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전후로 크게 늘어난 생계형 노점상
붕어빵, 오뎅, 떡볶이, 튀김 등의 분식류에서부터 각종 생활용품까지 우리는 주변에서 노점상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친숙한 노점상들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노점 숫자의 유동성이 크기 때문에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지만 노점상의 숫자는 IMF 기간에 가장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2005년 서울시 기준으로 1만 3500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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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세사리를 팔고 있는 노점이 행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
지난 2005년 전국노점상연합과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점상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전체 551명의 응답자 중 사업실패, 해고, 생계유지와 구직의 어려움이라는 대답이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했다. 또한 ‘노점을 하기 전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 에 대한 질문에는 제조업 회사원과 판매 또는 영업사원이라고 답한 사람이 41%에 달했는데, 이는 경제구조가 재편됨에 따라 생계형 노점상의 숫자가 늘어났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노점상은 무엇으로, 어떻게 단속되는가노점은 그간 ‘불법’, ‘단속’ 의 적용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노점을 관리하는 법률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던 탓에 단속시에 적용되는 법도 도로법과 식품위생법 등이었다. 그렇다면 행정당국은 길거리 음식을 파는 리어카부터 신문 가판대, 포장마차까지 다양한 종류의 노점에 어떤 기준을 적용해 단속을 하고 있는 걸까? 서울시 건설관리국 관계자는 “똑같은 노점상이더라도 신문 가판대는 시에서 허가를 받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답변했다. 신문 가판상 등 허가를 받은 노점상들은 서울특별시 도로 점용허가에 관한 조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서울특별시 도로 점용허가 및 점용료 등 징수조례 시행규칙」에 따르면 도로 점용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노점의 범위는 ” 1. 광고탑, 광고판, 사설안내표지판 및 기타 이와 유사한 것, 2. 가로판매대, 구두수선대, 버스카드판매대 기타 이와 유사한 것”으로 규정돼 있다. 우리가 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붕어빵, 떡볶이 등의 군것질 노점상은 기본적으로 도로점용허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허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곧 해당 노점상들의 상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들은 단속의 대상이 된다. 동대문운동장 근처에 리어카를 두고 양말과 스타킹 등을 파는 상인 A씨는 “단속반원이 나올 때도 많지만 용역깡패에 의해서 강제 철거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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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영일시장 철거 과정에서 벌어졌던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행사건은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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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일시장 철거 과정에서는 약 20여명의 상인들이 부상을 입었다. |
이 과정에서 용역깡패들이나 노점상들이 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단속과정을 설명했다. 소위 ‘용역깡패’들은 구청이나 시청 등에 의해서 비정규직 경비 등으로 고용되지만 대부분 전문 경비용역업체에서 파견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현행 경비업법 15조는 ‘타인에게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경비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단속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지난 2007년 3월 영등포 영일시장 철거 과정에서 140여 상인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고용된 1000여명의 용역 업체 직원들이 상인들에게 폭행을 행사하는 장면이 TV뉴스 등을 통해 보도되면서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1시간 30여분이 지난 후 출동해 방임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구청 측에서는 “우리는 안에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라며 용역 동원에 관한 책임을 회피했다.노점관리특별법,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서울시는 올 2월,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노점들이 단순히 규제와 단속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노점관리특별법’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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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의 전경 |
노점관리특별법은 크게 노점시범가로를 지정하고 운영 시간을 규격화하며 창업지원을 병행하고 노점자율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등의 내용으로 요약된다. 이는 그간 엄연히 존재하는 노점상에 대해 “합법화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언급을 회피해왔던 서울시가 노점상에 대한 정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노점상들은 업종마다 운영 시간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운영 시간을 규제하고, 기존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을 지정해 시범 노점 구역을 지정하는 것은 기만적 대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의 노점상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기준에 맞지 않는 노점상들을 대거 양산해 단속을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또한 노점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함에 앞서 전국노점상총연합 등 노점상 단체와 충분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시가 도시 미관을 위해서 노점상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일부에서는 노점상이 도로를 불법으로 점유하면서 경관을 해치고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노점에 대한 규제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어, 노점관리특별법은 앞으로 많은 난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에서 동대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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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판 위에 펼쳐진 갖가지 물건들의 향연, ‘없는 것이 없다’ |
지금의 깔끔한 모습으로 바뀌기 전 청계천은 노점상들의 대표적인 집거지였다. 한국전쟁 이후 몰려든 영세민들이 벼룩시장을 형성하는가 하면 소위 ‘성인용 비디오테입 시장’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는 등 3000여 명에 이르는 노점상들이 생계를 이어나가는 터전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작된 2003년 11월 1000여명에 달하는 노점상들이 철거의 대안으로 마련된 동대문 운동장 안으로 이동했다. 당시 이명박 전 시장은 철거하게 된 청계천 상인들에게 “동대문에 세계적인 풍물시장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재 동대문 운동장 내 풍물벼룩시장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현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약으로 걸었던 동대문운동장 개발계획에 따라 2010년까지 800억을 들여 패션과 디자인 산업을 선도할 단지를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동북아에서는 서울시가 가장 먼저 디자인 허브를 선언한 만큼 서둘러 사업을 시행하고 싶다”며 “마음이 급한 만큼 조만간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점상들은 이명박 전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청계천에서 동대문으로, 오세훈 현 시장 재임 기간 동안 동대문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갈 처지에 놓였다. “쫓아낸다면 전쟁하는 수 밖에”4월 6일 오전, 기자가 찾은 풍물벼룩시장에는 화창한 날씨와 대비되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수집용 화폐를 팔고 있던 상인 A씨는 서울시의 계획에 대해 “쫓아낸다면 전쟁하는 수 밖에 없다. 대책 없이 나가라면 누가 나가겠느냐”며 강한 어조로 울분을 터뜨렸다. 중고 오디오와 카메라를 파는 상인 B씨는 “이명박 전 시장이 청계천을 조성하고 정비한 것을 보면 나도 감탄이 나온다. 그렇지만 청계천을 위해 우리를 이쪽으로 옮겨놓고 세계적인 풍물벼룩시장을 만들겠다고 했으면 그만뒀다 하더라도 나몰라라 할 수 있느냐”며 “시장의 약속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서울시를 대표하는 것인만큼 시장이 바뀐다 하더라도 정책에는 당연히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관의 일관성 없음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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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 상인자치회 사무실 안에 붙어있던 글귀에서 비장함이 감돈다. |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자치위원회 관계자는 대안으로 취업 알선을 위한 재교육을 실시한다거나 하는 방안을 내놓는다면 어떤 실효성이 기대되느냐는 물음에 “지금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생계형 노점상으로 6,70대의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취업 알선 재교육이 무슨 소용 있겠느냐”며 “요즘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백수들이 수백만이라고 하는데 정작 취업 교육이 필요한 것은 그들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동대문운동장 철거 계획이 발표되자 문화재청과 시민단체들은 “동대문운동장은 역사,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이래로 경평축구, 대통령컵 축구대회, 월드컵 예선전이 치러졌으며 해방 후 정치적 혼란기엔 찬탁과 반탁 집회 등 대규모 집회가 이루어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동대문운동장은 오세훈 시장의 공약에 따라 디자인 콤플렉스로 개발될 예정이지만 철거에 관한 정확한 시기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노점상 관련 대책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건설관리국 관계자는 대안이 협의되고 있는지, 정확한 철거 시기가 언제쯤인지를 묻는 자의 질문에 “시기나 대안에 대해서 정확히 확정된 것이 없으므로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단속과 철거의 틀을 넘어서지난 2월 발표된 노점관리대책특별법이나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철거계획은 모두 노점상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점상 합법화 혹은 양성화는 법질서에 맞지 않다”던 종전의 단속위주 노점정책에서 노점 양성화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 소지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또한 “일본 후쿠오카나 홍콩 등지의 명물인 산뜻한 노점거리를 서울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국노점상연합 조직2국장 신희철씨는 “청계천 풍물벼룩시장에서 일방적인 정책 집행이 계획되었듯이 여전히 노점상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는 노점상인들을 해결의 당사자로 여기지 않고 일방적인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며 노점상에게 시민으로서의 근본적인 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씨의 말대로 생계의 막다른 골목에서 노점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들에게 단속과 규제라는 단순한 틀 대신 생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노점상 문제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