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행복한 장애인!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장애인정책에 대한 연두업무보고가 열렸다. 이 날 행사에서는 ‘장애인차별 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에 대한 대통령의 서명식과 함께, 법 제정에 힘쓴 당사자들에 대한 공로를 치하하는 행사도 이어졌다. 하지만 행사 진행 도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집행위원장과 장애여성공감 박김영희 대표가 대통령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면서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두 사람은 플래카드를 들고 노 대통령 앞으로 나가 “장애인들은 지금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장애아 부모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을 조속히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두 사람은 행사장 밖으로 끌려 나가면서 장애인이 차별 받는 지금의 현실은 ‘야만의 대한민국’이라고 절규했다.
| ###IMG_0### |
| 청와대에서 열린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에서 기습시위가 벌어지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만류하고 있다. |
장애인 단체들은 ‘허울뿐인 장밋빛 약속’이라고 비판
‘장애인차별 금지법’이 제정되는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왜 장애인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장애인교육권연대(이하 교육권연대) 김기룡 사무국장은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발표된 것이 2차 종합대책이다. 이는 작년 9월에 발표했던 1차 종합대책의 재탕에 불과하다”며 “이번에 발표된 장애 영아 무상교육, 장애 대학생 학습도우미 지원 방안 등은 우리가 요구해 왔던 사항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 조차도 예산 책정, 법률 근거가 없는 장밋빛 약속에 불과하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장애인교육지원법’이 통과될 때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장애인교육 관련 단체에서 국회 입법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교육지원법’은 현행 ‘특수교육진흥법’ 체제 하의 장애인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특수교육진흥법’의 시행 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와 장애인 단체들은 현재 특수교육 수혜율에 대한 입장부터 다르다. 교육부는 현재 특수교육대상자로 파악된 학생들 중 62.5% 가량이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권연대 김 사무국장은 “교육부가 2005년 발표한 특수교육실태조사서에 의하면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 학생 수는 전체 학생의 2.7%인 23만여 명이다. 현재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5만 8천여 명으로 특수교육 수혜율은 25%에 그친다”며 교육부가 통계놀음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근거리 통학은 ‘미션 임파서블’, 특수학급 아예 설치 안 된 지역도 상당수특수학교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할뿐더러, 특수학급이 설치된 일반학교의 숫자도 턱없이 모자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전국 234개 기초자치단체 중 유치원의 경우 무려 162곳에, 고등학교의 경우 116곳에 특수학급이 설치돼 있지 않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의무교육인 관계로 사정이 조금 나은 형편이지만, 역시 근거리에 학교가 없어 장시간 통학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생 자녀를 두고 있는 김성림(충남 아산) 씨는 “집 근처 학교에 특수학급을 운영하는 곳이 없어 여러 학교를 찾아가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며 현재 승용차로 20분가량 떨어진 초등학교로 아이를 등하교시키고 있는 고충을 토로했다.유경미(경기 고양) 씨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그녀는 현재 중학교 1학년생인 자녀를 집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작년 5월부터 아이를 근거리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집 근처 중학교 몇 군데에서 ‘교실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고, 시교육청에서도 퇴짜를 맞았다. 경기도교육청에 직접 민원을 넣고 장학사를 면담한 결과 겨우 집 근처 중학교에 특수학급이 만들어졌다”며 평탄치 않은 과정이 있었음을 털어 놓았다.취학 유예도 다반사…… 치료교사 2명이 장애 학생 600명 전담하기도
| ###IMG_1### |
|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김성림 씨는 아이의 근거리 통학이 불가능해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
장애가 취학유예 사유로 공공연하게 인정되고 있는 현실도 장애인을 공교육에서 소외시킨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5년도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취학유예 사유의 18%가 ‘장애’로, 8천 명이 넘는 장애 아동이 입학을 유예하거나 아예 초등교육의 문턱도 밟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 6세인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유예시켰다는 박성희(충남 홍성) 씨는 “아이가 다운증후군 증세를 앓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한 살 어린 아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고, 아이의 발육도 부진해 어쩔 수 없이 취학유예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초·중학교 교육 과정은 의무교육이고, 누구 하나 제도권에서 소외되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며 “불가피하게 취학유예를 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가 장애 아동을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자연스레 이런 현상도 없어질 것”이라는 입장을 내 놓았다. 특수교육을 전담하는 교사 수가 부족해 장애 아동에 대한 충분한 교육서비스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성희 씨는 “일반학교 특수학급은 보통 5~6명 단위로 편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관내에 한 교사가 14명의 장애아동을 담당하는 학급도 있다고 들었다”며 특수교사 숫자의 부족을 호소했다. 특수교사가 담당하기 힘든 교육보조, 치료 등을 위해서는 특수교육보조원과 치료교사 등의 충원도 필요하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유경미 씨는 “고양시 관내에만 600여 명의 장애 아동이 있지만, 장애 아동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는 치료교사는 2명에 불과하다”며 학부모들이 치료교육을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는 “언어치료, 물리치료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50~60만원은 예사고,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한 달에 200만원까지 쓴다는 말을 들었다”며 장애아동에 대한 학습, 치료, 서비스 전 영역을 공교육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해법은 법률 제정과 예산 확충을 통한 장애인 교육의 공공성 강화
| ###IMG_2### |
| 김기룡 사무국장은 ‘장애인교육지원법’만이 장애인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꾀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
현행 특수교육제도의 구조적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은 장애인 교육의 상당 부분을 ‘권고’ 수준에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장애인 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 학생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개별화교육을 실시하는 데 내실일 기해야 한다”면서 장애 학생이 적절한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와 국가의 일원으로서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단체들에서는 이를 위해 특수학급과 특수교사의 확충, 직업교육과 치료교육 및 복지지원 방안의 명문화,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장애인 주체들의 참여 보장 등을 주장하고 있다.장애인 교육을 획기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충분한 예산의 확보다. 2007년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예산은 31조 5천억 원. 이 중 특수교육 예산은 1조원 남짓에 불과한 현실이다. 김 사무국장은 “미국 등 선진국은 교육예산의 6~9% 가량을 장애인 교육에 쏟아 붓고 있다. 우리도 현재 예산 규모에서 최소한 두 배 이상이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장애인 학생들의 교육은 좀 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장애 학생들의 교육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교육’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가가 장애인 교육의 공공성 확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