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학교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선보이면서 민족학교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일본사회에서 재일교포와 민족학교가 겪는 차별 그리고 차별에 대한 민족주의적 분노에 집중돼있다. 그러나 감정적인 민족주의는 민족학교 문제를 과장 혹은 왜곡시킬 수 있다. 『서울대저널』에서는 민족학교 졸업생인 김미나(카페 ‘수카라’ 직원) 씨, 강철수(사회학과 석사과정) 씨, 고성(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씨, 김남주(인문 07) 씨를 만나 민족학교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개별적으로 이뤄졌으며, 본 기사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민족의 의미를 깊이 새기는 ‘고국방문’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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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나 씨는 민족학교 졸업생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통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어지는 민족학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고국방문’이다. 여기서 고국이란 북한을 의미한다. 이 행사는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이뤄진다. 민족학교 학생들은 니가타항에서 만경봉호를 타고 강원도 원산항에 도착한다. 고국방문의 일정은 주로 ‘민족’과 관련된 곳을 견학하는 것에 집중돼 있다. 민족학교 학생들은 황해도 신천에서 미군이 저지른 학살을 기념하는 곳을 방문하거나, ‘민족의 정기’를 담고 있는 백두산과 묘향산을 방문한다. 고국방문을 통해 그들은 교과서에서 추상적으로 배워오던 민족을 직접 체험하게 되며, 민족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특히 민족학교 학생들은 고국방문 일정 중 판문점 방문을 통해 현재 민족이 처해 있는 현실을 깨닫는다. 김미나 씨는 북쪽과 남쪽의 판문점을 모두 방문했는데 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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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학교 학생들은 고국 방문을 통해 민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
인터뷰를 한 민족학교 졸업생들은 고국방문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북한 사람과 사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북한 사람들은 같은 민족으로서 민족학교 졸업생들을 진심으로 대했다고 말한다. 강철수 씨는 “북한 사회가 비록 남한 사회보다는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가 매우 순수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반면 이들은 남한 사회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아 보였다. 일본과 북한, 그리고 남한 사회를 모두 체험한 졸업생들은 남한 사회와 일본 사회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개인과 개인 간의 경쟁을 중요시하는 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남한 사회는 재일교포들을 같은 민족이라고는 생각하면서도, ‘재일교포들은 우리와 다르다’라는 ‘구별 짓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의 구별 짓기는 남한으로 온 민족학교 졸업생들을 대다수를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한다.‘벽’은 사라지고 있지만 ‘고민’은 남아있는 진학문제민족학교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보통 고국 방문이 끝난 즈음에 ‘진로 강습’의 시간을 가진다. ‘진로 강습’은 담임선생님과 반 학생들이 3박 4일 동안 각자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진로를 결정하는 행사다. 고국 방문 후 민족의 의미에 대해 깊이 느낀 민족학교 학생들은 진로 강습에서 대부분 총련계의 조선대학교에 진학해 재일교포와 총련을 위해 일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민족학교 학생들은 조선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조선대학교에서 4년 동안 민족교육을 받고 민족학교 학생들과만 관계를 맺는 것이 자칫하면 일본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민족학교 학생들은 조선대학교 진학 외에도 일본대학교 진학, 총련계 산하 기관 취직 등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그러나 민족학교는 일본 교육법에 의해 정식 학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민족학교 학생들이 일본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어렵다. 최근에는 사립대학교에서 민족학교를 정식 교육과정으로 인정하고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국립대학교에서는 민족학교를 정식 교육과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진학이나 사회 진출에 있어서 민족학교 학생들에 대한 벽은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민족학교는 대안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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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학교 학생들은 민족교육을 통해 사람들과의 올바른 ‘관계 맺음’을 배운다. |
민족학교와 민족교육의 의의에 대해서 고성 씨는 “인간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이나 일본 학교에서는 시험을 통해 서로 치열한 경쟁이 이뤄진다면, 민족학교는 시험 전날에도 집에 가서 혼자 공부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서로 도우며 뒤떨어진 학생은 이끌어준다. 흔히 생각하는 민족교육은 친북 교육, 좌편향적 교육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많이 변화하는 추세며, 민족학교 학생들 역시 ‘한류’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남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국사학과 정용욱 교수는 민족학교를 대안학교라고 정의한다. 한국의 대안학교는 입시교육 위주의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교육현실을 비판하고 전인교육을 추구한다. 민족학교 역시 일본 사회 내 소수자인 재일교포의 권리와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교육체제를 비판하면서 세워진 학교라는 것이다. 이제 민족학교를 바라보는 시선도 감정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민족학교 학생들 개인과 재일교포 사회에 있어서의 민족학교의 의미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