족주의는 어느 사회에나 있는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최근에 민족학교를 다닌 재일동포 3세, 4세들 가운데는 일본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 사회는 재일동포에게 일본인과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재일동포들에게 우리의 말과 문화를 지켜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정용욱 교수의 말처럼 “재일동포들이 자기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일본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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